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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농성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촉구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 2014년 8월 28일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모습 광화문 농성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촉구를 위한 서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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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교황 프란체스코)
▲ 세월호 농성장에서 열리고 있는 천주교 단식 기도회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교황 프란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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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이주 전,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농성장 앞을 지날 때, 우리도 하루 동조단식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남편은 말했다. 난 우리의 2세 계획을 상기시키며, 단식이 나에게는 해로울 수 있으니 하려거든 당신 혼자 하라고 대답했다(우리 부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다가 올해 들어 아이를 가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당장 아이가 뱃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쯤 단식하는 것이 대수이겠냐마는, 평소 한끼라도 제시간에 챙기지 않으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체질이라 단식만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근 김영오씨를 모함하는 여러 언론의 보도와 SNS에 퍼지고 있다는 특별법과 관련한 악성 루머가 나의 피를 거꾸로 솟게 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동조단식이라 생각되어 곧바로 인터넷으로 신청했다.

여러 언론이 늘 진실을 정권과 자본에 유리한 쪽으로 호도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단지 내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부모들에게 행한 이번 언론의 폭력은 일베에 비견될 만큼 치졸하면서도 잔악하다.

박근혜 정부가 4대악 척결을 내세우고 있지만, 세월호 시국에서 드러난 4대악에는 첫째, 세월호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관피아, 둘째, 합법적인 시위를 불법적으로 방해하는 경찰, 셋째, 최고 권력자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대통령이 포함된다.

국민의 피끓는 외침을 외면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대통령이 침몰하는 배에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선장이랑 무엇이 다른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악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알리기는커녕 오히려 유가족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는 언론이 가장 극악하다 하겠다.

28일 아침 출근하는 남편의 격려를 받으며 농성장으로 향했다. 농성장에는 아직 이른 시각임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입구에는 피켓을 들고 서있는 사람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천막 쪽에서는 10일째 단식 중이었던 문재인 의원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영화인, 작가, 종교인, 정당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동조단식에 참가하고 있었다. 특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농성장 뒤편에 따로 천막을 치고 4일째 단식기도를 하고 있었다.

광화문 분수대 주변에는 많은 개인 단식 참가자들이 와 있었다. 중학생 나이로 보이는 배낭을 맨 소년부터 책을 펼쳐 든 지긋한 나이의 아주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국민 단식 1일째'라는 천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20대 선남선녀 단식커플은 마주 앉아 단란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광화문에 전시되어 있는 세월호 관련 시와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하루 단식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이러했다. 농성장에만 머무르지 말고 단식 사실도 시민에게 알릴 겸 돌아다니자. 마침 정독도서관에서 빌린 책 반납 마감일이기도 하고, 주민센터에서 볼 일도 있으니 다녀오기로 했다.

청와대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일부 구간 중국관광객들로 매우 붐비지만 날씨 좋은 날 일부러 걸어볼 만한 아름다운 길이다.
▲ 청와대 입구에서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으로 가는 길 청와대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은 일부 구간 중국관광객들로 매우 붐비지만 날씨 좋은 날 일부러 걸어볼 만한 아름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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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청운효자동 주변과 청와대 진입로 입구를 모두 막아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세월호 유가족이 농성중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경찰은 청운효자동 주변과 청와대 진입로 입구를 모두 막아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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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주변에 살고 있는 나는 평소 효자동에서 청와대를 지나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즐겨 다닌다. 청와대와 마주 보고 있는 경복궁 돌담도 예쁘지만 오래된 수령의 은행나무들이 길가에 자라고 있어 풍광이 빼어나다. 이 길은 삼청동을 지나 화동의 정독도서관까지 연결되어 있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서부터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로, 종종 산책을 겸해 걸어서 다녀오곤 한다. 사실, 이 길을 이용할 때는 늘 사복 경찰들이 어디를 가는지 묻는다. 시국이 시국이고 유족들도 근처에서 농성중이라 단식을 알리며 청와대 앞을 통과하는 것은 제지당할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불법적 행위가 아님을 주장해 보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 국민 단식 1일째'라고 쓰여있는 천을 가슴에 달고 농성장을 나섰다. 우선,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서 필요한 증명서 발급 받기를 시도했다. 근처에 도착하자 경찰이 가는 길을 막아서고는 어디를 가느냐 물었고 주민센터에 일 보러 간다고 답했다.

