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검색
클럽아이콘0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베이비박스' 이종락 목사가 아이들의 사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베이비박스' 이종락 목사가 아이들의 사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홍순오

관련사진보기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에 빽빽이 들어선 주택들 사이로 한 교회가 있다. 그 교회 한쪽 벽에는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장애로 태어난 아기와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 주세요"라고 안내돼 있는 작은 상자가 있다. 이른바 '베이비 박스'이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60) 목사가 지난 2009년, 유기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작은 공간이다.

"내 막내 아들이 올해 28살인데 14년여를 병상에 누워만 있거든. 와상장애야. 식물인간이라고도 많이들 하더라고.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하면서 지켜보니, 병원에 버리고 가는 부모들이 참 많아. 부모가 수술비를 벌겠다가 나갔다가 안 오는 거야. 아픈 자식을 버리고 가는 부모 마음이 어디 편하겠느냐만, '병원에서 잘 돌봐주겠지' 싶었을 거야."

어느 날 일면식도 없는 할머니가 이 목사를 찾아왔다. 할머니는 "우리 외손녀가 딸이 하나 있는데 아저씨 아드님처럼 누워만 있다. 이 아이를 아저씨가 맡아준다면 내가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 인연을 시작으로 이 목사는 아픈 아이들을 입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7년, 아직 한기가 남아 있던 어느 봄날 새벽이었다. 이 목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교회 앞에 아이를 두었으니 데려가라는 내용이었다. 서둘러 내려가 보니 냄새나는 생선박스 안에 이불에 둘러싸인 한 아이가 있었다. 체온은 낮다 못해 싸늘했다. 이 목사가 아이를 안아 들고 주위를 살펴보니 생선박스의 냄새를 맡고 온 큰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 목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베이비 박스'를 구상했다.

"그 당시에 얼마나 오싹했는지 몰라. 내가 조금만 늦게 나왔으면 어땠을까. 그 어슬렁거리던 고양이 눈빛이 생각이 나. 그 사건을 겪고 나서,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해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

당시 생선박스 안의 아이는 미숙아였고 다운증후군까지 있었다. 추운 날에 고생했던 탓인지 기관지에 병까지 생겨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인근 병원에서는 살기 어렵다며 포기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그 아이는 건강하게 유치원에 다닌다.

"누가 뭐래도, 나는 아이들의 아버지"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후, 서울 시내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장애아는 장애시설로, 비장애아는 일반 보육시설로 간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아픈 아이들은 장애시설에서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주사랑교회에서 도맡아 키우고 있는 아이들은 대개 아픈 이들이다.

그렇게 맡아 기르고 있는 아이 중 15명에 대해 입양신청을 했다. 9명은 이 목사의 자녀가 됐고, 6명은 신청이 거절됐다. 대법원까지 갔으나 결국 패소했다. 한 가정에서 너무 많은 입양신청을 해 부양능력이 의심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래도 그 아픈 아이들을 내칠 수 있나? 내가 다 데리고 있지. 법적으로 내 아이들은 아니지만. 난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고 싶었어. 아이들도 부모가 필요하잖아. 난 아이들의 아빠, 엄마야. 다 내 자식들이고."

그렇게 불어난 식구는 어느덧 21명이 이르렀다. 작은 주택에 식구가 늘다 보니 주거공간은 자꾸만 비좁아졌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온 아이가 "왜 저는 제 방이 없나요"라고 물을 때 늘 미안했던 이 목사는 적지 않은 대출까지 받아가며 시흥동에 다른 주거공간을 마련했다.

"후원금으로 생활하는 형편이야. 정부 지원금 같은 건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 그렇지만 내 자식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한다는데 이를 주저할 부모가 어디 있겠어."

베이비박스가 열리면 벨이 울린다. 이 목사는 언제라도 벨이 울리면 쏜살같이 뛰어 내려간다. 어느 날, 벨이 울려 내려가 보니 아이를 맡긴 남자는 휴가 나온 군인이었고 여자는 10대였다. 젊은 커플이 어찌나 울던지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고 이 목사는 회상한다.

"너무 걱정만 하지 마라,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할 방법도 있다고 달랬어. 남자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어떻겠냐고 조언했더니 맞아 죽을까 무섭다는 거야. 결국, 남자가 용기를 내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했지. 근데 의외의 반응이었대. 부모들이 다 그렇지. 내 자식이 낳은 생명인데 어찌 소중하지 않을라고. '아이를 데려오라'고 말했다지. 이렇게 말할 용기를 못 내는 사람도 많아. 그래서 내가 대신 만난 부모만 7명이야."

베이비박스가 열리고 벨이 울리면 이 목사는 만사를 제쳐놓고 뛰어 내려간다. 부모를 만나고 싶어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버려지는 아이도 보호해야 하지만 아이의 부모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나누고 싶어서다.

"여기 아이를 맡기러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10대잖아. 얼마나 아픈 사연이 있겠어. 속은 또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을거고. 그들도 살아야지. 그 응어리를 풀어줘야지. 내가 아이만 맡아서 키워주는 게 어떤 의미가 있겠어. 아이도 부모도 다 살아야지."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라고..."

베이비박스가 운영된 지 5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비판하는 여론이 있다. '미혼모의 책임감을 덜어주고 유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런 건 거의 말장난에 가깝지. 누군가 그 10대들에게 말을 해. 너희는 잘못을 했다. 너희가 저질렀으니 너희가 책임지라고. 이게 얼마나 무책임한 말이야?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있을라고."

