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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이 연이어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종전 관객동원수 1위였던 <아바타>의 1330만 명을 개봉 18일만에 넘어섰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7일에는 총 관객수가 1645만 명으로 늘어났고, 이는 한국 영화사에 남을 엄청난 기록이 될 전망이다. 관객수 뿐만 아니라 누적매출액도 <아바타>의 기록을 깨고 점차 격차를 더 벌려가고 있다.

<명량>은 최민식과 조진웅, 류승룡이라는 걸출한 연기파 배우들을 섭외하고 <최종병기 활>을 만들었던 김한민 감독이 제작에 참여하면서 큰 기대를 모았다. 흥행요소로는 그 외에도,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전함으로 330척의 일본 해군에 맞서 싸운다'는 시나리오도 한 몫했다. 한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던 인물의 일대기이자 불리한 전투에서 크게 승리했던 역사를 영화의 설정으로 삼았기에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명량>은 제작사가 배급까지 맡으면서 압도적으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었고, 1600만 관객 동원의 기록을 세웠다.
 영화 <명량>의 한 장면. <명량>은 제작사가 배급까지 맡으면서 압도적으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었고, 1600만 관객 동원의 기록을 세웠다.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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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폭발적인 흥행 뒤에서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1600만이라는 관객동원 대기록을 세운 <명량>의 행보에는 스크린독과점이 발판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8월 초반부터, <명량>의 개봉 이후에는 제작사와 같은 계열사인 멀티플랙스 영화관에서는 이 영화를 위해 개봉관과 스크린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면 같은 시기에 다른 영화들은 아침 이른 시간과 심야 위주로 교차상영을 하는 실태가 드러나면서, 영화계에서 형평성 논란과 '스크린 몰아주기'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66년전 할리우드의 파라마운트 판결 돌아보기

물론 이런 문제가 <명량>의 경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비판은 지난 몇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것이고, 국내외 다양한 흥행대작들의 개봉 시기에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대형배급사를 통해 유통되는 영화들은 매번 개봉 초기에 전국적으로 수백 개의 상영관을 배정받고 관객몰이에 열을 올리곤 했다. 이에 밀려난 소형제작사와 독립영화들은 그 때마다 항의를 해왔지만 공허한 외침으로 끝났다(2012년 영화 <터치>는 과도한 교차상영을 항의하는 차원에서 감독측이 상영을 조기에 끝내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명량>이 돌풍에 가까운 흥행기록을 이어나가자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인다. 자사에서 제작된 영화를 CGV가 우선적으로 배급하는 모양새로 '대기업의 횡포'라는 이미지가 강했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그날의 영화 상영실태를 꼬집는 분위기도 더욱 강해졌다. "다른 영화 보려고 극장에 왔는데, <명량> 때문에 심야시간에만 상영해서 도무지 볼 수가 없다"는 성토가 빗발친 것이다.

<할리우드 독점전쟁>의 표지. 영화와 소비자학을 전공한 변호사 장서희씨가 미국 영화계의 독과점 관련 판결을 되짚는다.
 <할리우드 독점전쟁>의 표지. 영화와 소비자학을 전공한 변호사 장서희씨가 미국 영화계의 독과점 관련 판결을 되짚는다.
ⓒ 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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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기에 적절한 논점을 제기하는 책이 출간되었다. 지난 7월에 나온 <할리우드 독점전쟁>이 바로 그것인데, 1948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내린 '파라마운트 판결'을 소재로 다룬 서적이다.

극장분리를 명하는 것이 주요내용인 이 판결은 이후 미국 영화사에서 뜨거운 논쟁이 되었으며, 영화계의 구조를 바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보다 훨씬 앞서 영화계의 발전을 이끌었던 할리우드의 66년전 사례를 돌아보면 매우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40년대 미국에서도 영화의 제작사가 배급까지 맡으며 '수직계열화'를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제작비 절감이라는 이유로 시작된 영화의 계획적인 제작과 배급독점은 유통단계까지 대형 스튜디오가 모두 담당하면서 대형극장의 스크린을 고스란히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연히 독립영화나 군소기획사의 영화들은 이런 기세에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에 미국 법원이 제재를 가한다. 30년대까지 너그러웠던 당국의 규제가 바뀌면서 독점금지법이 제정되고, 스튜디오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가 시행된다. 그리고 결국 1938년 7월에는 미 법무부 독점금지국에서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를 상대로 금지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10년간에 걸친 긴 소송 끝에 연방대법원에서 최고심 판결이 선고되는데, 미국 내의 수평통합과 수직통합이 반경쟁적이라는 요지로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할리우드 독점전쟁>의 소재이자 지금까지도 영화계의 독과점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거론되는 '파라마운트 판결'이다.

