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여름은 매미 소리가 무척 시끄러웠습니다. 극성스러운 매미는 아파트 베란다 방충망 위까지 날아와 쩌렁쩌렁 울어댔지요. 5년 전 여름, 그날도 매미 소리가 시끄러웠습니다.

그해 8월, '구(舊) 이장님 댁'이라는 별칭을 가진 고향 집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추 말리기에 정신없었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즈음엔 김장 배추 모종 낸다고 바빴습니다. 생전 큰 병원 한 번 가보지 않았던 구 이장님 사모님, 그러니까 저희 엄마는 2~3년마다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에서 자궁 쪽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습니다.

부인과 치료 피하시다가 '자궁암 판정'... 잘 극복하신 우리 엄마

발견한 첫해에는 그저 '뭐 염증 정도려니' 무시하고 넘기셨습니다. 아니 무시했다기보다는 산부인과 진료를 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셨겠지요. 그 후 또 다른 건강검진에서 자궁암 초기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구 이장님 댁'은 호떡 집에 불난 것보다 더 정신이 없었습니다.

당시 육아휴직 중이던 동생은 아이를 포대기에 매달고 엄마의 이런저런 검사를 위해 뛰어다녔고, 나머지 딸들도 여름휴가 일 주일을 병실에서 보냈습니다. 초기에 치료했다면 부분 치료가 가능했을 테지만 발견 후 2~3년이 지난 뒤라 자궁 전체를 적출해야 했습니다.

3시간 40여분 계속된 수술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습니다. 수술 후, 가로로 크게 생긴 엄마의 상처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던 여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못지 않은 유머 감각을 가지신 우리 엄마, 드레싱하러 들어온 수련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내 배 예쁘게 꼬매졌수? 비키니는 입을 수 있는 거야?"

큭. 내년이면 일흔인 할머니가 비키니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데, 그 의사 선생님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하던 일만 대충 마무리하고는 나가셨지요. 올해 여름, 암 수술 후 조금은 마음을 놔도 된다는 5년이 지나갑니다.

당당한 미소와 함께 브이!
 당당한 미소와 함께 브이!
ⓒ 김춘미

관련사진보기


엄마 생신도 기념할 겸 겸사겸사 다녀온 수영장에서 우리 구 이장님 사모님, 당당하게 각선미를 드러내셨습니다. 비키니는 못 입으셨지만, 그래도 수박 느낌의 랩 스커트도 입으셨습니다. 큰 수술을 하시고도 건강하게 회복하신 엄마, 정말 감사하고 또 고맙습니다. 멋지게 브이 하시는 할머니. 여전히 산부인과는 조금 불편해하시지만 그래도 잘 다니십니다.

산부인과의 그 불편한 의자에 앉는 건 누구라도 꺼림칙합니다. 하지만, 병을 발견 못해 더 큰 병으로 커지면,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은 그 아픔으로 더 힘들어집니다. 아가씨든 아줌마든 할머니든, 산부인과 진료 그냥 내과 가듯이 편하게 드나들자고요!

덧붙이는 글 | 자궁암 수술을 하신 후 올해 꼭 5년이 되는 해입니다. 건강하게 잘 관리하시는 엄마가 정말 감사하고, 또 그래서 이 여름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태그:#수박배바지, #할머니 수영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