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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25일 태어난 쁘띠
 2002년 3월 25일 태어난 쁘띠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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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25일에 태어난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한 달이 조금 안 돼 우리 집으로 입양돼 왔습니다. 우리는 그 강아지를 '쁘띠'라고 불렀습니다. 사실 쁘띠를 키우기 전까지만 해도 난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저 개 같은 인간'하고 욕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강아지를 키워 보니 강아지들이 주는 기쁨이 적지 않았습니다.

12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쁘띠와 얼마 전 영원한 이별을 하였습니다. 지난 1월에는 쁘띠가 낳은 깜지와 이별을 했습니다. 깜지와 이별하며 받은 아픔이 아직 다 아물지 않았는데 다시 이별을 하게 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삼 일 전부터 쁘띠가 밥을 잘 먹지 않았습니다. 전에도 가끔 토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 들어 토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습니다. 황탯국을 끓여 주었는데도 그 먹보가 딱 한 번 잘 먹더니 더 이상은 먹지 않습니다. 피부도 엉망입니다. 벅벅 긁어대면 비듬 같은 게 우두두 떨어집니다. 눈곱도 검은색입니다.

며칠만 치료 받으면 될 것 같았던 췌장염

지난 8일, 동물병원에서 X-ray, 초음파검사, 피검사 등을 했더니 췌장염이라고 했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가느다란 발목에 수액을 공급하는 바늘을 꽂고, 수액 봉투를 높이 치켜들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아무것도 먹이지 말라고 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 쓰던 삼각대를 높이 뽑아 올려 수액봉투를 달았습니다. 주사기가 빠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목줄을 해야만 했습니다. 물통과 변기통도 바로 옆으로 가져다 놔줬습니다. 쁘띠는 별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침대에서 함께 잤지만 수액줄을 달고 있는 쁘띠 때문에 거실에서 자야 했습니다.

무럭무럭 잘 크고 있는 쁘띠
 무럭무럭 잘 크고 있는 쁘띠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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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인 9일, 다시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고 처방해 주는 약(주사)을 들고, 수액봉투를 다시 달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병원에서 캔을 하나 주며, 오후 2시쯤 한 숟가락 정도를 먹이고, 잘 먹고 토하지 않으면 5시쯤 두 숟가락 정도를 주라고 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오후 7시, 수액을 공급하는 주사기를 이용해 병원에서 처방해 준 주사를 놔줬습니다. 저녁 9시쯤, 약간 점액질이며 황토색이 나는 물질을 조금 토했습니다. 쁘띠는 하루 종일 누워 있기만 했습니다. 그날도 역시 목줄을 걸고 있는 쁘띠와 거실에서 잤습니다.

일요일(10일), 아침에 보니 수액 바늘을 꽂고 있는 다리가 퉁퉁 부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말랑말랑했던 발바닥이 딱딱하게 느껴질 만큼 심하게 부어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엄청 아프고 괴로울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맞춰야 할 주사를 수액 줄을 통해 넣고,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다리를 바꿔 수액주사를 꽂는 처치를 하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먹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쁘띠 배가 불룩합니다. 통증이 있는지 배에 손을 대려고 하면 으르렁 거리며 이빨을 드러냅니다. 오후 7시, 처방 받아온 주사를 수액 공급 줄을 이용해 또 넣어 주었습니다. 쁘띠는 또 하루 종일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습니다.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정체 모를 덩어리 발견 돼

월요일(11일), 동물병원으로 쁘띠를 데려가 다시 검사를 하니 배 속에서 그 크기가 무려 5cmx10cm쯤 되는 정체모를 덩어리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동물병원 원장도 처음 보는 거라고 했습니다. 부랴부랴 대학동물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초음파, 내시경, CT, 혈액검사 등 병원에서 하라는 검사는 다 받기로 했습니다. 쁘띠를 대학교 동물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밤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일 아침 9시경부터 검사에 들어갈 예정이니 쁘띠를 보려면 9시 이전에 오라고 합니다.

어느새 숙녀(?) 티가 나는 쁘띠
 어느새 숙녀(?) 티가 나는 쁘띠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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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12일) 아침, 병원 로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저기 불은 켜져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시 기다리니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쁘띠를 면회 왔다고 하니 주치의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리곤 쁘띠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오전 7시 30분경부터 쁘띠를 면회 했습니다.