그런데 경찰이, 이런 것을 몸에 단 사람들이 갑자기 모여들어 불법 시위를 할 수 있으니 갈 수 없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불법시위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근처 사는 주민이고 일 보러 왔다고 재차 설명하니, 기다리라며 어디론가 무전을 쳤다.

사복을 입은 경찰이 와서는 다시 용무를 물었다. 주민센터에 일 보러 왔다고 말하니, 어디 사느냐고 되물었다. 옥인동 산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내가 주민임을 믿었는지 볼 일만 보고 가라는 당부를 반복하며 나를 주민센터 입구까지 인도했다.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는 유가족들이 농성을 하고 있었다. 간단히 목례를 하며 농성장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은 평상시와 다름없어 보였다. 서너명의 동네주민들이 일을 보기 위해 와 있었고 공무원들은 모두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내 일을 도와준 공무원도 내가 가슴을 달고 있는 천을 의식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이 증명서를 발급해주었다. 나는 증명서를 들고 곧장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오는 길에 농성장의 유족들에게 힘내시라는 말 한 마디 건넬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에는 청와대 앞을 지나 정독도서관으로 가기 위해 다시 경찰 앞에 섰다. 경찰은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정독도서관을 가려한다 답했다, 평소 이 말을 알아 듣고 순순히 길을 열어 주는 사복 경찰과 다르게, 카페에 가려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검문이 있는 곳을 지나면 커피를 파는 작은 카페가 나온다).

정독도서관에 가려한다고 재차 말하자, 지금은 이 길이 통제되어 못 가니 돌아가라고 귀찮은 듯 말했다. 나는 돌아가는 길도 모르고, 멀리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보이니 나도 보내달라며 따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가까이 있던 검은 조끼를 입은 경찰이 다가오더니, 돌아 가더라도 단식 중이라는 글귀 때문에 시위로 간주되어 계속 경찰이 막을 테니 몸에 있는 것을 떼고 가란다. 단식 중이어서 단식 중이라고 써붙인 것이고, 청와대 앞을 지나가는 것이 불법적 행위가 아닌데 왜 막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길 안 쪽에서 일반 시민으로 보이는 풍채 좋은 남성이 걸어나왔다. 나는 "시민이시지요?" 물으며 왜 이분은 이 길로 다니고 다른 시민은 못 가게 하냐고 따졌다. 그런데 이 길가던 시민은 갑자기 정의당 관계자라고 정중히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닌가.

이 남성은 의외로 경찰과 같은 이야기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천을 떼지 않으면 청와대 앞을 지나지 못할 테니 떼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하는 것이다. 경찰이 아닐까 살짝 의심도 했지만 오랜 농성때문인지 초췌해진 모습과 정중한 말씨로 보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나를 도우려는 의도로 경찰과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경찰이 불법적으로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목표라면 목표였기 때문에, 천을 떼고 노란리본 목걸이만 남긴 채 청와대로 행했다.

28일 오전 심상정 원내대표를 비롯한 다섯명의 정의당 의원들이 세월호 참사의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단식 중인 정의당 의원단 28일 오전 심상정 원내대표를 비롯한 다섯명의 정의당 의원들이 세월호 참사의 성역없는 진상규명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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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8일째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단식 중인 통합진보당 의원단 28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8일째 동조단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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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을 몸에서 떼었으니 경찰과 부딪힐 일이 더 이상 없을 거라는 생각은 나의 오산이었다.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중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했고, 그 속에 단식 중인 정의당과 통합진보당의 의원단이 있었다. 우산이 만든 작은 그늘 아래에서 힘겹게 단식하고 있는 의원들의 사진을 찍었다.

이를 수상히 여겼는지 다시 경찰이 다가왔다. 어떤 일로 왔는지 물었고, 이번엔 가방을 보여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닌가. 단식 중인 의원들 사진 두장 찍는 것이 무슨 가방을 검열받을 정도의 일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가방 안에 도서관에 반납할 책을 보여주고서야 가던 길을 갈 수 있었다. 경찰은 도대체 내 가방 안에 무엇이 있을 수 있다고 의심하였던 것일까?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을 지나 관광객이 없는 한산한 곳에 도달했을 때 다시 사진을 찍는데, 이번에는 뒤에 있던 경찰이 달려와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길이 예뻐 찍는 거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경복궁 쪽으로는 사진을 찍어도 되지만 그 반대 쪽은 안 된다고 말하며 이번에는 나를 따라 걷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나의 존재가 무전으로 경찰들에게 알려진 거라 생각되어, 단식 중임을 알리는 천을 몸에 달아도 되는 곳이 어디서부터인지 물으니 멀리 다른 경찰이 서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어디에서 왔냐고 궁금한 듯 계속 물어서, 그냥 시민이라고 답했다.

