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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중에 많고 많은 영어 토론 리스닝, 스피킹 공부 방법이 나와 있을 테니 나는 내가 경험했던 세인트 존스 대학 수업을 따라 리스닝, 스피킹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지난 기사에서는 리딩(읽기)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이제 책은 읽었다고 치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수업엘 들어가보자.

읽은 책을 손에 들고 (리딩을 끝냈다는 기쁨, 무한한 뿌듯함과 함께) 위풍당당하게 교실에 들어간다. 공포의 직사각형 테이블에서 반 친구들의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있으면 튜터(교수)님이 제일 먼저 입을 여신다.

"자, 오늘은 돈키호테 세미나네요.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질문과 관련된 구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0쪽 두 번째 문단입니다. 얄라얄라얄라셩얄라리얄라."

튜터의 말과 함께 리스닝이 시작된다. 그렇게 튜터의 지시에 따라 토론의 시작 질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을 함께 읽고 나면 튜터는 본격적으로 질문을 한다.

"돈끼호테에게 둘시네아 공주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저 질문을 오프닝 퀘스천(Opening question), 즉 토론을 여는(시작) 질문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튜터들이 질문을 하고 나면 순간 교실에 침묵이 찾아온다. 그 질문에 대해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 리스닝이 안 된다면, 저 시작 질문조차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론이 시작되고 앞으로 하게 될 두 시간짜리 토론의 초반부가 될, 이 시작 질문이 아예 이해가 가지 않으면 시작부터 다 놓치게 된다는 뜻이다. 참 좌절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이 좌절스러움은 학창 시절 초기 '나의 베프'였다. 열심히 책을 읽고 세미나를 가도 열 번 중 다섯 번은 시작 질문에서부터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어떤 질문이 나올까? 잘 들어야지!'하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집중을 하고 있다가도 튜터의 질문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으면 힘이 쫘악 빠지면서 내 스스로가 어찌나 비참하게 느껴지는지.

처음 질문을 놓쳤어도 그 다음 말들을 열심히 들어야 했지만 내가 너무 한심해서, '다음 수업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수업 시간 동안 공부법을 연구하고 있기도 했다. 

리스닝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라

불타는 토론이 오갑니다
▲ 세미나중 불타는 토론이 오갑니다
ⓒ St.John's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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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말 이렇게 토론의 시작 질문부터 놓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작 질문을 놓치는 데는 몇 가지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1) 시작 질문의 단어가 안 들려서 2) 리딩 내용을 이해 못해서 3) 단순히 영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굳이 마음 아프게 말하자면, 영어를 못해서) 이렇게 세 가지쯤 이유를 꼽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한 해결 방법은 제일 단순하다. 사전을 가지고 있다가 못 알아들은 단어를 찾아보는 것! 사실 이렇게 단어 한두 개 때문에 리스닝이 안 되는 거라면 언제나 사전을 가지고 있다가 바로 찾아보면 알게 되고 그 단어의 뜻만 알면 대부분 들리게 돼 있다.

하지만 시작 질문이 있기 전에, 만약 리딩을 제대로 했다면 대개는 다 리딩 내용에서 나오는 단어들이기 때문에 단어를 따로 찾아볼 필요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리딩을 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단어는 이미 찾아봤을 테니). 게다가 보통 시작 질문은 핵심 키워드에 관한 내용이 많으므로 리딩을 충실히 했다면 이미 그 키워드는 본문 중 가장 중요한 단어들 몇 개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리딩을 충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이유는 리딩 내용이 이해가 안 됐기 때문에 리스닝이 안 되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만약 예를 들어 <세법개정안>에 관한 내용을 읽었는데 이해가 안 됐다면 언어의 문제를 떠나서 새로 개정된 세법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귀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리딩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업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 우선시 돼야 할 일이다.

하지만 책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음에도 나의 최선이 객관적으로는 '전체 내용 중 30% 이해(뚜둥-)'인 일도 발생한다. 그런 때 써야 할 방법은 좌절과 포기가 아니다. 대신 부끄러운 마음은 열심히 한 구석에 밀어 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 다음 단계란 '셜록 홈즈 되기'다. 이때부터 해야 할 것은 탐정놀이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정보는 내가 읽어 온 30%의 이해도다. 토론 중 친구들이 하는 말들은 사건을 해결할 중요한 실마리다.

셜록 홈즈가 되어 탐정놀이를 시작하라!

만약 내가 책을 읽고 이해한 30%가 "돈끼호테는 둘시네아 공주를 사랑했다"라고 가정하자. 친구A가 말 한다.

