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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임재춘의 농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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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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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농성 중 이번 휴가가 가장 길어서 시간적 여유가 많았다. 휴가 직전 3주 동안 집 안에 들어가지 않아 집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쓰레기도 버리지 않아 집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혼자 살다보니 참 힘이 든다.

환기도 시키고 빨래도 돌리면서 집안을 청소했다. 정리정돈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TV에서는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나라가 온통 난리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천주교 사제단과 세월호 가족들의 단식 농성장을 철거한다고 한다.

참 세상이 불공평하다. 교황이나 천주교 사제단이나 다 같은 천주교인데 대접이 참 다르다. 뉴스에서는 교황이 오면 한국 경제가 풀린다고 말을 하는데 우리 정리해고자와 세월호 광화문 단식 농성자들,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의 경제도 풀린다는 얘기일까? 우리 서민들의 경제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라는 점을 나는 안다.

교황이 온 덕분에 세월호 유가족의 얘기도 방송에 더 자주 나왔지만 그 순간일 뿐이었다. 교황은 돌아갔고 정리해고자, 세월호 유가족, 장애인,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계속 아픈 일이 생길 것이다.

나는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중학교에서 종교 예배를 강요하면서 종교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다. 그 후 교회도 가지 않았다. 첫 직장도 하필 기독교 직장이라 일요일에 교회를 안 나가면 일요수당을 주지 않는다길래 결국 퇴사했다.

내게는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이 최고의 종교단체이다.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은 우리 콜트·콜텍 해고자들을 위해 매월 두 번째 목요일 저녁 미사를 드린다. 항상 정리해고자들을 신경써주는 고마운 분들이다.

3년 전 콜텍이 콜트 악기와 공동투쟁을 하게 되면서 대전에서 인천 콜트공장으로 왔다. 2011년 5월쯤부터 인천교구 노동사목과 인연을 맺었다. 나는 그때까지 종교단체가 정리해고자와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함께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노동사목을 만나면서 종교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

미사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줄도 몰랐고 신부님과 수녀님이 어떤 분들인지도 몰랐다. 농성 2000일을 맞아 미사를 드릴 때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인천지역 천주교 신자가 모두 다 모인 줄 알았다. 공장을 꽉 채운 신자들의 이름을 신부님이 일일이 호명할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이쯤부터 인천지역에서 콜트·콜텍 투쟁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노동사목은 현장의 안전관리문제, 노동자의 권익문제, 노동시간 문제 등을 상담하고 사회와 소통케 하는데 나서고 있다. 특히 인천지역의 노동 문제를 알리는 데 앞장선다. 뿐만 아니라 용산참사, GM 비정규직 문제, 두물머리 문제 등 서울과 인천을 오고가며 약자들을 위해 봉사한다.

뉴스에서 나오는 종교 단체들은 종종 종교를 사업수단으로 이용한다. 내가 아는 예수님은 사랑과 믿음의 존재인데, 한국의 몇몇 종교단체들은 건물만 키우는 것 같다.

멀리서 온 교황도 감사하지만 늘 우리 곁을 지켰던 종교인들이 나에게는 종교 지도자이다. 천주교 신부님 강론대로만 살면 평등하고 평화로울 텐데 사람들은 왜 욕심을 버리지 못할까.

"부자로 사는 수도자가 종교를 해친다."

한국에 방문한 교황의 이 말을 한국의 종교인들이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2014년 8월 17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햄버거 두 손 가득 들고 오는 수녀님

최근 진행된 월례미사 때 모습.
 최근 진행된 월례미사 때 모습.
ⓒ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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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실 수녀님은 종종 농성자들에게 전화해서 농성장에 몇 명이나 있냐고 물어보신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두 손 가득 햄버거를 들고 나타나신다. 늦은 밤 슬그머니 농성장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장동훈 신부님이나 서영섭 신부님이다.

