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가 16년만의 세계무대 도전에 나선다. 2014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 월드컵이 30일(한국시간) 스페인에서 개막한다.

올해로 17회째를 맞는 이번 대회는 기존의 세계농구선수권에서 FIBA 월드컵으로 명칭을 바꿨다. 대륙별 지역 예선을 통과한 24개국이 6개팀씩 4개 조로 나눠 조별리그를 치른 뒤 각 조 상위 4개 팀이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한국은 1998년 그리스 대회를 끝으로 농구월드컵과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지난해는 필리핀 아시아선수권대회에 3위에 올라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FIBA 랭킹 31위인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리투아니아(4위), 호주(9위), 슬로베니아(13위), 앙골라(15위), 멕시코(24위) 등과 함께 D조에 편성됐다.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은 참가국 중 최약체 급으로 분류되는 게 사실이다.

1승이 목표, 아시안게임과의 연속성이 변수

현실적인 목표는 1승이다. 한국 대표팀은 1994년 캐나다 세계선수권 이집트전(13-14위전)이후 20년만의 승리를 노리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만만한 팀은 하나도 없지만, 그나마 상대적으로 전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앙골라와 멕시코가 유력한 1승 타깃이다. 만일 기적적으로 2승 이상을 거둔다면 16강에 진출하여 C조 1위가 유력한 '세계최강' 미국과 맞붙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아시아선수권에 이어 다시 한 번 강한 전방위 압박수비를 바탕으로 한 '한국형 농구'로 도전장을 던진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 이어 올여름 강호 뉴질랜드와 5차례의 평가전을 치러서 2승 3패로 선전하며 한국형 농구가 충분히 통할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변수는 남자 대표팀이 농구월드컵에 이어 9월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두 개 대회를 연달아 소화하는 강행군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대표팀을 1,2진으로 이원화하여 아시안게임에 정예 1진을 투입하는 여자대표팀과는 다른 행보다.

아무래도 안방에서 12년만의 금메달을 노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더 비중이 쏠리는 것은 분명하다. 농구월드컵에서 부상자라도 나오면 아시안게임까지 회복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체력 안배와 컨디션 관리는 필수다. 반면 아시안게임을 의식하여 지나치게 몸을 사리다보면 도리어 경기력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분명 쉽지 않은 일정이지만 그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 한국은 그동안 세계무대에서 경쟁하는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다. 한국이 농구월드컵에서 만나게 될 세계의 강호들은, 아시안게임에서 상대할 중국, 이란 같은 경쟁팀들보다도 한 수 위의 전력이다. 파워와 기술을 겸비한 장신 선수들을 상대하는 요령을 터득한다면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돈 들여서 치르기 힘든 귀중한 A매치 기회를 공짜로 얻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사실상 하나의 대회라도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한편으로 단지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전초전으로만 취급할 게 아니라, 농구월드컵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대회다. 현실적으로 아직 한국농구와 세계무대 간에는 엄연한 격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물안 개구리로 안주하기보다 우리의 현 주소를 파악하고 세계농구와 싸울 수있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게 중요하다. 농구월드컵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아시안게임까지 이어갈 수 있다면 침체된 국제 대회를 통하여 침체된 국내의 농구열기를 되살리는데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세대교체 미국, 정상 수성 가능할까

한국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농구월드컵을 통하여 세계농구의 헤게모니 변화를 확인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번 대회 역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농구종가 미국이다.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FIBA랭킹 부동의 1위 미국은 2회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하지만 올해는 미국의 정상 수성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카멜로 앤써니(뉴욕), 케빈 듀란트(오클라호마) 등 현재 NBA 최고의 선수들이 대거 빠졌다. 폴 조지(인디애나 페이서스)가 다리 부상으로 하차하고, 케빈 러브(클리블랜드), 블레이크 그리핀(LA 클리퍼스) 등도 줄줄이 출전을 고사했다.

2000년대 이후 미국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던 포워드진의 엄청난 전력 약화가 두드러진다. 오랫동안 정통센터 기근에 시달리던 미국은 높이싸움에서는 더 이상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에서 우위를 장담하지 못한다. 그나마 제임스나 듀란트처럼 장신이면서도 엄청난 득점력과 운동능력을 겸비한 특급 포워드들을 적극 활용하여 상대팀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마이크 슈셉스키 미국 대표팀 감독은 정통 빅맨보다 장신 스몰 포워드 2명 이상을 동시에 기용하며 기동력과 유연성을 극대화하는 스몰라인업을 즐겨 구사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엔트리에는 이들을 대체할 만한 선수는 보이지 않는다. 듀란트와 조지가 최근에 갑작스럽게 하차하면서 짧은 기간에 선수구성과 전술을 완전히 수정해야 하는 부담도 크다.

데릭 로즈(시카고), 제임스 하든(휴스턴)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카일리 어빙(클리블랜드) 등 이번 미국 대표팀은 가드진이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승 상대가 유력한 스페인 등 유럽팀들의 높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앤서니 데이비스(뉴올리언스 펠리컨스), 드마커스 커즌스(새크라멘토), 안드레 드루먼드(디트로이트)같은 빅맨진도 보강했다.

듀란트의 대체멤버로 가세한 루디 게이(새크라멘토)와 케네스 페리드(덴버) 등도 포워드로 분류되지만 스몰라인업 시에는 골밑까지 활용할수있는 자원들이다. 실질적인 공격의 에이스가 될 것으로 보이는 하든의 활약과, 부상경력이 잦은 MVP 출신 로즈의 컨디션이 변수다.

미국의 대항마는 이번에도 홈팀 스페인(FIBA 랭킹 2위)이 유력하다. NBA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는 스페인은 홈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올림픽 2회 연속 결승 패배의 아쉬움을 설욕하겠다는 각오다. 파우-마크 가솔 형제, 서지 이바카 등이 포진한 골밑은 참가국 중 최강으로 꼽힌다. 호세 칼데론과 루디 페르난데스,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 등이 버틴 가드진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이밖에도 남미의 전통 강호 아르헨티나, 동구권의 강자 리투아니아 등도 주목할 만한 팀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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