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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연남동 동진시장에선 '해결사들의 수리병원'이 문을 연다.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연남동 동진시장에선 '해결사들의 수리병원'이 문을 연다.
ⓒ 한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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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이다. 피클을 담그려고 고추를 썰고 있었다. 칼이 무뎌졌는지 잘 썰리지 않았다. 날은 덥고 고추는 맵고...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나서야 고추 썰기가 끝났다.

'칼을 새로 사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엄마가 한 말씀하신다.

"옛날에는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칼 갈아주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요즘은 다들 어디서 칼 가나 몰라."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며 걸쭉한 목소리로 "칼 갈아요, 카~알"을 외치던 '칼 아저씨'들은 정녕 이 땅 위에서 사라지고 만 걸까? 이런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칼 아저씨' 찾기.

페친(페이스북 친구) 중 한 명이 '해결사들의 수리병원'에 가 보라고 알려주었다. 연남동 동진시장에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만 열린다는 말과 함께. 한 달에 딱 한 번 찾아오는 기회다. 이날을 놓치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부랴부랴 신문지에 칼을 쌌다.

'해결사들의 수리병원'은 사회적 기업 '문화로놀이짱'에서 운영한다. 그간 버려진 가구와 목재의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한 삶의 문화를 디자인해 온 곳이다. 2011년에 마포구청 앞에서 '가구수리병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일상의 사물을 치료하는 '종합병원'이 됐다. 가구, 자전거, 시계, 칼, 통기타, 옷, 이어폰, 가방 등 수리 품목도 다양해졌다.

  '칼 아저씨'의 손 끝에서 새로 태어난 부엌칼
 '칼 아저씨'의 손 끝에서 새로 태어난 부엌칼
ⓒ 한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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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궁금했던 '칼 아저씨'는 '해결사들의 수리병원' 원년멤버인데 '문화로놀이짱'의 김지연씨가 직접 발로 뛰어 섭외한 해결사1호다.

"일상의 사물을 치료하는 수리병원을 만들자고 했을 때 우리 주변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부터 살펴봤어요. 부엌에서 음식할 때 가장 필요한 것, 부엌칼이 눈에 들어왔죠. 칼 가는 아저씨를 찾으려고 단골식당에서 시장골목까지 일일이 물어보고 다녔어요."

그렇게 인연을 맺은 것이 지금 '칼 아저씨'로 불리는 최병순(76) 할아버지다. 경력 50년의 할아버지는 요즘도 오토바이 뒷자리에 그라인더와 숫돌을 싣고 서울 시내 재래시장 여러 곳을 누빈다.

"예전엔 칼 간다고 하면 이 집, 저 집서 칼 들고 나왔지. 지금은 주택보다 아파트가 더 많잖아. 칼 갈아서 쓰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요즘엔 모래내시장, 망원시장, 응암시장 같은 재래시장을 다니지. 시장 안에 있는 식당이나 생선가게가 단골들이야. 그래서 그 집 칼 사정은 내가 꿰고 있어. 칼 갈 때가 됐다 싶으면 한 번씩 가지. 오늘도 모래내시장에 갔다 왔어."

할아버지는 그라인더로 간 칼을 다시 숫돌에 정성스레 갈았다. 앞코가 깨진 칼은 예쁘게 다듬어 새 칼처럼 만들어 줬다. 이렇게 칼 한 자루 가는데 받는 돈은 3000원.

"수리병원에 나오면 보통 열 자루는 가는데 오늘은 다섯 자루밖에 못 갈았네. 그래도 이 나이에 일할 수 있으니 좋지, 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야지. 집에서 놀면 오히려 병 나."

깨지고 무뎌진 칼이 할아버지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뾰족하고 날카롭게.

'칼 아저씨'를 찾으러 간 '해결사들의 수리병원'에서 또 한 명의 해결사를 만났다. 바로 시계수리의 달인, 정재섭(56) 아저씨. 수리 탁자에 놓인 공구로 미루어 짐작건대 '시계 아저씨'의 경력 또한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열아홉 때 시작한 시계수리가 올해로 38년째. 손때가 묻은 공구 역시 그만큼의 나이를 먹은 것이라고.

 시계의 뒷판을 누르는 이 공구는 '시계 아저씨'와 38년을 함께했다.
 시계의 뒷판을 누르는 이 공구는 '시계 아저씨'와 38년을 함께했다.
ⓒ 한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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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시계를 고치는 일이 죽은 사람 살리는 거랑 똑같은 일이야. 그래서 나는 내가 시계들의 의사라고 생각해. 멈춘 시계가 다시 갈 때, 시간을 살려낸 것 같은 기쁨이 있어."

스마트폰이 시계를 대신하는 세상이다. 과연 누가 시계를 고쳐가면서까지 찰까 궁금했는데 아저씨 말에 따르면 "명품시계부터 골동품시계까지 고쳐 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일주일 단위로 여러 지역을 도는 빡빡한 스케줄이 이를 증명한다.

 열아홉 부터 시작한 시계수리가 올 해로 38년째라는 '시계 아저씨'
 열아홉 부터 시작한 시계수리가 올 해로 38년째라는 '시계 아저씨'
ⓒ 한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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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그 자체만으로 특별한 품위가 있다"는 아저씨의 말에 나는 서슴없이 고장난 시계 하나를 꺼냈다. 2만 원짜리 싸구려 시계지만 소중한 추억이 깃든 시계다. 건전지만 갈았는데 다시 초침이 움직인다. 낡아서 끊어지기 일보직전인 시곗줄도 갈았다. 오랜만에 시계를 차본다. 작은 은색의 프레임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무뎌지고 멈추어진 일상이 다시 째깍째깍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사라진 줄만 알았던 '해결사'를 만날 수 있는 신기루 같은 병원, '해결사들의 수리병원'. 이번 달엔 오는 토요일(30일) 1시부터 6시까지 연남동 동진시장에서 문을 연다.

덧붙이는 글 | 문의 : 문화로놀이짱 facebook.com/repairhospital



13년차 영상번역작가. 전 여성신문 기자. 사람 이야기를 씁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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