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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그날 저는 철원 목련 공원으로 부모님 성묘를 가는 중이었는데 소식을 차 안에서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쓰셨고, 중단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는 지난 "왜 나는 김영오 선생의 단식을 반대하는가?"라는 글에서, 아무리 숭고한 뜻이라도 생명을 내던지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노모와 언니를 잃은 둘째 유나도 아빠의 단식중단을 강력히 호소했다고 하더군요. 가족이 이미 씻을 수 없는 고통을 겪었는데,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남아 있는 딸과 노모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이지요.

김영오 선생이 "살아서 투쟁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천부당만부당 옳은 이야기입니다. 투쟁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첫 단추뿐만 아니라 그 특별법에 의해 '누가' 특검 위원이 되고, 그들이 '어떻게' 참사의 원인을 밝히는가, 하는 과정들 모두 국민의 감시와 비판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수사권·기소권 보장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46일간 단식을 한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시립동부병원에서 단식을 중단하고 보식을 시작하며 '미음'을 먹고 있다.
▲ '미음'으로 보식 시작한 유민 아빠 수사권·기소권 보장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46일간 단식을 한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시립동부병원에서 단식을 중단하고 보식을 시작하며 '미음'을 먹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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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밝혀 책임 있는 관련자들을 기소해 법정으로 보낸다고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법원의 판단을 이끌어내는 과정, 그리고 그 법적 판단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수없이 많은 방해와 장애물이 있을 것입니다. 국민은 이 과정을 통해 사회 현실에 관심 갖고 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동시에 정치를 학습하는 과정으로 삼아야 합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은 결코 일시적 감정과 행동 한 두 번으로 마감되지 않습니다.

특별법을 간절히 원하시나요? 감사원장을 지낸 존경받는 법조인 한 분이 그런 말을 했더군요. '입법 요구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요. 물론 맞습니다. 그런데 이 국민이라는 게 굉장히 애매모호한 이야기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은 대단히 포괄적인 말이지만, 실상 유권자로서 입법을 요구하는 구체적인 개인들은 다 다릅니다. 간절히 원하는 국민이 있는 반면, 지독하게 싫어하는 국민들도 있으니까요.

법이 국민의 자유 의지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원하는 국민 의지가 있지만 원치 않는 국민의 의지도 반영될 수밖에 없지요. 그들의 의지가 나와 다르고 맘에 안 든다고 무시하고 배제할 수는 없는 겁니다. 내가 그들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이기려 들면 그들도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우리를 이기려 들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를 하는 것이고 타협과 관용의 정신, 법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지금 성역없는 수사권과 조사권을 거부하는 세력이 분명히 있습니다. 법은 내 마음과 내 바람만 가지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설령 나의 의지가 순수하고 고결하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법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고 정신입니다. 성역없는 수사권과 조사권이 초 헌법적이라는 반발에 어떤 역사학자는 반민특위 시절을 예로 들면서 설명했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런 권한을 가지고 어떻게 했습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결국은 해체되지 않았습니까? 국민 의식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실행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이 없는 법 조항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지요.

결국 우리가 기댈 것은 시민의 힘으로 이룬 '민주주의'

한국사회에서 법이 없어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패한 관행이 일어난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무법, 위법, 초법적인 행위에 다들 적당히 눈감고 넘어가 버리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묵인해버리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문제를 들추기라도 하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하면서 왕따시키는 사회가 우리 사회 아닌가요? 제 말은 적당히 물타기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법을 물신화하고 만능열쇠인 것처럼 만들어 놓고, 모든 에너지를 그 한 조항에 걸어 놓는 싸움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많은 사람에게 부당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조항이 없으면 진상 조사 못 하고, 진실을 규명할 수 없나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한국의 수사체계와 사법체계는 다 껍데기일 뿐이라는 건가요? 그런 사고의 밑바탕에는 기존 법체계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깔려있는 것이고, 이런 사고는 결국 우리 사회와 자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사법체계를 불신한다면 설령 진상을 규명했다고 하더라도 정의로운 사법적 판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판단을 받아도 정의로운 법 집행은 요원하지요. 이 상태에서 어느 세월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까? 총체적 불신 사회에서 누가 이를 만들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가 기댈 곳은 법이고 민주주의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 법을 준수하고, 민주주의의 절차와 타협의 정신을 지키면서 우리 사회 체제의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 방식을 바꿔 나가야겠지요. 깨어있는 국민들의 비판적 정신과 끊임없이 바꾸어 나가려는 실천적 행동도 중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증오하고 불신하는 정신은 사회를 병들게 할 뿐입니다. 한순간의 한풀이가 통쾌한 기분이 들게 할지는 몰라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도덕적 순결과 종교적 순교가 잠깐 우리 정신을 위로할지는 몰라도 그것들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최종 심급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보다 합리적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끝까지 싸워나가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종철은 현재 연세대학교 철학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태그:#유민아빠, #김영오, #단식, #법,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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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사회 비판, 예술 등에 관심있습니다. 전 몽골 Huree ICT University 한국어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연세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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