쁘띠는 수액바늘을 달고 집중치료실 철망 안에 있었습니다. "쁘띠야!" 하고 부르며 손을 내미니 파고들듯이 가슴에 안깁니다. 쁘띠를 데리고 로비로 나왔습니다. 수액 줄이 달린 스탠드까지 들고…. 쁘띠가 갑자기 오줌을 눕니다. 화장지와 걸레를 가지러 화장실엘 다녀오니 수액 줄에 걸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곳까지 쁘띠가 와 있습니다. 떼어 놓고 가는 줄 알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소변을 닦아내고, 한참을 그렇게 함께 있다 담당 수의사에게 쁘띠를 넘겨주고 나왔습니다.

검사가 끝날 즈음, 다시 면회를 갔습니다. 쁘띠는 철망으로 된 우리 안에서 힘없이 누워있습니다. "쁘띠야!"하고 부르니 금방 알아보고는 반갑게 꼬리를 흔듭니다. 마취로 체온이 떨어지는 걸 보완해 주기 위해 핫백을 2개나 달고 있었습니다. 2시간쯤 안아주다 내려놓고 나왔습니다.

밤에 전화가 왔습니다. 쁘띠가 너무나 많이 울어서 집중 치료실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놨다고 했습니다.

수요일(13일), 7시 40분경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쁘띠는 진료실로 옮겨져 있었습니다. 철망에 담요를 둘러놔 아늑해 보이는 공간에 쁘띠가 누워 있습니다. "쁘띠야!"하고 부르니 아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1시간 정도를 안아주다 내려놓고 나왔습니다.

검사 결과, 증세가 아주 심한 위암

오전 9시 38분에 검진 결과를 설명해 줄 교수와 면담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10시가 조금 넘어서 검사 결과를 설명 들었습니다. CT화면을 먼저 보며 설명 듣고, 이어서 내시경 동영상을 보며 설명 들었습니다. 모니터에서 돌아가고 있는 내시경 영상은 한 마디로 끔찍 그 자체였습니다.

정말 얼떨결에 3마리의 엄마가 된 쁘띠
 정말 얼떨결에 3마리의 엄마가 된 쁘띠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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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덩어리가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꽉 막고 있다고 합니다. 물은커녕 공기방울도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꽉 막고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있는 중간에 안식구도 도착했습니다. 수술은 무조건해야 하고, 예후는 모르겠다고 합니다.

설사 암이 아니라고 해도 창자를 꽉 막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무조건 위를 반쯤 잘라내고 소장도 충분히 잘라 낸 후 직접 연결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췌장액과 쓸개즙이 흘러드는 관 이상을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소화기능도 없어질 거라고 합니다. 그나마 화요일은 돼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내과교수와 면담을 했습니다. 내과 소견으로는 그때(다음 주 화요일)까지 살아 있을지 모를 정도라고 했습니다. 위가 완전히 막혀 있어 장 기능에도 문제가 생길 거라고 했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지금이라도 당장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데려가 절제를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살릴 수 있다고 장담하는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저녁에는 쁘띠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혼자 있는 쁘띠가 행여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까봐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냥 병원에 두기로 했습니다. 밤새 어떤 응급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식구와 번갈아가며 오후 3시까지 쁘띠를 안고 있었습니다. 기계로 작동하는 주사기로 혈관을 이용해 영양제를 투입하는 걸 보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쁘띠가 추위를 많이 타니 보온에 신경 좀 써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평소에 쁘띠가 다니던 동물병원에 들려 원장과 후사에 대하여 논의를 하였습니다.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다고 하였더니 원장은 자신이라도 그런 고민을 할 거라고 했습니다. 쁘띠에게 남은 건 어쩜 고통뿐일 거라고 했습니다. 설사 수술을 한다 해도 바로 재발하거나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는 상태니 많이 고통스러울 거라 했습니다. 쁘띠 입장에서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고통을 받으면서도 더 살기를 원할까? 아니면 고통 덜 받고 죽었으면 좋다고 생각할까? 쁘띠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연명뿐인 치료를 하는 게 쁘띠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안락사를 결심했습니다.

입양을 보내고 남은 깜지와 함께 놀던 쁘띠. 깜지는 지난 1월에 죽었습니다.
 입양을 보내고 남은 깜지와 함께 놀던 쁘띠. 깜지는 지난 1월에 죽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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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30분경, 쁘띠를 보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붉은색 누비 담요도 한 장 가지고 갔습니다. 쁘띠가 힘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커다란 주사기에 든 누런색 영양제를 기계를 이용해 투입하고 있습니다. 9시가 조금 넘어 쁘띠를 내려놓고 집으로 왔습니다.

