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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명작가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중학생 딸아이 숙제 중에 장래직업에 대해 인터뷰 하는 과제가 있는데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 만나는 일이 직업이었지만, 막상 장래직업에 대한 인터뷰라고 하니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작가는 언제부터 꿈꿨어요?" 이런 일반적인 질문에서부터 "작가 연봉은 얼마예요?"와 같은 중학생 아이들이 궁금해하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런저런 끝에 그 아이는 "작가라는 직업이 저의 장래희망으로 추천할 만한가요?"라는 뜨끔한 질문을 남기고 돌아갔다. 글쟁이로 살겠다며 굳은 마음으로 달려왔건만, 아이에게 선뜻 작가라는 직업을 추천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프다.

나는 무명 작가다. 하지만 남들은 평생 1권도 쓰기도 힘들다는 책을 4권이나 출간한 어엿한 글쟁이다.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한 글쟁이임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어렵게 택한 길이지만, 분명 글쓰기를 좋아하고 여전히 칼럼이든 기고 글이든 꾸준히 글을 써내는 글쟁이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안다. 지난 28일 뉴스에 나왔던 <구름빵>이라는 책의 원작자 얘기가 눈에 밟힌다. 무려 4400억 원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책의 원작자가 받은 인세는 고작 1800여만 원이라는 기사가 이 땅 작가들의 실정을 말해주고 있다.

물론 출판계 일부의 일이라고 말하겠지만, 꼭 저작권 문제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창작자(작가)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맘 편히 창작에 몰두할 수 있겠는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지만 이런 현실에 참 답답한 생각이 든다.

그나마 평대에 누워 있어야 독자 눈에라도 띈다.
▲ 평대(좌)와 벽면(우) 서가 그나마 평대에 누워 있어야 독자 눈에라도 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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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불편한 진실

1. 무명저자가 살아 남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길
저자가 책 출간하면 다 잘 될 줄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저자는 출간하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특히 무명 저자의 길은 험난하고 암담하다. 보통 신간이 출간되면 서점에서는 약 일 주일에서 보름 정도(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대에 누워 있다가 기간이 지나면 쏟아지는 신간에 밀려 벽면 책꽂이로 들어간다.

벽면에 책이 들어가면 사실 그 책의 생명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 서점에 가보면 알겠지만 일단 평대가 아니면 독자들은 벽면 책은 잘 보지 않는다. 벽면에 세로로 꽂힌 수많은 책들 중에 내 책이 선택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서점에서는 한정된 공간에 밀려드는 신간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서점에서는 자리 좋은 위치의 진열대는 별도 홍보 비용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돈에 의해 일부 베스트셀러가 조작 아닌 조작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중소 출판사나 무명 저자는 감히 그곳에 자리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인터넷 서점도 무명 저자가 살아남기에는 역부족인 환경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화면 상위에 무명 저자의 신간이 노출된 확률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서점의 할인 경쟁으로 오프라인 서점이 점점 더 사라져 가고 있어 오프라인을 통한 홍보의 길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위와 같이 무명 저자가 자기 책을 독자에게 선보일 기회는 초기 10일 정도 말고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것도 중견 출판사에서 출간했을 때의 말이다. 영세 출판사나 1인 출판사 신간들은 그나마 평대에도 자리 잡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2. 책을 잘 쓰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글만 잘 쓴다고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말한 것처럼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홍보를 해야하며 인터넷 세상에서는 이슈화(저자의 명성 등) 되지 않는 책은 사장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작가든 무명 시절 없었던 사람은 없다. 타고난 작가도 있겠지만 이런 무명 저자를 발굴하여 양성하는 것도 출판계의 몫이라 생각한다. 사실 출판사와 계약하고 책을 출간한 저자들은 이미 출판에 대한 검증을 거쳤다. 출판사에서는 아무 원고나 책으로 내주지 않는다. 그것이 사업이니까. 수많은 원고들 중에 고르고 골라 팔릴 만하고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원고를 골라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다.

실제 나도 첫 책 출간 시 수십 군데의 출판사로부터 수년간 거절 당한 경험이 있다(물론 글 잘 쓰는 작가는 단번에 계약하는 이들도 많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출간 경로를 거친 대부분 책들은 이처럼 이미 원고 수준 검증을 통과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출판사의 규모나 저자 지명도 등의 영향으로 좋은 책들이 묻혀 버린다면 점점 작가들은 줄어들 것이 뻔하다.

책을 한 권이라도 써본 사람은 안다. 책 한 권 나오기까지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치는지.글을 쓴다는 것은 누에가 수많은 뽕잎을 씹어 먹고 그 자양분으로 한 올 한 올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작업과 같다. 책 한 권은 이런 지난한 작업을 거쳐 탄생하게 된다. 책 출간을 출산에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저자의 책은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인류의 재산이 될 저자 발굴이 되고 그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로 인류 문명은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더 많은 신인 저자를 발굴하는 일, 더 좋은 창작물이 나올 수 있도록 저자들을 보호하는 일, 무명 저자지만 좋은 책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일, 이것이 21세기 문화대국을 만드는 지름길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3. 출판계와 정부에 바란다
출판계는 더 이상 돈 되는 곳에만 집중하지 말고 저자 발굴에 더 힘을 써야 한다. 외국 작가의 검증된 책만 선호하는 출판 관행을 깨고 국내 저자 발굴에 더 힘을 쓰길 바란다. 국내저자들이 발굴되지 않는 출판 시장은 결국 서서히 도태되게 된다. 저자들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보지 말고 정당하게 대우하고 보호해주길 부탁한다.

정부에 바란다. 정상적인 출판 프로세스를 거친 책의 경우 초판의 50% 이상을 구매하여 전국의 도서관에 비치해주길 바란다. 요즘은 보통 초판을 2000~3000부(유명 저자의 경우는 더 많음)를 찍는다고 한다. 하지만 초보 저자들의 90% 이상이 초판도 다 판매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앞서 말한 우리나라 출판계 현실과 OECD평균 최저의 독서량(월0.8권) 등을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러니 출판사 입장에서도 무명 저자를 선뜻 계약하지 못하는 것이고 어렵게 나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벽면 서고로 들어가서 묻히게 되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출판계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런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하다.

국내 저자에 의해 책이 출판되지 않는 나라, 국민이 책을 안 읽는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하다. 이제부터라도 출판계와 정부는 제2의 <구름빵> 저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많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바란다.

나도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작가를 장래희망으로 추천하고 싶다.


태그:#구름빵 인세, #출판계, #전병호, #작가,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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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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