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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鎭魂)이란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어 고이 잠들게 한다는 뜻이다. 지난 5월 31일 인천연안부두 해양광장에서 '2014 인천평화축제'가 '진혼'이란 제목으로 열렸다.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아래 민예총)과 (사)인천민예총이 주최한 이 행사의 제목은 '진혼'이었다. 주제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위령제였다.

"예술은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고 그 현장에 있어야한다"는 김병균(49·사진) 인천민예총 사무처장을 지난 19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세월호가 출발한 연안부두에서 추모위령제 열어
   
김병균 인천민족문화예술인총연합 사무처장.
 김병균 인천민족문화예술인총연합 사무처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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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 김금화 선생님이 진혼굿을 하셨는데 너무 힘들어 하셨어요. 억울하게 수장돼 실종된 사람이 18명 남아있을 때였어요. '오늘 안 풀린다'는 말씀을 굿을 하는 와중에 계속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 들으면서 가슴이 아주 아팠어요. 준비하면서도 많이 울고 행사하면서도 울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김 처장은 당시 위령제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인천평화축제는 작년까지 '월미평화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월미산에 있던 군부대가 2001년에 이전하면서 조성된 월미공원을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인천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노력했다. 2002년 맨발로 월미산 정상을 오르는 행사를 시작으로 2003년부터는 인천민예총 주관의 월미평화축제를 열었다.

"행사 장소가 월미도에 한정되지 않아, 많은 시민이 혼돈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부터 이름을 바꾼 거죠.

8월이나 9월께 개최하려려 했는데 4월 16일에 국가적 재난이 일어나고 나서 축제를 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지금이 오히려 문화예술인의 책무를 실천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한스럽게 죽은 영혼들을 달랠 수 있는 제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진혼'을 준비했습니다.

세월호가 출발한 곳이 연안부두잖아요. 이거라도 안 하면 못살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준비기간이 짧아서 힘들긴 했지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김금화 선생님도 '이런 일은 내가 해야 한다'고 하셔서 모셨고요."

민예총 인천지회에서 인천민예총으로 독립법인화

(사)한국작가회의(아래 작가회의)는 유신의 칼날이 시퍼렇던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했다.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변모했고, 2007년 지금의 작가회의로 발전했다. 작가회의는 세월호 문제, 강정해군기지 반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 4대강 문제 등 시국 현안에 대해 진보적 입장 발표와 행사들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1985년엔 민족미술인협의회(아래 민미협)가 창립돼 민중미술운동을 표방하며 작가회의와 마찬가지로 현안을 비껴가지 않고 제 목소리를 냈다.

한편, 민예총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운동에 부응해 1988년 12월 23일 민족예술의 발전과 문화예술운동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해 설립됐다. 주로 진보적 문학가를 중심으로 미술·영화·연극·음악에 종사하는 예술인들이 참여했다. 1990년부터 부문들의 협의체 성격을 띤 연합회로 운영되기 시작해 1993년 사단법인화를 추진했고, 1994년부터 지역조직을 건설해 전국적인 기반을 갖췄다.

"인천지회도 199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민예총의 튼튼한 기반은 작가회의와 민미협이죠. 인천지회도 초창기에는 문학인과 미술인들 중심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민예총은 창립 25주년을 맞아 변화를 모색했다. 2012년 3월, 정지창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 각 지회와 장르별 단체를 포괄하는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으로 그 명칭과 성격이 바뀌었음을 선언했다. 이런 변화는 민예총 활동을 지역 중심으로 꾸려가면서 본부 조직을 최소화하고 활동의 중심을 현장으로 옮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중앙집권적 사업방식은 지금의 시대에 맞지 않죠. 그래서 지역별로 독립법인을 만들었고 인천도 작년 2월 독립해 사단법인 인천민예총으로 전환했습니다."

부조리와 싸워 세계를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것
   
인천민예총이 주최해 2012년 열린 월미평화축제.
 인천민예총이 주최해 2012년 열린 월미평화축제.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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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인천민예총이 출범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느덧 성년의 나이가 된 인천민예총은 중요한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예술은 인간세상의 본질을 통찰하고 통찰된 본질 속 아름다움을 구현합니다.

인간은 예술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세상의 부조리를 읽어내며 그것과 싸움으로써 자신의 삶은 물론 세계를 아름답게 승화시킵니다. 또한 예술은 세상과 적극적인으로 소통하는 행위이며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하는 창의적 활동입니다.

따라서 예술가는 시대정신을 누구보다 먼저 읽어내야 하며, 그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적극적 실천의 주체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바로 그 예술가들입니다.