영화를 꿈꾸던 변호사의 자세한 판결문 설명

저자인 장서희씨는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와 대학원의 소비자정책연구실에서 소비자학을 공부했다. 이어 중앙대 예술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면서 단편영화를 직접 만들면서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 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을 거쳐 2012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소비자학부터 영화와 법학까지 두루 공부한 저자의 행보는, <할리우드 독점전쟁>에서 스크린 독과점의 문제점을 풀어내기에 적절한 지식을 갖추도록 그를 인도한 셈이다.

본문에서는 미국 영화계의 흐름을 30년대부터 파라마운트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차례로 살펴본다. 대형배급사들이 미국 주요도시들의 극장을 선점하면서 투자와 배급, 상영까지 수직통합을 이루어내는 과정도 이해하기 쉽게 묘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판결문의 내용과 소송 양상, 그 의미까지도 다각적인 시각으로 풀이한다. 기초적인 사실관계와 다양한 분야의 반응까지 구체적으로 해석한 노력이 인상적이다.

독점금지법인 셔먼법이 제정된 이후 미국 영화계는 50년대로 접어들어 잠시 위축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법안의 위력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내 생활이 안정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노동시간이 주40시간으로 정해지며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TV가 각 가정에 보급되면서 극장을 찾는 인구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었다.

책의 인용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학파는 영화계 침체를 두고 파라마운트 판결의 영향이라며 거세게 비난을 가했지만, 저자는 이를 불가피하게 발생한 움직임이라 보았다. 극장에 대한 제재가 일시적인 제작 감소를 가져오긴 했으나, 이미 영화의 수요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던 시대의 흐름이 더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30년이 지나 80년대가 되어 파라마운트 판결에 대한 법무부의 해석이 달라진다. 규제완화를 내걸었던 레이건 정부의 기조에 따라 수직통합 제재가 약화된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기존의 파라마운트 판결이 불공정한 독점을 금지하는 것은 건재했고, 지금까지도 유효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몇몇 경제학자의 주장처럼 미국 영화계가 50년대에 잠시 주춤했을지라도, 판결 이후부터 변화된 미국 영화계는 덕분에 더욱 건강한 경쟁시스템이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독점이 줄어들면서, 40년대 전까지는 변두리의 작은 상영관에 머물러야 했던 독립영화들이 현대에 와서 더욱 많이 제작되는 환경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미국 영화계가 겪은 사건의 시사점

할리우드가 잠시 양적침체를 겪었지만, 영화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독립영화의 약진과 더불어 영화의 제작과 상영이 더욱 자유로워진 할리우드에서는 이제 관객의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졌다. 결국 파라마운트 판결로 인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훨씬 발전이 이루어진 셈이다.

<할리우드 독점전쟁>에서 저자는 영화가 산업이기 이전에 문화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거론한다. 그런 이유로 한국 영화계도 파라마운트 판결의 취지를 이해하고 성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분명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연방대법원의 파라마운트 판결을 이미 사문화된 구시대적 판결로만 치부해 그 함의를 경시한다거나, 경제적 관점에 경도된 나머지 그 판결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수직통합의 문제에 대한 국내 논의가 극장 분리안에 천착할 이유는 없다는 것도 아울러 기억해야 할 것이다. 수직통합을 비롯한 우리 영화계의 독과점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규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인 관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본문 139쪽 중에서)

우리 현실로 돌아와 보자. 2000년대 이후부터 대기업의 계열화가 시작된 한국 영화계는 할리우드가 60년 전에 겪은 흐름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스크린의 대부분을 큰 돈이 투자된 대형배급사 소속의 영화들이 점령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문화적 다양성보다 이익 위주로 계산하려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나 법적 소양에 관계없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할리우드 독점전쟁>에는 친절하고도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이 책에 담긴 수십년 전의 판례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핵심을 찌르면서도 시기적절한 내용으로 보인다.

많은 관객이 극장은 찾은 덕분에 발전한 한국 영화계가 수치적인 기록과 흥행에만 매달리지 않고, 관객을 위해 풍부한 질적 성장을 이루고자 애써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 점점 견고해지는 스크린 독과점의 벽을 허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할리우드 독점전쟁> (장서희 씀 | 본북스 | 2014.7. | 9000원)



할리우드 독점전쟁 - 파라마운트 소송 바로보기

장서희 지음, 본북스(2014)


태그:#할리우드 독점전쟁, #파라마운트 판결, #스크린독과점, #배급사, #수직계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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