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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책비누만들기를 마치고, 즐거워합니다~
▲ 도서관캠프에 참가한 친구들이 다 모였네요~ 책비누만들기를 마치고, 즐거워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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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여름방학이 막바지에 접어든 목요일(8월 28일) 아침, 며칠째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립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아침이지만 도서관은 우리 친구들로 소란스럽습니다. 꽃바위작은도서관 친구들이 해마다 여름방학을 기다리는 이유는 '1박 2일 도서관캠프' 때문입니다. 도서관에서 하룻밤 잠도 자고, 재미있는 체험활동도 하며,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도 하는 그야말로 공식적으로 인증된 외박을 하는 날이어서 모두가 기다립니다.

"얘들아, 캠프 왔나?"
"네~."
"아이고, 비가 이래 오는데 안 빠지고 왔네. 2층으로 올라가~. 뛰지 말고, 조심해서 올라가고, 우산은 도서관 입구에 꽂아두고 가레이."
"샘(선생님) 근데요, 오늘 점심은 뭐 묵어요?"
"요 녀석아, 아직 캠프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묵는 거 생각하나?"
"히히, 궁금해서요."
"니 하는 거 봐서 메뉴가 추가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렇데이."
"에이 샘도~."

모두가 처음해보는 실험입니다~재미있어요~
▲ 책비누를 만들어요~ 모두가 처음해보는 실험입니다~재미있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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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특별한 것이 되어야만 하는 작은도서관의 역할. 책을 읽고 책으로 서로 소통하는 것은 도서관이라는 매개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지금은 도서관의 기능이 점점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고, 그에 맞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만 하지요.

여름방학 때만 누릴 수 있는 공식 외박(?), 아이들에겐 즐거움을 떠나 신나는 새로운 경험이라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인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라는 안타까운 일이 있어서 모두가 조심조심 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 도서관캠프는 외박이 아니라 하루 동안 도서관 체험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침부터 마냥 신이 나서 친구와 얘기하며, 도서관 캠프를 시작합니다.

모두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만들기 체험에 집중하네요~
▲ 진지합니다~ 모두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만들기 체험에 집중하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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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조용히 하거레이. 너희들 조용히 안 하믄 오늘 캠프 마아 대충하고 말 거데이."
"샘! 왜 오늘은 안 자요? 하룻밤 자믄 좋은데."
"그러게. 이번엔 그렇게 되었데이. 아쉽지만 내년엔 꼬~옥 하룻밤 자는 걸로 해보재이."
"자~ 오늘 하루 너희들 점심하고, 저녁 맛있는 걸로 맹글어주실 도우미샘들을 소개할 테니 뜨겁게 박수 한번 치자~."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아이들의 점심과 저녁을 챙겨주고, 전반적인 도서관캠프의 일정에 맞춰 보조해주실 도서관 자원봉사 샘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하고 나니, 아이들의 눈은 제법 진지해집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어떤 과정으로 진행될지 간단한 소개와 함께 모둠별로 각자 인사도 했습니다.

자주 도서관에서 보지 않았던 친구들은 서로 어색해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습성을 잘 아는 터라 잘 모르는 친구들끼리 하루 짝지로 자리 배정을 다시 했지요. 첫 시간은 아이들이 쉽게 접하지 않는 '책비누 만들기'를 했습니다. 책 모양의 틀에다 천연재료를 섞어 천연 책비누를 만드는 것인데, 생소한 과학실험 같은 체험이라 진지한 표정입니다.

예쁜 모습으로 한 컷 했어요~
▲ 명찰 땜에 맘 상한 서현이~ 예쁜 모습으로 한 컷 했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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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얘들아, 다 한 친구들은 샘 앞으로 와가지고 만든 책비누 들고 사진 하나 찍어보자."
"샘 지는요, 사진 찍기 싫은데요."
"뭐? 와 찍기 싫노? 그래도 이왕 했는 거 기념으로 하나 냉기믄 좋다 아이가?"

그러고 보니, 명찰을 나눠줄 때 본인 성을 잘못 적었다고 투덜대던 친구였습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시작하더니 사진 찍기도 거부했습니다. 만들기가 끝난 다른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제 앞으로 와서 얼굴을 내밀며 카메라에 찍혔지만 그 친구는 끝내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에게 일침을 놓았습니다.

"자~ 서현아, 니 이런 기회 없데이. 오늘 같은 날 멋지게 포즈 잡아 저녁에 너거들 밥 묵을 때 오늘 찍은 사진 다 출력해서 미니앨범 하나 맹글어 선물로 줄라 했더만, 서현인 빼야겠네. 너거 엄마가 디게 섭섭해 할 낀데 괜찮겠나? 그래도 괜찮다믄 안 찍어도 된다."

