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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한 80대 노인이 19세기 벽화 '에케호모(Ecce Homo)'를 직접 복원(復元)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가시면류관을 쓴 거룩한 예수는 마치 원숭이처럼 변했다. 어이가 없어 저절로 쓴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부러운 것은 복원을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원본(元本)이 존재했고, 그 어처구니없는 시골 할머니라도 원본에 복원을 행(行)했다는 나름의 원칙이다.

반면, 우리가 복원하고자 하는 전라감영은 이미 소멸(消滅)되어 조선 말(末) 전주 모습을 담은 고지도에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전라감사의 집무처인 선화당은 사진 몇 점과 구술기록 그리고 국가 기록원의 배치 도면이 있어 복원자료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문화재의 복원은 역사(歷史)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건축문화재의 복원 역시 건물하나 짓는 것을 넘어 당시의 건축문화(建築文化)와 가치관(價値觀)이 연구(硏究)되고 계승(繼承)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원형에 충실해야 하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전라감영은 이미 사라져 원형을 알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라감영 복원을 위해 구전북도청사를 조속히 철거하라"는 '다수의 의견(구전북도청사 철거를 신중하게 결정하자는 것을 소수의 의견으로 표현하기에)'은 건축물의 복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인지 혹은 건축으로 행하는 거짓말은 묵인(黙認)하겠다는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우리는 숱하게 건축물로 역사를 왜곡(歪曲)한 아픔이 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유산(文化遺産)이지만 거짓(고려와 조선시대 목조양식들의 모음)으로 복원이 된 불국사를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도 가짜로 복원한 것들에 대해 감동(感動)받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건축문화재를 복원하는 일은 목조 기둥에 기와가 올려 진 비슷비슷한 건물 몇 채 짓는 것으로 치부할 수 없다.

당시 목구조 결구(結構) 방식은 어떠했는지, 기술자들의 기술력과 공구들은 어떠했는지, 사용하는 나무의 수종은 무엇이고 어디서 구해 와서 어떻게 가공이 이뤄졌는지, 주초 석은 어느 지역의 돌을 채취해 사용했는지, 전라감영 내 건물들의 다양한 용도에 따라 특수하게 고려가 된 부분은 없었는지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부분을 연구해야 하며, 지금 남아있는 사진 혹은 그림만 보고 답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사진이 있고 배치도면이 있으니 조속히 복원을 하자는 주장은 마치 잘 차려진 음식 한상을 두고 사진과 그림이 있고 그릇배치 도면이 있으니 복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이렇게 전라감영의 건축복원에는 많은 어려움이 산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전라감영이 복원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 있다. 부채를 관장하던 선자청(扇子廳)이 있었고, 종이를 만드는 지소(紙所)와 책을 출판하는 인출방(印出房)이 있었다.

또 대사습놀이와 관련된 통인청(通人廳)이 있던 곳이다. 전남과 제주도까지 관할하던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다. 무엇보다 이곳 선화당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자치 기구인 집강소의 총본부 대도소(大都所)가 있던 곳이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의 총체적 중심지가 바로 이 땅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라감영의 복원을 주장하는 이유는 전라감영지의 다양한 문화적인 의미와 역할을 되살려 과거의 찬란한 영광이 현재에 재현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 이 공간이 한옥마을과 이어지며 새로운 관광콘텐츠로 작용해 구도심을 살릴 수 있으리란 기대도 크다.

아쉽게도 지금의 자료들을 근거로 전라감영 복원을 급속히 진행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치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역사를 위한 복원이 되길 바란다면 복원을 위한 충분한 연구와 조사가 선행이 되어야 한다. 또, 그 기간 동안 기존건물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이 건축물 역시 최근까지 우리 지역의 행정을 관장하는 중심지 역할을 해낸 특별한 공간이기에 다각도의 활용(活用) 논의(論議)가 필요하다.

또 냉정하게 생각하면 원형도 없이 '복원을 위한 복원' 때문에 새로 짓게 되는 전라감영은 관광 상품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450여억 원이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감영이란 관광 상품을 만드는 일은 논란의 여지가 높다. 이미 근처에는 460여억 원이 투자된 한국전통문화전당(옛 한스타일 진흥원)등이 개점휴업인 상태로 있지 않는가.

지금 현재 전라감영이란 건축물이 없어서 당시의 선자청, 지소, 인출방, 통인청, 집강소 등의 역할과 문화를 복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또 반복적으로 이야기 하지만 건축복원 역시 중요한 역사이며 문화이다.

최근 전라감영을 둘러싼 "전라감영 복원 조속히 하자", "구 전북도청사도 역사의 일부다. 존치하자" 등 다양한 담론을 볼 수가 있다. 심지어 구전북도청사의 철거(撤去)를 바라는 기자회견까지 등장을 했다. 부디 이 모든 것들이 OX라는 흑백(黑白)으로 나뉘지 않고 담론 자체를 즐겨주길 바라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다.

문화재의 복원은 당시 문화도 함께 복원하는 일이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에 많은 시민들이 전라감영지 담론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同參)해 주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강미현 기자는 건축사사무소 예감 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새전북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전라감영, #건축문화재복원, #전북구도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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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고 건축가를 만나라(효형출판)저자, 건축스튜디오 사람 공동대표, 건축사사무소 예감 cckan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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