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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후 11시께. 26일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동조 단식'에 참여하고자 다짐했다. 조금이라도 배고픔을 줄여보고자 하여 나름 머리를 썼다. 지금 무엇인가를 먹어 두자는 생각이었다. 자정부터 이어질 단식을 대비해서 야식과 취침을 선택했다. 고작 시간 채우기에 의미를 둔 비겁한 '꼼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식은 고사하고 평소 한 끼 식사 거르는 것도 두려워하는 나이기에 나름의 준비는 해두고 싶었다. 평소 좋아하는 메뉴로 배를 채우고 자정을 기점으로 단식에 들어갔다.

'동조 단식'을 하려면 먼저 접수를 해야한다.
▲ '접수는 이곳에서' '동조 단식'을 하려면 먼저 접수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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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처럼 고립된 광화문 광장

세월호 희생자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47)씨가 단식 40일째인 지난 22일 병원으로 이송됐다. 광화문 광장에는 그의 빈자리를 대신해 단식을 이어가겠다는 시민들의 동조 단식이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지난 27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동조 단식의 광화문광장 참여자는 3800 명, 온라인 신청자는 2만 5000 명을 넘어서고 있다.

광화문광장에 도착한 후, 현장에 있는 동조 단식 참가접수처에서 간단한 등록을 하면 모든 절차가 끝난다. 이름과 소속, 연락처와 간단한 주소를 적으면 되는데 소속이 없다면 공란으로 두어도 관계없다. 일반인이 참여하는 '국민 단식'은 3일 이하만 신청 가능하다. 접수 시에 지급되는 두 장의 플래그를 앞뒤로 상의에 걸면, 본격적인 현장에서의 '동조 단식'이 시작된다.

단식과 복식에 관한 자세한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단식과 복식에 관한 자세한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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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로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다.
▲ '작은 도서관' 무료로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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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운동 장소와 양쪽으로 설치된 천막, 유가족 단식장으로 둘러싸인 널찍한 가운데 공간에는 앉을 수 있는 돗자리가 항상 펼쳐져 있다. 햇빛이 뜨거운 한 낮에는 차광막이 설치된다. 26일은 오후 5시부터 많은 비가 왔는데, 주최측과 시민들이 힘을 모아 빠르게 비닐을 덧대어 비를 막았다. 비가 쏟아져도 이탈하는 인원 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좁아진 좌석을 서로 양보하며 질서 정연하게 단식을 이어나갔다.

현장에 있다고 해서 계속 시위를 하거나 힘든 일정을 소화하지는 않는다. 단식장은 주변 차 소리를 제외하면 조용한 편이고, 단식 중인 시민들도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는다.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장소부터 천막이 설치된 단식장과 이순신 동상을 지나 경찰 저지선이 있는 세종대왕 동상 앞까지는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 여기까지가 동조 단식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허락된 공간이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 있는 경찰들에게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는 근거를 물어봤지만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잠시 물러나서 노란 리본과 옷에 걸린 플래그를 제거하면 아무런 제지 없이 광화문 방향으로 통행이 가능하다. 세 방향으로는 바다 같이 넓은 왕복 12차선의 도로로 막혀있고, 북쪽으로는 적대심을 품은 사람으로 막혀있다. 분단국가인 지금의 대한민국과 닮아 있다. 마치 섬에 고립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동조 단식에 참여한다고 해서 꼭 광화문광장에서 24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식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접수처에 등록 후 원하는 시간만큼 참여하고 잠은 집으로 돌아가서 자도 된다. 공식적으로 접수 가능한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더 늦게도 가능하다. 다만, 돌아갈 때에는 받은 플래그를 반납해야 한다. 만약 다음날까지 단식을 하고 있다면, 다시 접수처에서 당일 날짜로 새로 등록을 하고 '국민 단식 2일차'로 '업그레이드'된 플래그를 받고 참여하면 된다.