올해 2월 인천민예총 편집위원회에서 기관지 '문화현장'에 쓴 글의 일부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인천민예총의 존재이유를 분명하게 밝힌 선언문과도 같다.

"인천민예총이 태동했을 때는 독재 권력에 대항해 민중과 함께 새로운 작업을 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20년간 그 날이 무뎌지고 사회와 타협한 게 사실입니다. 편집위원회의 글은 더 이상 이러면 안 된다는 반성입니다. 독립법인을 논의하면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활동하느니 단체를 해체하자는 논의도 했어요. 그런 고민으로 인천민예총이 재탄생했습니다."

2014 저항예술제 '망국(亡國)의 예술가들이여 단결하라'

오는 8월 30·31일 인천 아트플랫폼에서 '2014 저항예술제'가 열린다. 민예총과 인천민예총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파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민중예술·민족예술·저항예술의 현황을 보다 총체적으로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 마련한 것이다.

저항예술제조직위원회는 '그동안 분쟁현장에서, 치열한 삶터에서, 전시장과 공연장에서 쓸쓸하게 세상과, 예술가 자신과 싸워온 수많은 야성적 예술가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라는 취지를 기획안에서 밝혔다.

"7~8년 전까지는 전국 민예총 지회 조직들이 모여 민족예술인대회를 매해 개최했습니다. 성과를 나누고 운영에 대해 소통하는 시간이었죠. 한동안 중단됐는데도 사업의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그러다가 독립법인으로 거듭나면서 '이 시대의 예술은 저항예술이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예총도 관성에 빠져 관변단체와 차이가 없다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젊은 예술가들이 있어요. 그들과 예술에 대해 토론하고 무엇을 함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이번 저항예술제는 관객들보다는 예술인들을 위한 행사에 무게중심을 실었다고 한다. 투쟁의 현장에서, 사회 모순과 부딪히는 현장에서 예술가들이 각자 해온 작품들을 쇼케이스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왜 이런 작업을 해왔는지 사례를 공유하고 저항예술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토론할 예정이다.

"20여 년 전 민예총을 만들었을 때는 저항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노력했죠. 하지만 나이 들면서 타협하기도 하고, 시대정신은 희석됐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정부에서 주는 창작지원금이나 문예지원금에 매몰되면서 자생력 있는 생산구조를 갖지 못하고, 지원이 끊기면 작품 생산을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어요. 그것에 자유롭게 항거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이 모일 겁니다. 이번을 계기로 저항예술제를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고, 국제저항예술제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인천민예총이 주최한 2012년 인천문화예술아카데미
 인천민예총이 주최한 2012년 인천문화예술아카데미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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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들의 자생성 회복을 위해
   

김 처장은 정부의 지원이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창작의 통제라는 부정적 면도 따라왔다고 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면서 6년간 우유배달을 했지만 제가 선택한 예술가의 길을 오롯이 걸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지원금을 받으면 창작하는 데 큰 도움은 되지만 그것이 마약 같아서 지원금을 받다가 못 받으면 활동하는 데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다고 자각했죠. 예술가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단체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방법을 모색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인천민예총은 끊임없는 고민에 빠졌다. '크라우드 펀딩'도 고민했고, 최근엔 돈 한 푼 없이 '인천문화공동행사 리멤버 0416'도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많은 시민과 예술인들이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어느덧 잊고 무심해지는 현실 속에서 예술인으로서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예술인들이 모여서 시민들과 함께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해보자고 시작했어요. 이런 것들이 예술인으로서 투쟁하고 저항하면서 창작을 통해 자생성을 회복하는 거죠. 이런 공연은 기금을 받고 할 수 있는 사업도 아니잖아요. 사업을 시도하고 확장하면서 시민들을 만나다보면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예술이란 길 위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의 철학을 배우는 것

군사독재시절도 아닌 절차적 민주주의가 갖춰진 이 시대에 인천민예총의 고민들은 시민들에게 '철 지난 진보'를 표방하는 구시대적 단체로 비춰질 수도 있다.

"지금이 군사독재 때보다 더하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잖아요. 겉으로 드러나는 무력과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게 자본의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문제도 그래요. 독재 권력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본과의 싸움인 거죠. 자본주의가 내재화된 사회에서 인간이 대접 못 받는 문화가 뿌리박혀가고 있어 오히려 지금 진보적 문화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예술은 자본에 저항하기 위한 무기여야 한다고 김 처장은 강조했다.

"어느 연극 비평가가 '연극이란 길 위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의 철학을 배우는 것이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예술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몇몇의 전유물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자의 삶의 철학을 공유하고 호흡한 것을 다양한 장르로 표현하는 게 아닐까요? 예술이란 범주는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인천민예총, #김병균, #저항예술제, #진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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