목요일(14일) 오전 7시 40분경에 쁘띠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꼬리조차도 흔들지 않습니다. 빈혈이 있고, 간 수치에도 이상을 보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8시 30분쯤 쁘띠를 바닥에 내려놓으니 그제야 알아봤는지 끼깅 거리며 반응을 보입니다.

11시가 조금 넘어 다시 병원으로 가 쁘띠를 만났습니다. 이른 아침과는 달리 금방 알아보며 반겼습니다. 하지만 무릎 위에 앉히니 바로 몸을 축 늘어뜨립니다. 며칠 사이에 많이 말랐습니다. 척추와 갈비뼈가 앙상하게 만져집니다. 하기야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니 마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안락사 시키기로 결정하다

오후 2시경, 평소 쁘띠가 다니던 동물병원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내일 두 시에 안락사를 시키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내일 아침에 수액 줄을 뽑고 단 몇 시간만이라도 쁘띠 마음대로 움직이게 해 주기로 했습니다. 쁘띠를 안락사 시키기로 한 건 쁘띠에게 남은 건 고통뿐일 거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영양제를 맞추고, 수액을 맞추면서라도 며칠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도 증세로 봐 이미 다른 부위로 전이돼 있어 재발할 확률이 높다고 했습니다. 설사 전이된 부분이 없어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태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사기로 죽 상태의 음식을 위로 넣어주고 배변을 시켜 주고. 삶 자체가 고통일 게 확실합니다.

수액을 공급해 주기위한 바늘을 꽂고 있는 쁘띠
 수액을 공급해 주기위한 바늘을 꽂고 있는 쁘띠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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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날짜를 15일로 한건, 15일은 광복절이라는 의미에 마음을 기댔습니다. 광복절처럼 쁘띠도 훨훨 자유로운 내생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실었습니다. 15일, 동물병원에서 아주 가까운 월드컵경기장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쁘띠가 세상을 떠날 시간쯤이면 그곳 하늘이 기도와 축복으로 가득할 것 같은 생각에 날짜와 시간을 그리 마음 먹었습니다.

오후 6시경 쁘띠를 안고 집으로 오려고 하니 주치의 선생이 내일 언제쯤 영양제를 맞추러 올 거냐고 묻습니다. "안락사를 생각하고 있는데 정확한 거는 집에 들어가 9시쯤 전화로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식구들과 함께 움직이니 쁘띠가 좋은가 봅니다. 6시 30분이 조금 넘어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쁘띠가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평소 먹던 물통으로 달려가 물을 찾습니다. 담당 수의사에게 전화를 해 물을 줘도 되느냐고 물으니 입술을 축일 정도만 주라고 합니다.

내일 아침 소고기 육회를 만들어 줘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토할 거라고 했습니다. 물을 찾는 쁘띠 모습은 '환장' 그 자체입니다. 바닥까지 핥아댔습니다. 몇 번이나 물을 찾더니 물을 주지 않으니 거실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눕습니다.

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덩어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쁘띠를 촬영한 CT 중 한 장. 왼쪽에 꼭 막힌 게 덩어리입니다.
 위를 가득 메우고 있는 덩어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쁘띠를 촬영한 CT 중 한 장. 왼쪽에 꼭 막힌 게 덩어리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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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으로 들려다 본 정체 불명의 덩어리. 뚫려 있어야 할 곳을 가로막고 있는 덩어리가 보입니다.
 내시경으로 들려다 본 정체 불명의 덩어리. 뚫려 있어야 할 곳을 가로막고 있는 덩어리가 보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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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9시경에 주치의에게 전화를 해 내일 안락사를 시킬 거라고 했습니다. 그분 역시 "나도 보호자라면 그런 고민을 했을 거"라고 했습니다. 행여 잘못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갈등했는데 많이 위로가 됐습니다. 평소처럼 쁘띠와 거실에서 나란히 누워 밤을 샜습니다. 밤새 물도 몇 번 더 주었습니다. 물을 줄 때마다 환장을 하고 먹더니 2시쯤에 준 물은 거반 남겼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물도 먹지 않았습니다. 