이 목사가 10대 미혼모에게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아이와 함께 약을 먹으려 한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이 목사는 두 시간 가까이 전화로 설득했다. 결국, 전화를 건 여자는 아이와 택시를 타고 교회로 왔다. 그녀의 손에는 약병이 들려 있었다.

"설득하느라 힘들었지. 논리로 따지는 사람 중에 그들의 사연을 알거나, 최소한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어? 아닐 거야. 덮어놓고 비난만 해. 물에 빠진 사람은 우선 건져놓고 봐야지, 수영 자격증이 없다고 들어가지 말라고 할 거야? 불이 났으면 신고하고 같이 끄는 거지. 왜 자격을 운운하는 거야, 대체."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와 관련된 방송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한다. 버려지는 생명을 함께 구하고 싶어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양한 비판에 직면한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물어봤어. '베이비박스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말이야. 신생아들의 유기를 조장한다네. 그래서 다시 물어봤지. '베이비박스가 생기고 유기가 늘었다고 판단한 어떤 근거가 있느냐'고 말이야. 아무런 근거가 없어. 실제로도 작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을 내렸어. 베이비박스는 인권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말이야."

작년 5월, '베이비박스 운영은 유기 아동 의무를 규정한 아동복지법을 위반한 것이며, 베이비박스는 건축법상 불법시설이다'라며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접수된 바 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27일 인권위는 "베이비박스는 건축법상 불법시설로 보기 어렵고, 철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부모와 아이, 둘 다 못 지키는 '입양특례법'

이 목사는 '입양특례법'이 유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8월에 이 법이 새로 발효되면서, 기존에 신고제였던 입양절차가 허가제로 바뀌었다. 게다가 입양부모의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하게끔 바뀌면서 입양은 더욱 힘들어졌다.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거지. 법적인 폭력이야. 10대 미혼모가 출생신고를 어떻게 해. 만약 했다고 치자. 부양할 능력이 없으니 입양을 시켜야지. 이 절차에 양가 부모님이 나서야 해. 이게 가능하겠어? 이렇게 입양을 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이뿐만이 아냐. 입양을 가고 나면 부모 호적에서 사라지지만, 입양이 되지 않거나 입양됐다가 어떤 이유로 다시 돌아오면 다시 호적에 자동으로 올라가. 이게 부모와 아이, 누구를 보호하는 법이야 대체."

입양특례법 시행 이전만 하더라도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입양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과거에는 입양할 때도 친자처럼 출생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입양했는데, 이제는 비밀입양조차 불가능해졌다.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는 절차가 생겨 버린 까닭이다.

미국에서는 50개 주 공공기관에 아이를 데려다 놓을 수 있도록 했다. 복잡한 서류 제출이나 신상명세를 받지 않는다. 갈 곳 없는 어린 생명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내가 괜한 걸로 트집 잡는 건 아냐. 입양특례법이 입양 기준을 강화해서 입양한 아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근데 이걸 보자. 2012년 8월, 그러니까 입양특례법 발효 이전에는 한 달 평균 2명 정도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왔어. 지금은? 거의 9, 10배로 늘었어. 20명 가까이 되니까. 유기를 조장하는 게 베이비박스야, 입양특례법이야?"

또한, 이 목사는 제도가 미비하다고 말한다.

"한 번 보건복지부나 지자체 콜센터에 전화해 봐. 10대 미혼부인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느냐고 말이야. 미혼부는 혼자서 출생신고도 불가능해. 따라서 입양은 당연히 불가능해. 대체 이런 사람들은 누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 거야.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상대방을 찾아내서 부모로서의 모든 책임을 다 지게 하지. 우리나라처럼 미혼부, 미혼모에게 '당신이 알아서 찾으라'고 하지는 않아. 저출산 국가에서 이게 옳은 거야?"

"내가 할 일 많으면 사회 불행"

당장에 유기 영아들을 맡아줄 곳이 필요하다. 서울이나 몇몇 지역에만 분포된 베이비박스로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럼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 대안은 없느냐? 아니야. 내가 생각할 때 119에서 아이를 받아주면 그게 최선일 거야. 그곳은 늘 사람이 상시 대기하고 있고, 필요한 의료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지. 병원과 연계도 잘 돼 있고. 각 도에 하나씩만 지정해서 만들어 놓으면 딱히 추가 비용이 들 것도 없어.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

노환으로 왼손이 불편한 이 목사는, 환갑의 나이에도 아이들을 돌본다. 그런 그가 꼭 바라는 것이 있다.

"입양특례법 같은 악법이 사라지고 베이비박스에 아이들이 버려지지 않으면, 그래서 내가 할 일이 없게 되면 행복할 것 같아. 내가 하는 일이 많아지면 사실 사회는 불행한 것이거든. 그런데 요새 일이 좀 많아. 참 답답한 노릇이지. 나이는 자꾸 들어가는데. 또 하나, 성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해. 마치 성을 마구 즐기면 멋지고 당당한 것처럼 아는 요즘 아이들에게 성(聖)스러운 성(性)에 대해서 교육할 수 있는 분위기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신문사 정기자. 글쓰는 공돌이.더보기

시민기자 가입하기

© 2018 OhmyNews오탈자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