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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전통시장은 5일마다 열린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이곳에서 장을 본 어르신들이지만, 유달리 오는 30일을 기다리는 주민들이 있다. 평밭마을에 살고 있는 한옥순 할머니는 시장에 가서 오징어와 튀김가루를 살 계획이다.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도시의 연대자들과 함께 오는 30일 장터를 연다. 한옥순 할매를 비롯한 평밭마을 어르신들은 오징어튀김과 도토리묵을 만들어 팔 예정이다.

행정대집행 끝났지만, 밀양송전탑은 '현재진행형'

지난 6월 11일,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채 밀양송전탑 공사는 강행됐다. 정부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반대하는 주민들을 물리력으로 몰아냈다. 많은 할매와 할배들이 당시 현장을 지옥과도 같았다고 회고한다.

지금도 송전탑은 하루가 다르게 하늘을 향하고 있다. 100m에 육박하는 거대한 송전탑이지만, 콘크리트 작업만 완료되면 철탑은 조립식으로 지어져 어렵지 않게 올라간다. 현재 127번과 129번의 송전탑 공정률은 90%를 넘었다.

송전탑이 지어지고 있는 두 달 동안 밀양의 할매·할배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기 위해 자재를 실은 차를 막거나 차량 앞에 앉아 연좌시위를 벌였다.

공사차재차량이 원활하게 이동하기 위해 경찰들이 주민들을 막고 있다.
▲ 주민들을 막아서는 경찰 공사차재차량이 원활하게 이동하기 위해 경찰들이 주민들을 막고 있다.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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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김없이 주민들보다 열 배 이상 많은 경찰이 나타났다. 경찰들은 노인들의 자그마한 반항과 몸짓도 허용하지 않았다. 경찰들은 원활하게 공사 차량들을 이동시키기 위해 할매들을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4~5명의 경찰이 한 명의 할매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에워싸기도 했다.

아직도 밀양송전탑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언론에서 이와 같은 주민들의 몸부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어르신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연대자와 밀양 어르신들을 위한 첫 번째 장터

오는 30일 밀양 어르신들은 의미 있는 몸짓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과 한전을 향한 울부짖음이 아니라 연대자들을 위한 따스한 맞이다. 지난 7월 7일 창립 총회를 거쳐 만들어진 미니팜 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과 할매·할배들이 직접 이번 장터를 준비했다. 어떤 어르신들은 논밭에서 직접 키운 작물을 들고 와서 도시의 연대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각 마을에서는 자신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던 연대자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다.

평밭마을의 한옥순 할머니는 "오징어 튀김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이걸 연대자들에게 얼마에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마음 같아서는 다 공짜로 나눠주고 싶은데, 자식같은 연대자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을지..." 라고 말했다. 농성장에 오는 연대자들에게 밥을 해주었던 어르신들이기에 어쩌면 돈을 받는 것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여수마을의 한 어르신도 "먹을거리 장터를 준비하게 되었으니 연대자들을 위해 맛있게 만들겠다"며 다짐을 밝혔다. 여수마을에서 준비하는 음식은 찹쌀장국과 국밥 그리고 부침개다. 동화전마을에선 연대자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토스트와 떡볶이와 생과일주스를 준비하고, 용회마을에서는 야심차게 준비한 닭발과 빈대떡이 연대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손과 손의 만남, 잃어버린 일상을 붙잡다

연대자들을 초대하여 처음으로 여는 밀양장터는 단순히 먹고 노는 자리가 아니다. 여수마을사랑방의 창문을 열면 송전탑이 보인다. 대문 밖을 나서면 경찰들이 서 있다. 여전히 밀양 어르신들의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이들의 소중한 일상을 연대자들의 따뜻한 손이 붙잡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싸움을 지지하고 어르신들의 손을 잡겠다는 자리가 바로 이번 밀양 장터다. 할매와 할배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장터를 여는 진짜 이유다.

연대자들과 밀양 할매·할배의 손을 맞잡는 밀양장터 홍보 포스터
▲ 밀양장터 포스터 연대자들과 밀양 할매·할배의 손을 맞잡는 밀양장터 홍보 포스터
ⓒ 김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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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밀양, #송전탑, #밀양장터, #미니팜 협동조합 밀양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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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수료생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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