대한문에서 또는 광화문에서, 어디 다른 투쟁현장에서 미사 일정을 마치고 잠을 청해야 할 늦은 시간.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숙소로 가는 대신 번번이 치킨 같은 음식을 내려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가신다. 콜트·콜텍 해고자들이 이 분들을 만난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세 분 모두 천주교 인천 교구 노동사목이 주관하는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기운팍팍' 현장미사"(아래 월례미사)를 통해 진한 인연이 되었다.

2011년 초 임재춘 조합원은 자주 찾아오는 그 분들이 인천의 시민단체 회원이거나 동네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동네 주민 같은(?) 분위기의 그 분들과 술 한 잔 나누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고 했다. 그러다 월례미사를 몇 번 치르고 나서야 그 분이 저 신부님이고, 저 수녀님인 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형식에 앞서 사람과 마음이 먼저 왔다. 종교인에 대해 임재춘 조합원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크게 달랐다. 말 그대로 이웃으로, 교회 밖에서 왔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2011년 봄, 공동투쟁의 결의는 새롭고 다부진 것이었겠지만, 이미 6년 차로 접어든 해고싸움은 누적된 피로와 고립감을 주고 있었다. 게다가 콜텍 해고자들은 인천이란 낯선 동네, 낯선 공장에서 농성을 꾸려나가야 했다. 그런 와중에 만난 천주교 인천교구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 깊고 넓은 위로가 됐다.

월례미사는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천막 농성장에서 봉헌된다. 월례미사는 인천 교구 노동사목 이외에도 인천의 여러 천주교 단체와 함께 2011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해고노동자들의 외로움 함께하기 위해...

최근 월례미사 때 모습
 최근 월례미사 때 모습
ⓒ 임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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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당시 노동사목 일을 맡고 있던 박복실 수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실 현장 미사를 결정할 땐 매우 신중해요. 시작은 해도 얼마나 긴 싸움이 될지 장담할 수 없으니... 그런데 콜트·콜텍 현장 미사를 결정할 때는 그 막중함에 앞서 그 분들이 6년 동안 느꼈을 외로움이 더욱 크게 여겨졌어요."

월례미사의 형식 또한 상황에 맞게 다듬어졌다. 낯선 성가는 줄이고, 해고자의 현실을 담은 노래를 불렀다. 기존 미사에는 없는 발언을 넣어 해고자의 이야기를 직접 전한다. 미사 후 진행하는 뒤풀이 음식 또한 세심하게 준비한다. 미사 후 계절 별미가 나눠질 때는 이것이 잔치구나 싶다. 월례미사는 그렇게 해고자들을 귀히 대접하는 형식으로 다가와 고달픈 인간사의 한복판에 하느님의 이야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북적북적 사람들이 들끓는 인연의 장으로 지속되었다.

작년 여름 월례미사에서 맛본 수녀님들의 정성 듬뿍 초계탕은 지금도 회자된다. 그 맛을 반복하여 말하는 것은, 그 맛을 낸 사람의 정성을 기억하는 행위다. 딸아이의 대학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끙끙 앓던 해고자에게 선뜻 입학금을 건넸던 장동훈 신부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몇 차례 새 옷을 마련해주신 서영섭 신부님. 이런 것들을 열거하는 것이 오히려 누가 될 정도로 깊은 정성으로 콜트·콜텍 해고자를 지켜주는 분들이다.

장동훈 신부님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진짜 투쟁은 관계 맺기다."

일상으로 잦아든 관계, 당위보단 연민과 황금률로 만난 인연. 그것은 길고 끈끈하다. 그리고 두껍게 8년 간 농성자들의 외벽이 되어 외로움이란 웃풍을 막아준다.

덧붙이는 글 | 박복실 수녀 : 현 성심 수녀회,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에서 2013년도 7월까지 근무, 월례미사 담당
장동훈 신부 : 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인천교구, 2013년 1월까지 월례미사 집전
서영섭 신부 :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 월례미사 지속적인 참여

현재 월례미사는 김윤석 신부 집전 하에 김영희 수녀와 여러 신도들이 준비하여 봉헌되고 있다.



태그:#콜트콜텍, #노동사목, #천주교,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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