"그러니까 왜 돈끼호테가 둘시네아라는 허구적 인물을 상상했느냔 말이지."

이 말을 통해 둘시네아 공주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이번엔 친구B가 말한다. 

"둘시네아는 돈끼호테의 또 다른 상상적 요소였던 여관, 풍차와는 다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이를 통해 또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 여관, 풍차도 둘시네아 같은 상상적 예시였구나.'

이 탐정놀이는 리스닝 실력을 가장 빠르게 늘려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공부해 온 리딩이 맞았는지 확인하고, 그 내용에 대해 다른 친구들은 어떤 생각과 의문을 가지고 있는지 오로지 리스닝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되고, 자연스럽게 리스닝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사실 토론 수업에서 이 탐정놀이를 하고 있다면 슬퍼해야 한다. 이 놀이는 토론 수업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시네아가 사실은 돈끼호테의 상상이었다는 걸 알려고 토론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돈끼호테가 왜 둘시네아라는 허구를 만들어낸 것인지에 대한 내 생각을 만들어 나가고 공유하기 위해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쩌랴. 내 실력이 그만큼은 안 되는 걸. 답답하지만 이 단계라도 차근차근 해 나가면, 나중에는 심지어 책을 읽지 않고 수업에 들어가도 책 줄거리를 다 듣고 나오는 셜록 홈즈 뺨 때리는 탐정의 경지, 리스닝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럼 제일 마지막 이유가 남았다. 전반적으로 영어를 못 해서 리스닝이 안 된다는 이유. 이런 경우는 사실 단어 하나가 막혀 있는 것도 아니고, 리딩 내용을 이해 못해서 안 들리는 것도 아니라, 그냥 모든 게 다 부족한 상태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다.

더 어려운 수업에 가서 어려운 리스닝을 하며 실력을 늘리고 싶더라도 자기 수준에 맞는, 아니면 본인의 수준보다 약간만 더 도전적인 수업을 찾아 들으면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과 안 맞는 수준의 수업은 발전보다는 좌절만 가져오고 결국엔 포기하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작 질문을 알아듣지 못한 이유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이 이유들은 시작 질문뿐만 아니라 토론 수업 내내 리스닝이 안 되는 일반적인 이유다. 그러니 테이블 너머로 토론이 오고 가는데 내 귀는 꽉 막혀 있는 슬픈 일이 발생한다면 저 세 가지 경우 중 내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보고 자기에게 맞는 해결법을 찾아 나가면 좋을 것 같다.

질문하라, 말하라!

학교 Mail(우편)을 확인하는 곳입니당!
▲ 학생센터 학교 Mail(우편)을 확인하는 곳입니당!
ⓒ 조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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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토론 수업에서 리스닝이 안 되는 마지막 한 가지 이유가 또 있다. 내 문제가 아닌 책과 튜터의 문제가 그것이다. 한 번은 리딩을 엄청 열심히 꼼꼼히 잘 준비해서 수업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좋아쓰! 이번만은 정말 진짜 완전 대박 준비완료! 오늘의 세미나는 내가 정복한다."

그런데 튜터의 시작 질문부터 리스닝이 막혀 버렸다. 튜터가 시작 질문을 했는데 "외쿡말 샬라샬라 뭐래니이블라블라아~?"라고 밖에 안 들린 것이다. 정말 완벽하게 준비됐다고 생각했었는데 시작 질문부터 이해가 안 가다니! 하고 충격을 먹어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축- 쳐져 있었다. 새로운 공부법을 연구해야겠다는 의지조차 사라진 순간이었다.

질문이 던져진 후 테이블은 조용해졌고 그 정적을 깨고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튜터님, 질문 좀 다시 해주세요. 질문이 명확하지 않아요."

친구의 말에 나는 또 다시 벼락맞은 사람처럼 충격을 먹었다. 이해가 안 된 이유가 내 문제가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고 튜터님은 아주 흔쾌하게 그러냐고 하시며 다른 식으로 질문을 하셨다.

이처럼 때로는 내 문제가 아니라 책 자체가 워낙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또는 튜터의 질문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리스닝이 안 되기도 한다. 그런 때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며 멍 때리고 있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이것이다.

바로 질문하기, 말하기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까페 (http://cafe.naver.com/nagnegil)에도 연재중입니다



태그:#세인트 존스 대학, #ST.JOHN'S COLLEGE, #영어 고전 100권, #영어 토론 , #리스닝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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