평소 한번의 검문을 통과하면 청와대 앞을 지날 수 있었지만, 이날은 경찰이 서있는 모든 지점에서 검문을 받았고 가방과 핸드폰까지 보여주었다.
▲ 청와대 경호가 끝나는 지점에서 경찰이 찍어준 사진 평소 한번의 검문을 통과하면 청와대 앞을 지날 수 있었지만, 이날은 경찰이 서있는 모든 지점에서 검문을 받았고 가방과 핸드폰까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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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경호가 끝나는 지점에 서서 천을 다시 몸에 부착하는데, 나를 따라온 경찰이 이번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여달라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의 실강이가 피곤해 핸드폰을 경찰에게 내주었다. 경찰 손에 내 핸드폰을 들려 있는 김에 사진 하나 찍어달라 부탁하니 사진을 찍어주었다.

삼청동으로 접어들었지만 오전이라 그런지 매우 한산했고, 정독도서관 주변도 마찬가지로 한산했다. 책 반납을 마치고 안국동을 거쳐 인사동으로 향했지만 인사동도 역시 한산한 편이었다. 종로 대로길로 나서니 사람들이 좀 있는 편이었지만 단식 중이라는 글귀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다만, 어느 명상센터에서 선전물을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내가 눈에 띄었는지 가까이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에게 먼저 선전물을 건넸다. 좀 더 가니 같은 선전물을 또 나누어 주고 있었는데, 두 번째 분은 "함께 힘내요"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광화문으로 돌아와 보니 아침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농성장이 북적였고, 서명을 하는 시민들도 간간이 보였다. 농성장은 대체로 조용했지만 간간이 작은 사건들이 일어났다. 갑자기 기자들이 문재인 의원이 단식하고 있는 천막 앞으로 몰려들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박영선 대표가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단다.

늦은 오후가 되자 많은 경찰들이 농성장 뒤편으로 배치가 되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후 노조 깃발들이 모여들고, 민주노총 파업 결의 대회가 열였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민주노총 파업 결의대회 늦은 오후가 되자 많은 경찰들이 농성장 뒤편으로 배치가 되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후 노조 깃발들이 모여들고, 민주노총 파업 결의 대회가 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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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때에는 허리가 많이 굽으셨지만 목소리만큼은 짱짱하신 백발의 노인이 농성장을 방문하셨다. 노인은 상대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호통을 치시다가 가셨다. 특히 경찰이 제지하려 할 때에는 흥분이 극에 달해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어떤 뜻을 전하기 위해 오셨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단식하는 사람들과 유족에 반감을 가진 분은 아닌 것 같았다.

오후에는 외국 관광객이나 많은 시민들이 농성장을 통과해 가곤 했지만, 농성장이 생긴 이후 광화문 광장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준 것 같기는 했다. 특히 분수대에서 노는 아이들이 거의 없어졌는데, 그래도 모두 8명의 아이들이 분수대에서 놀다 갔다.

특히 간난 아이인 막내까지 모두 네명의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눈에 띄었다. 먹을 음식까지 챙겨와 한참을 놀다가 갔는데, 다둥이 가족의 단란한 한때가 마냥 보기 좋기도 했지만, 농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모의 무감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농성장을 철거해도 되는 때가 어서 와서 광화문 분수대도 아이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기를 빌 뿐이다.

해가 저물자 몇몇 사람들은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단식하는 엄마를 따라 온 초등학생은 힘든 듯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있기도 했고, 어떤 중년의 부부는 아무 말 없이 나란히 걷고 또 걷고 있었다.

천주교 저녁 미사가 시작되었다. 천주교인이 아니지만, 지금은 어떤 신에게라도 우리 나라를 보우하길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사에 참가했다. 천주교 미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농성장에 남아 있기 힘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누워 쉬고 있는데, 저녁 미사 중에 모든 이들이 복창했던 한 구절이 마음 속에서 계속 메아리쳤다.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태그:#1일 동조 단식,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세월호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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