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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의 구실을 하면서, 사람의 냄새가 나게 살아가는 것. 그런 것이 아닐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자기 할 일을 묵묵히 실천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일상에서 작은 봉사라도 하면서 모든 장삼이사와 더불어 세상을 지탱하는 작은 축이 되는 것. 그런 정도의 삶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답게 사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 뒀다. 사람과의 관계가 많이 어그러졌다. 어그러졌다는 표현은 필자의 일방적인 생각이고, 사실은 지금까지 부족하게, 사람답지 않게 살아왔다는 반증의 발현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통화수가 갑자기 줄었다. 그렇다고 전화를 내 쪽에서 걸어 이러저러하다고 얘기하여 귀찮게 할 염치도 없다.

산골이라 사실 전화가 되지 않을 때도 많다고 스스로 위무한다. 사람을 만나는 게 적어지는 만큼 집에서 식사를 스스로 해결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같은 반찬으로 끄덕끄덕 홀로 식사하는 날이 많아짐에 따라 밥맛이 없어지고 그에 비례해 식사량도 줄어든다. 당연히 몸무게가 줄어 비로소 정상체중에 근접했다. 하지만 마음은 왠지 서글프다.

특별히 할 일도 없다. 그저 아침과 저녁의 시원한 시간에 돌담을 쌓거나 뒷산에 늘어진 대나무를 베는 정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기타의 시간은 어쩌면 무위도식이다. 당연한 결과라고 강하게 마음을 먹는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지만, 세월의 이치이기도 하다. 장강의 물결이 밀어내듯 못된 생각을 밀어내려 애쓴다. 하지만, 성인도, 훌륭한 사람도, 아니, 좋은 사람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게는 그저 속절없음이다.

평소 아이들에게 "삶에 있어 스스로의 뜻대로 되는 경우는 20%도 되지 않는다"고 설파해 온 내 모습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스스로의 몰골이 우습다. 그렇게, 사람답지 못하게 살아온 결과이다. 오랜 직장 생활의 끝이었음에도 오랜 만큼의 인간관계가 지속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서울에 사는 누님과 형님께 많이 의지하고 살아왔다. 어렸을 적, 누님은 생계를 위해 남의 집 일을 해야만 했고, 형님은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나를 살리기도 했었다. 퇴직했노라고 말씀드리기 위해 서울로 가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그새 누님은 허리가 굽어진 채 귀가 들리지 않아 큰소리로 얘기해야만 했고, 형님도 주름살 가득한 하얀 머리로 한눈에 '홀로 사는 홀아비'의 고단함이 가득했다. 이제 다시 드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몇 푼의 용돈을 드렸더니 그새 눈 안에 눈물이 고였다.

누님은 내 손을 잡고 흐느끼며 '어쩌든지 건강해라'고 말씀하셨고, 형님은 택시를 타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쓸쓸함과 허전함이 가득한 미소를 건네셨다. 아, 이런 동기들을 잊고 잘난 체 혼자 살아왔다. 나는 그동안 많이 부족한,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동안 왜 그토록 이기적인 삶을 살아온 것일까. 택시를 타고 있는 내내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내려온 산골의 풍경은 훨씬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아무 때나 울어대는 닭 울음소리도, 집 앞을 스치는 비뚜름한 전봇대의 형용도, 지금껏 어지럽게만 보이던 옛 집터의 돌담들과 비닐하우스도 오래 내 안에 담겨있던 내 것처럼 고맙기만 했다. 생각이란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할 수 있는 일도 생각 나름으로 할 수 없게 되고, 할 수 없는 일도 거꾸로 생각을 통해 할 수 있게 된다.

작은 생각의 차이가 큰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게 하는 것. 그래서 철학자들은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했을까. 그러고 보면 세상의 삶에 있어 반드시 끝만 있는 게 아니고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 많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겠다. 산 속으로 번지는 새벽안개가 청량하다.

엊저녁, 어둠이 가까운 산 끝자락에서 시작하여 하늘을 타고 먼 산으로 번지는 것을 보았는데 이 새벽은 그와 반대로 먼 산의 운무를 타고 가까운 산으로 내려앉는다. 세상은, 삶은, 나이가 들수록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건넛집 수탉이 꼬끼오 울어댄다. 내게 청승 그만 떨고 어서 나와 작은 일이라도 하라고 건네는 교훈의 말씀이다.

덧붙이는 글 | 지방지인 무등일보에도 송고했습니다. 무등에세이라는 코너의 필진이기도 합니다.



태그:#새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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