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버지 사랑하는 하늘같은 내 아버지
말없이 큰 가슴으로 세상을 주신
뼛속까지 사랑 주고 당신 아픔 모르시다
해가 되어 별이 되어 사랑만 남기고 가셨네.
마른 손이 갈라지고 잔주름이 깊어가도
떨리는 손 내밀면서 걱정하시던
우리 아빠 영원히 부르고 싶어
오늘도 불러보는 가시고기 사랑

유가을의 노래 <가시고기 사랑>의 '아버지' 부분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자식에게 애틋하다. 또 그래야만 한다.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은 격이 다르다. 어머니는 가슴으로 사랑한다. 아버지는 뼈로 사랑한다. 말없이 가슴 깊은 사랑을 묻었다가 필요할 때 내주는 그런 사랑이다.

소설을 읽는 첫 번째 코드, 가시고기 사랑

박경남 역사소설 <왕의 눈물> 표지
 박경남 역사소설 <왕의 눈물> 표지
ⓒ BOOK향

관련사진보기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아들 고종을 미워했을까. 대원군은 속 깊은 사랑으로 고종을 대했고 언젠가 그 사랑을 꺼내 고종 앞에 놓으려 하지는 않았을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끼어든 대가 센 며느리 명성황후가 더 문제가 아닐까. 고종이 아버지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다 보니 증오가 된 것은 아닐까.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고종은 정말 불효자일까.

박경남의 역사 소설 <왕의 눈물>은 이런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역사와는 다른 대답을 하려고 한다.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불효자는 아니다. 대원군이 고집불통 권력욕의 소유자는 아니다. 당시 승자인 일제에 의해 왜곡되었을 수 있다.

작가는 "대원군과 고종의 관계를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며, "역사적 사실에 집중하기보다 아버지와 아들에 집중했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는 "그들은 과연 불화의 상태에서 끝을 맺었을까"라며 의미심장한 질문을 한다.

<왕의 눈물>은 가시고기의 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가시고기는 물풀이 많은 맑은 하천에서 산다. 주로 물속에 사는 곤충이나 작은 무척추동물 등을 먹으며 사는 민물고기다. 가시고기는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알의 부화와 새끼 기르기를 도맡는다. 수컷은 새끼가 성장하여 보금자리를 떠나게 되면 지쳐 죽고 만다. 그래서 아버지의 희생적 사랑을 말할 때 떠올리는 게 바로 가시고기다.

<왕의 눈물>에 등장하는 대원군은 마치 가시고기 같다. 아버지 이하응은 아들 이제황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일찍부터 제왕의 도를 가르친다. 자신이 권력을 차지할 수도 있지만 굳이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 한다. 어렸을 때 하응은 제황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부터 아비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 말고 질문도 하지 말고 듣거라. 너는 말이다. 머지않아 이 나라의 큰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1년 전부터 너만 따로 글공부를 시켰던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본문 25쪽 중에서)

용(왕)이 된다는 말에 제황은 놀라지만, 대원군은 그게 운명이라며 "아비 역시 그걸 위해 산다"고 말한다. 대원군은 오직 아들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한다. 왕이 되어서는 왕 노릇을 잘하도록 모든 힘을 다한다. 대원군은 고종의 가시고기 아버지였다.

소설을 읽는 두 번째 코드, 오이디푸스의 사랑

그러나 고종은 항상 아버지를 두려워한다. 늘 아버지를 의식하며 산다. 아버지를 의식하는 삶은 너무 아프다.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의식하는 삶에서 오이디푸스 사랑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아들이다.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의 왕이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친어머니인 줄 모르고 이오카스테와 결혼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뽑느다.

이 신화는 프로이트에 의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심리학적 발전을 이룬다. 어렸을 때 '아버지처럼 자유롭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로 시작하여, '아버지와 같이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부친과 자신을 동일하게 여기는 과정에서 초자아가 형성되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성인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고종은 어머니가 개입되지는 않았다. 대신 그에게는 중전이었던 명성황후가 어머니를 대신한다고 볼 수 있다. 고종에게는 항상 아버지 흥선대원군같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될 수가 없다. 소설 속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늘 고종을 괴롭힌다.

"항상 아버지를 의식했습니다. 비록 아버지를 동인괘의 짝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정사를 볼 때마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경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식하는 것이 싫어서, 아버지께 꾸중 듣는 게 싫어서 아버지의 반대로만 나갔습니다. 그게 소자이옵니다." (본문 260쪽 중에서)

유약한 고종에게 아버지 대원군은 어떤 존재인가. 중전인 명성황후는 어떤 존재인가. 둘은 같으면서 다른 존재였다.

"제황은 사람의 말투로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중전의 말투는 닮은 듯 달랐다. 강한 측면에서는 닮았지만 아버지는 마치 회초리를 때리듯 했고 중전은 선언적이었다. 아버지가 말을 하면 가슴을 치듯 아플 때가 많았지만, 중전이 말을 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았다." (본문 99~100쪽 중에서)

강한 남자 대원군과 강한 여자 중전 사이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남자, 그가 고종이었다. '개화냐, 쇄국이냐', '친정이냐, 섭정이냐' 하는 것은 단지 기 싸움의 겉모습일 뿐 대한제국 말미를 장식한 것은 '가시고기 사랑'과 '오이디푸스 사랑'이었다.

작가가 의미심장하게 던졌던 질문, "그들은 과연 불화의 상태에서 끝을 맺었을까?"라는 질문, 답은 명확하고 간결하다. '아니다'이다. 둘은 궁궐 밖 석파정에서 만나서 화해한다. 화해 후 대원군은 5일 만에 죽는다. 물론 고종은 아버지 장례에 참석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 참 묘하다. 고종은 이렇게 절규한다.

"내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너무 강해서 내가 아버지란 의식보다 아들이라는 데에 매어 살았다. 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무게에 늘 짓눌려 살았어. 나는 아버지를 넘어설 수는 없을까?" (본문 278쪽 중에서)

나는 이미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와 너무나 빼닮은 딸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를 받고 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절규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훌러덩 아버지를 벗어버렸으면 좋겠다.

"내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너무 강해서 내가 이 나라의 어머니란 의식보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데에 매어 살았다. 내 아버지의 딸이라는 무게에 늘 짓눌려 살았어. 나는 아버지를 넘어설 수는 없을까?"

덧붙이는 글 | <왕의 눈물> (박경남 지음 / BOOK향 펴냄 / 2014.08 / 1만 3000 원)



왕의 눈물

박경남 지음, 북향(2014)


태그:#왕의 눈물, #박경남, #서평, #고종, #대원군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