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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이 커지고, 이러다 삼류 대학으로 떨어지겠죠…."

경기대학교 교수협의회에 소속된 A교수는 지난 2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 중 한 숨을 내쉬었다. 지난 25일 교육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아래 사분위)는 교비 52억 원을 빼돌려 지난 2004년 학교에서 쫓겨난 손종국 전 총장 쪽에 이사 한 명을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옛 재단과 학교구성원·교육부 추천 이사 비율이 3:3인 상황에서 나온 사분위의 결정으로, 옛 재단은 이사회에서 과반수 이사를 확보함에 따라 학교를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이 교수는 "학교를 발전시킬 능력이 없는 손 전 총장이 학교를 장악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라면서 "사분위가 손 전 총장의 복귀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졌다"라고 말했다. 손 전 총장이 쫓겨난 뒤 교육부가 추천한 임시이사들이 학교를 이끌어나갔다. 2012년 사분위는 학교를 정상화시킨다면서 정이사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때 사분위는 손 전 총장 쪽에 세 명의 이사 추천권을 내줬다.

A교수는 "사분위는 이명박 정권 이후 분규가 일어난 사학을 정상화시키겠다면서 비리를 저질러 쫓겨난 옛 재단에 학교를 되돌려주는 정책을 펴고 있다"라면서 "학교 내의 혼란은 더욱 확산되고 학생과 교수 등 학교 구성원들이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사분위가 사학 분규를 조장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사분위는 사학 정상화 걸림돌"

김문기씨가 상지대 총장에 선임되자, 상지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50여 명이 지난 17일 상지대 총장실 앞에서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김문기씨가 상지대 총장에 선임되자, 상지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 50여 명이 지난 17일 상지대 총장실 앞에서 점거 농성에 돌입했다.
ⓒ 윤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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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분위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1993년 상지대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중 입시비리 등으로 구속돼 쫓겨난 김문기씨가 최근 21년 만에 총장에 올라 학교 경영에 복귀했다. 사분위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분위 책임론이 거세다.

사분위는 임시 이사 파견, 정이사 임명 등을 통해 분규가 발생한 사학을 조속히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2007년 12월 출범했다. 그해 7월 사립학교법 재개정의 결과물이었다. 사분위는 모두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3명, 국회가 3명, 대법원장이 5명의 위원을 추천한다.

첫 출범 때는 보수와 진보 성향 위원간의 균형이 맞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분위에는 사학의 공공성보다는 사유재산권을 강조하는 보수 인사가 득세했다. 또한 사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위원들도 선임됐다.

2011년부터 2년간 사분위 위원장을 맡았던 오세빈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동인은 동덕여대 옛 비리재단의 소송 대리를 맡아 비판이 거셌다. 당시 사분위는 동덕여대에는 옛 재단이 복귀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2011년에는 강훈 당시 위원이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바른 역시 옛 비리재단 쪽 소송 대리를 맡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2011년 4월 야당 추천으로 사분위에 임명된 후 그해 11월 사퇴한 김형태 변호사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사분위원을 하면서 로비를 많이 받았다, 나랑 친한 변호사를 소송 대리로 세우기도 하는 등 로비가 말도 못하게 심했다"라면서 "전문성도 없고 결과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는 사분위원들이 사학 정상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정상화 심의 원칙... 비정상을 만들다

사분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옛 재단 쪽에 과반수의 정이사 추천권을 부여하는 '정상화 심의 원칙'이라는 내부지침이다. 이 지침은 2007년 5월 대법원 판결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법원은 임시이사들로 구성된 상지대 이사회가 비리로 쫓겨난 김문기씨의 의견을 듣지 않고 9명의 정이사를 선임한 것을 두고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면서도 "김씨 등이 정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되살아난다고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주심 대법관이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도 2010년 9월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옛 재단의 복귀를 허용한 결정이 아니다"라며 이를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정상화 심의 원칙은 바뀌지 않고 있고, 분규가 일어난 사학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지대다. 2010년 8월 사분위는 김문기씨가 구속된 1993년 이후 상지대를 17년 만에 정상화하겠다면서 정이사를 선임했다. 사분위는 정상화 심의 원칙에 따라 김씨 쪽에 아홉 명의 이사 중 다섯 명에 대한 이사 추천권을 내주기로 했다. 논란이 커지자, 사분위는 김씨 쪽에 네 명의 이사 추천권만 내주고, 교육부가 추천하는 임시 이사 한 명을 선임하도록 했다.

김문기씨 쪽이 이사회의 과반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김씨의 아들 김길남씨가 이사직에 올랐다. 2014년 사분위는 임시 이사를 대신할 정이사 한 명에 대한 추천권을 김씨 쪽에 내줬다. 결국 김씨 쪽이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했고, 김씨는 총장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상화 심의 원칙의 근거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허물어졌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1월 사립학교법의 사분위 관련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 사건 결정문에서 "최근에 정상화가 이뤄지거나 정상화 절차가 진행 중인 학교법인들의 경우 종전이사 등 구 재단 측에 과반수의 정식이사 추천권을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다른 학교구성원들로부터 반발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정상화 단계에서 반드시 종전이사 등이 이사회로 복귀하거나 이들에게 정식이사 선임의 주도권을 부여하지 않더라도 정관에 명시된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이 유지되고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면 학교법인의 정체성은 의연히 유지·계승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분위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 "해체해야"

사학비리척결과 사학분쟁조정위(사분위)폐지를 위한 국민행동 소속 여대생들이 2011년 6월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6.23 사분위 심의 중지와 사분위 폐지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소복을 입고 참석하고 있다.
 사학비리척결과 사학분쟁조정위(사분위)폐지를 위한 국민행동 소속 여대생들이 2011년 6월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6.23 사분위 심의 중지와 사분위 폐지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소복을 입고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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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분위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사분위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인 탓에 외부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분위 결정에 대한 재심 요청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만 할 수 있다. 교육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재심 요청을 하지 않았다. 재심 요청을 하더라도, 사분위 재심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사분위는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결정 내용만 공개한다. 사분위는 각 위원들의 발언을 확인하는 절차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회의록 초본(속기록)을 폐기하고 있다. 회의록 폐기 논란이 제기됐지만, 사분위는 "속기록은 공공기록물이 아니"라며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사학 분쟁의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학교 구성원들은 사분위가 어떠한 이유로 비리재단에 학교를 돌려주는 결정을 하는지 알 수 없다"라면서 "교육부가 사분위에 전권을 줬기 때문에, 사분위는 학교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병국 '사립학교 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정상화 심의 원칙은 사분위가 자체적으로 만든 것으로, 법적 근거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단체의 상임대표인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지난 2007년에 만들어진 사분위는 7년간 비리 재단의 복귀 통로로서의 역할을 했다, 60~70개의 사립학교들이 분쟁을 겪었는데, 단 한 곳도 정상화되지 않았다"라면서 "사분위를 해체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태그:#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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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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