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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2012, 안녕 중앙 아메리카

2013년 새해에 나는 마이애미에 있었다. 마그마를 목격하고 돌아온 다음 날, 중앙 아메리카의 끝인 과테말라로 가는 모든 버스가 만석이었던 것이 이유다. 그것도 앞으로 꼬박 일 주일간 동안이나.

더 이상 의지도 호기심도 없는 몸을 이끌고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공원 벤치에 앉아 느릿한 풍경을 보며 덧없는 시간을 흘려 보내던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수도인 마나구아로 이동해 다시 곧바로 공항으로 갔다.

목적지가 마이애미였던 것은 내가 마이애미를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멕시코로 가기 위한 환승 지점 중에 비행기가 가장 저렴했을 뿐이었다. 그라나다의 숙소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결국 중앙 아메리카와는 이렇게 다툰 채로 이별을 하게 되었노라고. 비행기를 타야 하니 새해에는 연락이 안 될 거라는 말도 남겼다.

인적이 드문, 불이 꺼진 공항에서 2012년의 마지막을 놓친 채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새우잠을 보내던 그때 바깥에서 총성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2013년 1월 1일 자정,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의 공항에서 바라본 새해 축포.
 - 2013년 1월 1일 자정,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의 공항에서 바라본 새해 축포.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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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박한 마음에 바깥으로 나온 내 눈에 띈 것은 새해를 알리는 불꽃놀이였다. 안팎으로 상처 입은 내 몸은 새해를 알리는 축포를 총성과 비명으로 받아들였다. 포옹과 키스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모르게 불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겨울의 첫 눈 대신 불꽃이 내린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다시 마주할지 알 수 없는, 제 3세계와의 갑작스런 이별은 그래서 더 쓸쓸했는지도 모르겠다.

카리브해의 신세계, 마이애미

갑자기 나타난 인터넷과 전철과 요란한 자동차들을 보니 중앙 아메리카에서 보냈던 지난날이 까마득하게 어둠 속에 빠지는 기분이다. 오전에 도착한 2013년 첫 날의 마이애미의 기온은 30도 가량이었지만 나는 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공항에서 내려 공항철도를 타고 터미널을 건너 다시 버스에 올랐다. 어디서나 불어오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이곳이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인 미국임을 상기시킨다.

 - 마이애미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 베이사이드에서부터 이어진 해변공원과 요트 선착장은 대도시 마이애미를 마치 아름다운 정원처럼 느껴지게 한다.
▲ 마이애미 베이사이드 - 마이애미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 베이사이드에서부터 이어진 해변공원과 요트 선착장은 대도시 마이애미를 마치 아름다운 정원처럼 느껴지게 한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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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 자리잡은 미국 최고의 해변인 사우스 비치(South Beach)와 마이애미 시티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의 발걸음은 결국 해변가로 향했다. 해변에서 겨우 200~300m 남짓 떨어진 거대한 호스텔은 낮부터 요란한 음악과 조명으로 어지러웠다. 혼자 있을 만한 곳은 아니다 싶어 잠시 해변가를 등지고 시내 중심부로 나섰다.

새해였던 탓에 문을 연 곳이 절반도 되지 않던 부둣가는 고요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카리브 해의 신세계를 그냥 지나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천천히 부둣가로 걸음을 옮기던 내 시선을 뺏은 것은 몇 안되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시끄러운 소리로 떠드는 앵무새였다.

새빨갛고 새파랗던 녀석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자 주인이 돈을 요구한다. 지금 막 그 앵무새의 고향인 코스타리카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자 그는 '아미고'(친구) 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해변에서 나오면 끝없이 이어지는 카페거리와 경비행기를 활용한 광고, 아르데코 풍의 아름다운 건물 등 마이애미의 아름다움은 끝이없다.
▲ 마이애미의 다양한 모습 해변에서 나오면 끝없이 이어지는 카페거리와 경비행기를 활용한 광고, 아르데코 풍의 아름다운 건물 등 마이애미의 아름다움은 끝이없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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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오게 된 마이애미의 첫 인상은 부촌이 즐비한 '미국' 그 자체였지만 사우스 비치로 향하는 거리를 걷다 마주친 풍경들은 달랐다.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낮은 건물 바깥으로 나있는 널직한 베란다를 가진 고급 맨션들과 파랗고 노랗고 빨간, 파스텔 풍의 그림 같은 아르데코(Art Deco)형 건물들은 마이애미를 단순한 대도시 이상으로 만든다. 

저마다 팔에 무언가를 두르고 헤드폰을 낀 채 조깅을 하거나 세그웨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경비행기가 글자를 흩뿌리며 하늘을 날았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순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역동적이고 힘이 넘치는 것이 아닌, 차분하고 고요한, 아름답고 향수를 부르는 그런 미래.

하지만 아르데코 거리를 지나쳐 사우스 비치와 마주하면 그 모든 것이 사우스 비치에 대한 기대를 고조 시키기 위한 조연쯤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인 마이애미의 사우스 비치를 처음 보면 그 규모에 놀란다.

좁은 폭만 해도 수십 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백사장도 그렇거니와 해변에 서서 좌우를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면 마치 수평선처럼 눈이 멀 것같이 아득하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 해변을 본 것은 처음이다.