그때까지 무표정에 말없이 토라져 있던 서현이는 얼른 제 앞에서 웃어 보입니다. 엄마한테 보여줄 사진이라니 자랑은 하고 싶었나 봅니다. 성을 바꿔 잘못 만든 명찰 하나가 이 녀석한텐 큰 의미를 주고 있었다는 걸 제가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요. 아무튼 서현이는 그 후로 너무 적극적으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점심은 맛난 미니뷔페입니다. 메뉴가 다 도착하지 않았네요~~
▲ 미니뷔페~ 점심은 맛난 미니뷔페입니다. 메뉴가 다 도착하지 않았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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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체험을 하나 하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습니다. 도서관 안의 동아리방에선 도서관 자원봉사 샘들이 분주합니다. 특히 '빅북구연팀' 샘들이 아침부터 반찬준비 하느라 쉴 새 없었습니다. 기름에 돈가스, 감자 튀기고, 미니뷔페 상차림을 하려니 손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모두들 얼굴이 발그스레합니다. 그런 샘들을 위해 저는 샘들이 좋아하는 가래떡과 백설기를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도서관에서 친하게 지낼게요~
▲ 정말 맛있어요~ 앞으로 도서관에서 친하게 지낼게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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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들 고생 많아요. 오늘 고생 많이 해야겠는데, 우째요?"
"우짜겠어요. 해야지요. 그나저나 아들 입맛에 맞아야 하는디 걱정이 쪼매 되네요."
"아~들은 잘 묵을 걸로 생각해요. 다른 것보다 샘들의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서요."
"아이고, 그렇게 말을 하니 안심이 쪼매 되네요."
"샘들~ 샘들도 이 떡 묵으면서 하이소. 제가 뭐 샘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해서 떡 준비했으니 묵으면서 하이소."
"네~. 떡순이 아니랄까봐 오늘도 떡 했는교? 우리 사서샘은 떡순이라 큰일임더. 이거 묵고 더 열심히 일하라고 그라죠? 맞죠, 샘?"
"말 안 해도 척척 눈치껏 알아묵네요. 하하하."
"걱정 마이소. 말 안 해도 열심히 엉덩이 안 붙이고 하고 있심더. 이따 12시에 올라갈 거니까 샘은 얼릉 올라가 보이소."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런 자원봉사 샘들이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자원봉사자와의 사사로운 정이 없다면 차마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이런 분들로 인해 더 즐겁고 새롭기만 한 추억들을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어 뿌듯합니다.

다른 팀이 못보게 우리끼리~~~
▲ 모둠별 경기라 신중합니다~ 다른 팀이 못보게 우리끼리~~~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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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손 씻고 밥 묵을 준비하자."
"와~ 밥 묵는다! 샘 배고파요."
"그래, 배 고프니 얼릉 묵을 준비하자."
"자~ 한 모둠씩 나와서 자기가 묵고 싶은 반찬 묵을 만큼만 담아라."

아이들이 좋아할 반찬들이 준비되고,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시원한 수박화채를 곁들인 후식까지 먹고, 휴식을 하고 그렇게 도서관캠프의 일정이 진행되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요즘 아이들이 자주 접할 수 없는, 그러나 가볍게 뛰어 놀 수 있는 전통놀이와 보드게임을 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해가 뉘엿뉘엿 지고, 줄기차게 내리던 비도 어느새 그쳤습니다. 점심 먹고 돌아서니 또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지요. 아이들은 저녁으로 무엇이 나올지 기대에 찬 모습입니다.

신나게 함 뛰어봐요~
▲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신나게 함 뛰어봐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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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이들 곁을 지날 때마다 저녁반찬은 뭔지 여기저기서 물어옵니다. 혹여 아이들이 싫어할지도 모르는 저녁메뉴는 '비빔밥'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잘 먹지 않는 비빔밥을 저녁메뉴로 정한 건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먹는 비빔밥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주어 야채와 함께 밥을 먹도록 유도하려고 한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야채비빔밥을 잘 먹었습니다. 오후 내내 뛰어다니느라 힘들었는지 두 그릇을 거뜬히 먹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대신 자원봉사 샘들은 아이들이 먹고 돌아설 때까지 불판 앞에 서서 계란을 열심히 구웠지요.

"얘들아, 이제 밥 다 묵은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평소 못 보던 책 좀 보자."
"샘 진짜 보고 싶은 책 봐도 돼요?"
"그래."

모두가 신중하게~재미있어요~
▲ 다문화 친구얼굴 만들어요~ 모두가 신중하게~재미있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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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드는 친구 하나 없이 너무 조용하다 싶어 도서관 구석구석 둘러보니 아니, 요 녀석들이 전부 만화책에 코 빠지듯 얼굴을 박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우습고 기가 막히던지, 그래도 책 읽는 모습이 참으로 예뻐서 그냥 뒀습니다. 늦은 밤 도서관에서 만화책이든 그 어떤 책이든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책을 들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책을 읽고 난 후, 아이들은 하루 동안 자신이 활동한 사진들을 챙겨서 작은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의 추억이 가득 담아 있는 앨범을 만든다는 것이 자신들도 신기하고 행복했는지 옆 친구와 얘기도 않고 사진 밑에다 무언가를 열심히 씁니다.

"도서관캠프, 담에도 또 하고 싶어요."

앨범을 완성하고 나자,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도서관으로 왔습니다.

다함께 웃어요~
▲ 다함께 하하하! 다함께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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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서야, 오늘 만든 거 챙기고 엄마한테 가레이. 잘 가."
"유섭아, 다 잘 챙깄나? 들고 온 우산 챙기고. 잘 가."
"서현아, 오늘 재밌었나? 명찰 미안하데이. 담에 책 보러 와~."

부모님께 보여드릴 추억의 미니앨범 만들어요~
▲ 미니앨범 만들기~ 부모님께 보여드릴 추억의 미니앨범 만들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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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나둘 아이들은 늦은 저녁 시간 도서관을 떠났습니다. 도서관 자원봉사 샘들과 아이들의 흔적을 지워가면서 정리를 하고, 차 한 잔을 마시고 서둘러 퇴근(?)을 했습니다.

모두가 떠난 자리, 작은도서관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깨닫습니다. 예전에 몰랐던 아이들에 대한 생각과 늘 곁에서 묵묵히 도와주던 샘들의 그 자리가 피곤함을 잠시나마 잊게 했습니다. 아~ 내일부터 나를 좀 더 새롭게 할 열정을 도서관에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책 읽는 모습~예쁘죠? 동화책이면 더 이쁠까요?
▲ 만화책~재미있어요~ 책 읽는 모습~예쁘죠? 동화책이면 더 이쁠까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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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서관캠프, #꽃바위작은도서관, #책읽기, #도서관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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