15일, 아침에 일어나 캔에 들어있는 것을 아주 조금 떼어내 입에 대주니 맛있게 먹습니다. 하지만 두세 번 맛나게 먹더니 더 이상은 먹지 않습니다. 먹으면 괴롭다는 걸 아는가 봅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한 번도 긁지 않더니 긁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려는 듯 오른쪽 귀를 가볍게 몇 번 긁었습니다.

오전 11시가 돼 수액 줄을 제거했습니다. 쁘띠는 그냥 엎드려 있기만 합니다. 그동안 쁘띠가 밖을 내다보던 창문으로 안고 데려갔습니다. 두런두런 바깥 풍경을 살핍니다. 평소에 함께 잠자던 침대가 있는 방으로 쁘띠를 옮겼습니다. 일부러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창문 쪽으로 쪼르르 달려갑니다. 침대에 올려 달라고 꼬리를 흔들며 발을 동동 구르던 바로 그 자리로 간 겁니다. 침대로 올려주니 평소처럼 편안한 자세로 배를 깔고 눕습니다. 1시쯤이 돼 다른 방석 위로 옮겨 주었습니다. 옛날처럼 그렇게 누워 있습니다.

쁘띠가 마지막으로 집을 나섭니다

낮 1시 20분, 쁘띠를 안고 집을 나섰습니다. 입원해 있느라 3일간 떨어져 있다 함께 집에 있어서인지 참 평온한 모습입니다. 피부도 깨끗해졌고 백태가 낀 듯 뿌옇게 보이던 눈동자도 맑아진 듯 또렷해졌습니다. 

오후 1시 40분쯤 동물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교황 행사로 많이 막힐지 몰라 조금 일찍 나왔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손을 내밀고 쁘띠에게 "발!" 하니 앞발을 살짝 내놓습니다. 힘은 없어 보이지만 눈빛은 초롱초롱합니다.

안락사를 시키기 20분 전쯤에 찍은 쁘띠의 마지막 모습.
 안락사를 시키기 20분 전쯤에 찍은 쁘띠의 마지막 모습.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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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전 2시, 동물병원으로 들어가 원장을 만났습니다. 쁘띠를 데리고 병원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쁘띠를 오른쪽 어깨에 올려 안고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평소에는 차를 바로 병원 문 앞에 세웠는데 혹시 차에서 주사를 놓을지도 몰라 차를 멀찌감치 세워놓아 쁘띠를 안고 가는 시간이 아주 조금은 늘었습니다. 쁘띠가 평소에 가장 좋아하던 자세가 바로 오른쪽 어깨에 올려 안기는 거였습니다. 평소 오른쪽 어깨에 올려 안으며 엉덩이를 받쳐주면 두 앞발로 어깨를 파고들었습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듯, 좀 더 높이 올려달라는 듯 앞발 두 개로 연신 어깨를 파고듭니다. 진료실로 안고 들어가니 수액을 공급해 주느라 꽂고 있는 주사기 튜브를 통해 먼저 마취제를 놓는다고 하였습니다. 개들도 안락사를 시킬 때면 자신들이 죽는다는 걸 안다고 합니다. 아주 심하게 저항을 하는 개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졸릴 때 눈꺼풀 내려앉듯 스르르 간 쁘띠

어깨 위로 안고 있느라 쁘띠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안식구와 원장이 쁘띠를 쓰다듬으며 마지막 말들을 전합니다. 식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쁘띠야, 잘 가!"하고 마지막 말을 했습니다. 원장이 "이제 잠자는 거야" 하며 주사를 놓습니다. 쁘띠는 아무런 저항 없이 정말 평온하게 받아들인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고통도 없는 듯이 정말 조용하게.

어깨에 올려져 있던 쁘띠 앞발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집니다. 졸린 눈꺼풀이 내려앉듯 스르르 가라앉는 게 느껴졌습니다. 충분히 마취된 걸 확인하고 나서 또 하나의 약을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장을 정지 시키는 약이라고 합니다. 쁘띠의 가슴과 맞닿아 있는 내 가슴으로 뭔가 덜컹하고 멈추는 감이 전달됐습니다.

