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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군에서 발생한 잇따른 사고들로 사회가 어수선하다. 여러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서 군 관련 사고들이 큰 이슈로 부각됐다. 국방부는 최근의 사건들에 대해 "군이 성찰을 통해 다시 한 번 명확하게 병영 내부를 진단하고, 잘못된 악습은 없는지 되돌아 보면서 선진화된 병영문화를 육성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를 보는 시선은 비판적이다. 해방 후 국방부가 창설된 지 70년 가까이 되어가고, 군 사고는 늘 있어 왔다. 계기로 삼을 일들은 이미 그 전에도 많았는데, 정작 나아진 것은 없어 보인다. 그저 비난을 잠시 피하기 위해 틀에 박힌 말만 반복하는 걸로 보인다.

<그것이 알고 싶다> 8/23 방송 캡처
 <그것이 알고 싶다> 8/23 방송 캡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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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알고 싶다>에서는 '군 잔혹사, 병사는 소모품인가?'라는 주제로 군 내부의 폭력행위를 비롯한 인권문제를 고발했다. 선임병들의 구타를 비롯한 가혹행위 등으로 사망한 윤아무개 일병 사건과 부대 내 왕따 등의 문제로 동료들을 사살하고 무장탈영한 임아무개 병장 사건 등을 다루었는데, 문제의 핵심은 군 내부의 뿌리 깊은 폐쇄성이었다.

군대, 그 지독한 폐쇄성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때마다 군은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하고, 원인을 조직 내부가 아닌 병사 개인의 문제로 돌렸다.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는 미명하에 부조리에 눈 감고, 고통받는 병사들의 문제로 몰아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해당 병사의 죽음마저 폄하하는 게 군의 현실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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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지키는 데 있다. 유사시에는 적을 죽여야 하기 때문에 폭력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문제는 그 폭력성이 군 내부로 향하면서 발생한다. "백발백중, 일격필살"을 외치며 자신의 내부에 있는 폭력성을 끌어 올리는 훈련을 받는 병사들이 군에서 받은 스트레스 등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고, 가혹행위와 부조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2년여간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징병되는 병사들에게 군이 제공하는 환경 자체가 매우 잘못되어 있다. 지나치게 규율을 강조하고, 개인의 사생활도 보장되지 않으며, 폐쇄적인 시스템 때문에 내부의 문제를 고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지금의 군 시스템은 병사들이 보람과 명예를 갖기 힘들게 한다. 무엇보다 병사들이 자부심을 갖고 군생활을 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도 2010년부터 2011년까지 군생활을 했다. 육군 소속이었으나 일반적인 군 생활이 아닌 카투사로 미군부대에 배치되어 미군들과 함께 생활했다.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해 5주간 훈련을 받고, 퇴소 후 의정부에 있는 KTA(KATUSA Training Academy, 카투사교육대)로 이동해 3주간 미군 시스템에 적응하며 새로운 훈련을 받았다.

KTA에 입소해 3주간 생활하며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카투사 교육생으로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보급품 버리기'였다.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보급받은 물품들은 저질이었다. 비누는 피부를 거칠게 했고, 머리를 감으면 하얗게 무언가가 일어났다. 활동화는 발바닥으로 가는 충격을 전혀 흡수하지 못했고, 군화는 너무 뻑뻑해 발에 상처가 나기 일쑤였다.

KTA에서는 이 모든 걸 버리게 하고 우리가 사회에서 본 회사의 제품들을 보급해 줬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5주간 세탁할 수 없었던 전투복을 처음 미군부대에서 세탁했다. 또한 처음으로 마음 편히 혼자 샤워했다. KTA에서는 불침번들이 자기 분대의 세탁물을 관리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밤 사이에 돌려서 교육생들이 아침마다 새 옷을 입고 훈련을 받았다. 지킬 것만 지키면 휴식할 때는 어떤 교관도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모여 처음으로 내가 군인으로 대우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단순히 서로 다른 군의 환경을 비교할 수는 없다. 보급품 하나로 군 내부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제쳐두고 보급품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카투사들이 새로 받은 보급품들이 모두 대한민국 육군에 속해 있는 미8군 지원단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미군 부대에서 처음 군인 대접을 받았다

국방비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작년 7월, 병사 1인당 연간 유지비가 456만 원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상병계급 1인 기준으로 월급 140만 원, 급식 237만 원, 피복 78만 원이라는 내용이었다. 전체 군인 70% 가량을 병사들이 차지는데, 이들을 위해 쓰이는 예산이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군이 일반 병사들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난 13일 서영교 의원이 공개한 국방비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국방비 예산 전체 약 25조 원 가운데 군 인권 분야에 배정된 예산은 1억2000여만 원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대비 0.0005% 수준으로, 군이 병사들의 처우개선이나 인권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건이 터질 때는 금방 좋은 군대문화가 생길 것처럼, 정말 선진화된 병영 생활이 가능할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변하지 않고 있다.

군 내부의 따돌림 문제를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군 내부의 따돌림 문제를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 에이앤디 픽쳐스, 청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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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은 소모품이 아니다. 2년간 마음껏 부려먹고, 억압하고, 고생시키고 나서 전역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병사들을 대한다면, 앞으로도 이런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군 문제를 그들이 해결하게 지켜볼 수만은 없다. 진정성 있는 반성과 내부의 시스템 변화, 병사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보다 행복하게 군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의무를 명예롭게 이행할 수 있도록 제반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최근, 병사들의 휴대폰 반입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것들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고민과 의논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결정되기를 바란다. 또한, 군은 내부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버리고 잘못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동시에,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조사와 처벌 등이 있기를 바란다.


태그:#군 인권, #윤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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