 -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인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는 단언컨대 전세계 대도시의 해수욕장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 사우스 비치 -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인 마이애미 사우스 비치는 단언컨대 전세계 대도시의 해수욕장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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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빛에 어지러움을 느낄 때쯤 다시 발길을 돌려 나오는 길에, 밤새 파티를 벌였을 사람들이 내놓은 맥주병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새해를 환영하는 인파들에게 밤새 시달렸을 것이다.

그 순간 '비치 보이스'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과연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그 희망사항은 코스타리카에 도둑맞은 핸드폰에 대한 안타까움마저 같이 불러일으켰다. 겨우 몇 가지 사건들로 인해, 중앙 아메리카는 혀로 자꾸 건드리게 되는 입천장의 헐은 상처 같은 기억이 되어 버렸다.

그냥 돌아서기는 아쉬워 백사장 바깥으로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기어코 한쪽 끝에 닿았다. 그 눈부신 풍경을 보고 나는 돌아가서 대체 무엇이라고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 하루에도 여러차례 드라마, 영화 촬영등으로 인기가 많은 사우스비치 남쪽의 공원. 초고층 빌딩과, 열대 나무, 최고급 요트 등을 한번에 볼 수 있는 마이애미의 대표적인 뷰포인트다.
▲ 사우스 포인트 파크(South Point Park) - 하루에도 여러차례 드라마, 영화 촬영등으로 인기가 많은 사우스비치 남쪽의 공원. 초고층 빌딩과, 열대 나무, 최고급 요트 등을 한번에 볼 수 있는 마이애미의 대표적인 뷰포인트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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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역자로 꺾인 길을 돌자 이번에는 푸른 야자수가 목을 길게 뻗은 공원이 이어졌다. 해변이 여행객의 몫이라면 공원은 이곳 사람들의 몫이다. 한쪽에는 나란히 줄을 선 아버지들이 어린 딸의 그네를 밀어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이애미라면 모든 남자들을 애처가로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 구름아래 널린 오색 빨래가 묘한 풍경을 만든다.
▲ 마이애미의 한 때 - 구름아래 널린 오색 빨래가 묘한 풍경을 만든다.
ⓒ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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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달했을 때 나는 무언가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만국기인가 했던 그것은 알록달록한 빨래였다. 대체 누가 건물 높이만한 야자수의 꼭대기에 빨랫줄을 달았을까 싶어 가까이서 보니 줄은 양쪽 끝 건물에 메여져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에나 어울릴 법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눈을 감았다. 아스팔트가 아닌 울퉁불퉁한 도로 위에 자리잡은, 하나같이 기구한 세월을 겪은 건물들, 길 뒤편으로는 길 잃은 동물들이 유유히 걸어 다니고, 바깥으로 널린 빨래가 바람에 나부껴 손을 흔드는 풍경들 사이로 꽃이 피어났다.

아무래도 너무 급하게 중미를 떠나왔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히 숙소로 돌아온 나는 부랴부랴 멕시코로 향하는 항공권을 끊었다. 멕시코 여행을 3주 정도로 잡고, 그 한 달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도 샀다. 여행을 하면서 한 달 뒤의 일정을 미리 예약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 노을이 질 때, 아르데코 지구(Art Deco District)를 방문하면 현란한 불빛 사이로 검게 모습을 감추는 야자수의 환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 아르데코 지구의 야경 - 노을이 질 때, 아르데코 지구(Art Deco District)를 방문하면 현란한 불빛 사이로 검게 모습을 감추는 야자수의 환상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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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를 떠나기 전날 밤, 나는 해가 질 무렵에 아르데코의 거리를 서성였다. 마침 거리는 건물 색깔에 꼭 맞는 요란한 불빛으로 밤을 밝히려던 참이었다. 거리의 왼쪽에는 야자수가 줄지어 있었는데 멀리서 보니 마치 야자수가 불빛 아래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숨 가쁘게 바쁘게 살아온 황혼의 어느 날, 갑자기 지난 날을 추억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고 싶어진다면 마이애미로 와야겠다. 그렇다면 그 전에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썼다는 키 웨스트에 가보는 건 어떨까? 나는 즉시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간략여행정보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휴양지인 마이애미는 마이애미 비치와 마이애미 다운타운으로 구역이 나뉜다. 다운타운 공항과 가깝고 행정구역과 거대 쇼핑몰이 부둣가와 어울려 색다른 대도시의 느낌을 내는 곳. 마이애미 비치는 여의도처럼 섬이지만 두 개의 다리로 다운타운 연결되어 있으며 사방이 카리브해다.

1월 겨울에도 낮 기온 30도의 열대 기후를 가진 마이애미의 사우스 비치는 세계 어느 섬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대도시의 바다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예쁘다. 백사장을 빠져 나와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온갖 펍과 분위기 있는 카페,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는데 밤에는 이 모든 곳이 현란한 레이저 광선과 함께 야외 클럽으로 돌변한다. 프랑스의 예술가에게서 영감을 얻어 꾸며진 거리 아르 데코 디스트릭트(Art Deco District)도 빠트릴 수 없는 관광지 중 하나.

좀 더 자세한 마이애미 여행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5621948



태그:#마이애미, #사우스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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