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올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끊이질 않는 뉴스가 있다. 여전히 수색중인 10명의 실종자와 3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은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것이다. 넉달이 넘는 기간동안 많은 뉴스가 보도되었고, 사건 초기부터 오보도 줄을 이었다. 그 덕분에 어떤 사람들은 참사가 발생한 지 오래 지난 만큼 이제 세월호 참사를 잊고 지내려 노력하기도 한다. 지속적인 노출로 사안에 대한 피로도가 많이 쌓였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를 반영한 것인지, 최근 주요 언론도 동참하는 분위기였다. 공중파 방송과 '조중동'으로 압축되는 보수언론은 세월호 이슈를 최소한의 빈도로 기사화하려는 듯했다.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었고, 사고가 정부의 실책으로 인식되어 여당에 불리한 결과를 낳는 일을 줄이고 싶었던 것일까. 실제로 세월호 참사와 직후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속도로 추락하며 일각에서는 조기 레임덕까지 거론된 바 있다.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여 유가족을 만나 슬픔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미디어가 피하고 싶었던 사안이었나 보다. MBC를 비롯한 방송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세운 차에서 내린 교황이 손을 맞잡은 장면 대신, 박근혜 대통령과 교황이 함께한 모습을 화면에 내보냈다.

그런데 요즘 갑작스럽게 다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소식이 언론에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다. 바로 세월호 유가족 중 한 사람인 김영오씨다. 유민아빠로 불리던 김영오씨는 최근 보수언론의 집중포화의 대상이 되었다. 40일이 넘는 단식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대화를 요구하는 그를 끝내 무시한 정부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세게 변했기 때문이었던 때문이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던 새누리당도, 목숨을 건 그의 행보에 궁지에 몰린 모양새였다.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이제는 그의 취미생활과 경제적 상황, 노조가입까지도 '아빠의 자격'을 묻는 조건이 되었다.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주요언론들은 '김영오 죽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실제의 상황을 부풀린 자극적인 보도가 꼬리를 물었다. <매일경제>를 비롯한 경제지도 거들었고, 공중파에서는 MBC, 종편도 이를 열심히 거들었다.

결국 그는 이혼한 뒤 자녀에게 제대로 된 양육비를 보내주지 않았으면서도 '황제의 취미'인 활쏘기를 즐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좋은 아빠가 아니면서 죽은 자식을 이유로 정부를 비판하는 인물로 포장되었다. 정규직이 되면서 노조에 가입된 부분도 헌법에 명시된 노동법이 보장하는 사안이지만 이를 근거로 불순한 세력에 가담한 것처럼 회자된다.

계속해서 거론되는 '개인'의 책임

연이은 의혹성 기사들은 김영오씨에게 집중되었다. 의도된 마타도어(흑색선전)가 노린 대상은 힘없고 약한 개인이었다. 그는 단식으로 쇠약해진 몸에 지쳐가는 중이라 언론의 압박을 견디기 힘든 상태이기도 했다. 광화문에서의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의지를 밝힌 김영오씨의 단식은 끝내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채로 끝나고 말았다.

사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뒤부터, 언론과 정부가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경향은 이미 드러났다. 처음에는 세월호의 선장이었다. 승객을 내팽개치고 먼저 탈출한 그에게 사태의 모든 책임이 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물론 선장이 승객들에게 탈출 명령을 내렸더라면 사고의 피해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예상되기에, 이러한 비난은 타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대통령조차 선장을 살인자로 묘사하며 엄벌을 거론했다.

그러나 추가되는 기사에서 해경의 안일한 태도와 정부의 선령 규제완화가 참사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자연스럽게, 선장이 잘못했지만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외신에서도 대통령이 선장만을 비난하며 책임회피를 하는 것 아니냐고 보도할 정도였다. 결국 선장 한 명으로는 부족했는지 다음 타자는 청해진 해운의 유병언씨가 지목되었다.

불법적으로 선박을 개조하고 한계보다 더 많은 짐을 채워 위험을 자초한 그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었다. 정부는 유래없이 높은 금액의 현상금까지 걸어 그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백골이 된 사체였고, 표적을 잃은 분노는 다시 정부를 향했다.

사고가 일어난지 4개월이 지난 8월, 이제는 언론의 대다수가 세월호 사고의 책임자를 찾는 일조차 잊은 듯 하다. 오히려 사고의 원인을 밝혀달라고 묻는 세월호 유가족이야말로 사회의 문제를 야기시키는 집단이라는 듯이, 김영오씨에 대한 의혹과 비판만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사고에 대한 것은 모두 잊고, 경제를 살려야 할 시기라고 대통령과 여당은 주장한다.

무책임한 권위의 시대

따지고 보면 세월호 참사 뿐만 아니다. 사회를 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와 언론이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은 점점 더 낮은 곳을 향했다. 최근 연이어 폭로되고 있는 군 부대 내의 사고들도 그렇다. 동료들간의 따돌림에 분노하여 아군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가혹행위와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병사가 사망한 일까지 연이어 폭로되었다.

그럴 때마다 원인으로 개인이 지목되었다. 아군에게 총기를 난사하고 탈영한 병사는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라며 언론들은 마치 개인의 일탈인 양 묘사했다. 가혹행위와 구타로 사망한 병사를 두고서는 국방부 대변인이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는 따돌림과 구타가 이어져도 신고하기 힘든 군의 폐쇄성은 뒤로 하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였다.

정작 집단을 바꿀만한 힘을 지닌 인물들은 스스로 시스템의 문제나 관리부실을 인정하기를 꺼리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면서 "엄벌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권위적인 태도만을 취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질 뿐, 사고의 원인이 속시원히 밝혀져 무언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은 희박하다.

슬프게도 오늘날의 한국은 무책임한 권위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집단과 사회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돌아올 화살을 아래로 돌려내고 있다. 그런 회피의 반복으로 개인이 희생양으로 소모되고 있다. 그런 식으로 사안을 대하기에 사고는 비슷한 양상으로 되풀이될 따름이다. 이렇듯 불안한 현실은, 마치 내 차례에서 터지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서로에게 폭탄돌리기를 하는 모양새다.

권위와 더불어 책임감도 갖추기를

바야흐로 21세기가 된 시기에도 한국은 여전히 권위주의로 물들어 있다. 그런 이유인지 정부에 대한 비판은 '체제전복을 시도하는 좌빨의 선동'으로 치부되고, 대통령을 향한 유가족의 요구는 '건방진 행동'이 되어버린다. 말하자면 '감히 니가 뭔데 높으신 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투다.

되묻고 싶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권력이 어찌 정당성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느냐고 말이다. 지도자의 자격은 위엄과 강력함 뿐만이 아니다. 엄격한 잣대를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도 겨눌 수 있어야 마땅하다.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힘없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행동은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바야흐로 그 무엇보다 더욱 절실하게 '지도자의 자격'이 요구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개인의 신상을 캐고 '아빠의 자격'을 묻기 전에, 사고가 완전히 수습되기도 전에 유가족을 외면한 대통령의 행동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사고 발생 한달이 지난 시점 열었던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린 마음이,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리겠다던 그 말이 진심이었다면 말이다.

부디 피해자인 김영오씨와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악담이 그치기를 바란다. 더 이상 세월호 사태로 인한 '에너비 낭비'를 원하지 않는다면,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가장 효율적이고도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이다.


태그:#세월호 참사, #군대 문제, #개인, #사회, #무책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