현장에서 취침을 원할 경우, 접수처에 문의하면 모포나 담요 등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희망하는 시민이 많으면 모두에게 지급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개인 침낭을 챙겨올 것을 권하고 있었다. 나는 비가 온 26일에 현장에서 잠을 청했는데 혹시나 해서 가져온 침낭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내린 비 때문에 온도가 갑자기 내려간 탓도 있겠지만, 단식 중에는 건강관리에 특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때문에 개인 보온용품은 필수다.

독자들의 눈과 기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합니다.
▲ '2일 째로 업그레이드' 독자들의 눈과 기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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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시민, 오른쪽은 유가족이 사용하는 아이스박스.
▲ '시원한 물은 이곳에' 왼쪽은 시민, 오른쪽은 유가족이 사용하는 아이스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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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의 연령대는 40·50대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 다음으로 2·30대와 60대 이상 순이었다. 개인 참가자도 있지만 삼삼오오 같이 온 그룹참가자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일행들과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는 고영훈(23)씨는 "마음은 앞서지만 혼자서는 선뜻 (참여할) 용기가 없었는데 동아리에서 같이 오게 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오게 되었다"라며 "같이 얘기하고 시간 보낼 사람들이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씨는 "친구들이나 다른 동아리 학생들에게도 적극 권할 생각이다"라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편의시설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화장실은 광화문광장에서 지하철 광화문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단식하며 마실 물은 참가접수처 앞의 아이스박스에 보관되어 있어서 필요할 때 꺼내 마시면 된다. 소금이 필요할 때는 접수처의 스태프에게 문의하면 바로 얻을 수 있다. 또, 아이스박스 옆으로 단식에 대한 주의사항과 복식에 대한 한 안내문이 자세하게 있다. 단식을 처음 경험하는 참여자는 꼭 읽어보도록 권하고 있었다.

유민 아빠, 얼마나 외로웠을까

개인 참여자도 할 일이 많다. 천막 한쪽에는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의미의 노란 리본을 만드는 작업실이 있다. 원하는 시민은 봉사활동으로 작업을 도울 수 있다. 1인 시위를 하고 싶다면 스태프에게 문의해서 피켓을 받고 광장 밖으로 나가 시위를 할 수 있다.

책을 가져오지 않았거나 가져온 책을 다 읽었다면 '작은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27일부터 광화문광장에 작은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실천문학사에서 후원하고 한국작가회의에서 운영하는 작은 도서관은 동조 단식 참여자들에게 무료로 책을 대여해주고 있다. 간단한 도서대출 기록만 작성하면 쉽게 대출이 가능했다.

오후 6시 30분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와 수녀 등이 일반시민도 참여 하는 저녁 미사를 열었다. 오후 7시부터 9시까지는 진상규명 및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가 매일 열렸다. 문화제는 인디밴드나 언더그라운드 가수, 시인, 만화가, 사회단체 회원 등이 공연과 발언을 하며 무겁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매일 저녁 7시.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 '광화문광장 촛불문화제' 매일 저녁 7시.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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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 단식에 참여한 회사원 김승아(27)씨는 "어제 저녁 식사 이후로 단식하고 있다"며 "단식은 2일 차지만 그 전부터 퇴근하는 길에 광화문 광장에 들려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냥 지나가지 말고 시간을 내어 많은 사람들이 와줬으면 한다"고 시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나는 27일 오후 4시를 끝으로 '섬'처럼 고립되었던 광화문 광장에서 '육지'로 빠져나왔다. 꼬박 40시간을, 하룻밤을 '잠깐' 체험했을 뿐이다. '육지'에는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바쁘게 움직였지만, 그 섬에는 상처받은 사람을 감싸 안아주고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참사가 일어난 지도 벌써 4개월이 지났다. 희생자 10명은 아직도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고의 경위와 진실을 요구하는 유가족은 도심 속의 외딴 섬에서 단식을 하다 병원으로 실려 갔다. '유민 아빠'가 외롭게 싸우던 그 섬에 이제는 시민들이 들어갈 차례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의 문제로 몰고 가지 말라"고 주장하는 일부 세력이 있다. 그렇다,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다.


태그:#세월호, #동조단식, #광화문광장 ,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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