쁘띠가 들어있는 관을 올려놓고 약식으로나마 보내는 예를 갖췄던 장례식장
 쁘띠가 들어있는 관을 올려놓고 약식으로나마 보내는 예를 갖췄던 장례식장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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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를 안고 있는 가슴으로 뜨뜻한 뭔가가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쁘띠가 마지막 오줌을 싼 겁니다. 깜지가 똥을 싸며 죽었듯 쁘띠도 오줌을 싸며 죽었습니다. 조심스레 쁘띠를 내려 눕혀 놓고, 오줌을 닦고 배변한 변을 치웠습니다. 먹은 게 없어서 그런지 똥은 거의 없었습니다. 쁘띠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사망을 최종 확인합니다.

쁘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습니다. 개들은 눈꺼풀에 근육이 없기 때문에 원래 그런 거라고 합니다. 엉덩이 주변을 다시 한 번 깨끗하게 닦고, 향수까지 뿌려서 잘 갈무리 해줍니다. 축 늘어진 쁘띠를 종이 관에 넣었습니다. 종이 관에는 하얀 부직포가 깔려 있었습니다. 쁘띠를 목욕시킬 때 쓰던 하얀 수건을 깔고 그 위에 쁘띠를 눕히고 연둣빛 종이 덮개를 덮은 후 뚜껑을 덮었습니다.

진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쁘띠가 들어있는 관을 가슴에 안고 나오는 걸 바라봅니다. 다들 조용합니다. 쁘띠를 안락사 시켜서 가지고 나가는 거라고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는 눈치입니다. 식구의 눈이 벌겋게 울고 있었고, 내 표정에서도 슬픔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한 줌의 재가 된 쁘띠

쁘띠가 들어 있는 종이관을 차에 싣고 충남 예산에 있는 화장장으로 갔습니다. 지난 1월, 깜지를 화장할 때는 김포까지 올라가야 했었는데 대전 근처에도 화장장이 생겨 쁘띠는 대전 근처에 있는 화장장으로 갔습니다. 화장장에는 오후 3시 20분경에 도착을 했습니다.

한 줌의 재가 된 쁘띠
 한 줌의 재가 된 쁘띠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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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았던 수건을 꺼내고, 덮고 있던 종이도 치웠습니다. 쁘띠가 들어있는 종이 관을 제단 위로 올려놓았습니다. 아직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두 눈을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 덮으니 눈을 감았습니다. 향 세 개를 피워 올리며 쁘띠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도했습니다.

최소한의 장례식, 쁘띠와 영영 이별을 하는 슬픈 이별이 치러지는 순간입니다. 미안한 마음도 전했습니다.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전하고 싶었는데 쁘띠가 느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오후 3시 37분부터 화장이 시작됐습니다. 4시 20분경에 화장이 끝났습니다. 충분히 식은 상태의 유골을 추슬러 쇠절구에 넣고 쇄골을 하니 한 줌 정도가 됩니다. 쁘띠가 들어 있는 유골함을 싣고, 집 근처까지 와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들어와도 저녁 7시가 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들어와 쁘띠의 흔적들을 지웁니다. 외출을 할 때 가두던 철망을 철거하고, 물통과 오줌통, 가지고 놀던 장난감 등을 가져다 버렸습니다. 밥그릇은 남겼습니다. 깜지가 쓰던 밥그릇과 쁘띠가 쓰던 밥그릇이 깜지와 쁘띠를 대신해 남았습니다.

외출을 할 때면 걸고 다니던 인식표가 달린 줄, 털을 깎아주던 도구들도 차마 버리지를 못해 아직은 가지고 있습니다. 가슴이, 가슴이 너무 허전합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내가 전에 그랬던 것처럼 '뭐 이런 개같은 인간이 다 있어?' 할지도 모르지만, 이글을 쓰면서도 난 울고 있습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흐느끼듯이 울고 있습니다.

쁘띠와 깜지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
 쁘띠와 깜지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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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지와 쁘띠가 외출을 할 때면 목에 걸고 다니던 인식표와 줄
 깜지와 쁘띠가 외출을 할 때면 목에 걸고 다니던 인식표와 줄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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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 먼저 간 깜지! 그리고 이번에 간 쁘띠야!! 너희들 때문에 10여 년 동안 참 행복했다. 나중에 내가 너희들 있는 곳으로 갈 때, 살랑살랑 꼬리 흔들며 멀리까지 마중 나오렴.'

깜지와 쁘띠 유골은 앞으로 이사갈 예정인 시골집 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묻어 줄 예정입니다.


태그:#깜지, #쁘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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