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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주리라 기대하는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게 근대사회 행복의 기본'이라는 지그문트 바우만. 그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게 된 필자의 경험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필자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대 후반 여자로, 올해 목표 중 하나는 그동안 소원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이었다. 몇 년을 연락하지 않았지만 나를 기억해 주고 반가워하는 친구들. 지인들과의 관계 회복 가운데, 한편으로는 내 지갑은 갈수록 비어 갔고, 매달 카드값 명세서를 마주하고 있었다.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
ⓒ 뜨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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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교통비 7만 원, 통신비 4만 원, 식비 4만 원으로 적게는 한 달에 15만 원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었다. (물론 가족과 같이 살기에 방값은 제외) 가끔 기분 전환한다고 쇼핑을 해도 최대 20만 원 정도.

올해 들어서는 한 달 식비만 10만 원이 나왔고, 가끔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여 야간 택시를 타다 보니 교통비도 10만 원을 찍었다. 여기에 영화라도 한 번 보고, 생일 선물 챙겨 주고 하면 월 30만 원은 훌쩍 넘긴다.

고로 월 15만 원으로 생활했는데 이제는 월 30만 원으로 2배의 지출이 더 발생한 것. 직장인 신분으로 매월 일정한 수입에 급작스럽게 늘어난 지출이 부담도 될 만한 데 왜 필자는 소비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행복에 관한 논의에서 오늘날의 사람들이 원하는 대답은 "물질적인 풍요와 행복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런 대답이 나오는 이유는 '사랑과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근대사회가 시작된 이래 '정신적 풍요로의 회귀'는 인류의 주된 논의 대상 중 하나였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에서 일어난 히피 운동과 인도에 대한 젊은이들의 동경 역시 정신적 풍요를 찾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다.

일본의 저명한 사회학자들과 전문 연구팀이 분석한 행복의 조건. 책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의 저자들은 '행복의 펜타곤 모델'로 소비가 행복을 보장해 주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상품 너머에 있는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행복 자체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한 행복의 펜타곤 모델을 잠깐 소개해본다.

행복의 펜타곤 모델 : 상품을 구매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대신한 새로운 행복 형태

모델1. 시간 밀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스스로 선택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포기하지 않았을 때 얻게 됐을지도 모를 가치를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이 기회비용을 줄이는 일이 곧 행복감의 관건이다. 이 모델은 '그 행동이 미래의 꿈과 목표에 직접 연결되어 기회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가'에 관한 척도이다.

모델2. 만족감
일이 즐거운 사람을 예로 든다면 상사로부터 적절한 과제를 받아 그것을 제대로 처리했을 경우 만족감이 찾아든다. 이러한 만족감을 얻으려면 자기 인생을 위한 '적절한 과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난해한 과제를 철저히 대처해 풀어내는 데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과제 해결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데까지 이어진 것을 '꿈'이라고 한다. 과제를 통해 만족감을 얻으며 하나하나 연결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이고, 나아가 그 노력이 보상을 받을 때 우리는 만족감을 얻는다.

상품을 구매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대신한 새로운 형태
▲ 행복의 펜타곤 모델 상품을 구매하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대신한 새로운 형태
ⓒ 뜨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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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3. 자존감
규칙을 지키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 타인에게 도움이 되려는 모습, 패션에 관심이 많아 조금이라도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 모두 '자존감' 때문이다. 즉 스스로를 긍정하고 자신을 좋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일이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은 자신을 좋아한다. 독선적인 자기애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에서 자존감이 중요한 이유는 똑같은 상황에 부닥쳐도 그 상황을 긍정 혹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모델4. 인정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정은 돈을 지불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것이다. 조직과 동료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자리'가 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상대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모델5. 재량의 자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원할 때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또 이를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갖는 것이다. 돈이 많을수록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돈을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 좋아하는 일도 원할 때 할 수 없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취미를 일로 하면 즐겁지 않은 이유도 재량의 자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타'와 '이기'로 달라지는 행복의 척도

중요한 사실은 '행복의 펜타곤 모델' 다섯 가지를 모두 갖추지 않아도 행복을 얻을 수 있고, 또한 다섯 가지 열쇠를 모두 만족하게 하는 행복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모델들은 행복의 안내지도로, 어느 행동이 어떤 의미로 행복을 주는지 파악할 수 있고 동시에 그 행동이 어떤 이유로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지 예측해 볼 수 있다.

기업에서는 위 '행복의 펜타곤 모델'을 상품 분석에 적용,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1960년대 자가용을 사면 성공한 가족으로 인정받았고, 특히 큰 차를 소유한 사람은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됐다. 또한 소형차로부터 시작해 서서히 중형차로 바꿔 타는 것은 만족감을 주었다.

드라이브의 즐거움은 최고의 시간 밀도를 주었으며 대중교통 시간표를 신경 쓰지 않고 어느 때나 어디든 갈 수 있는 편리함으로 재량의 자유를 만끽하게 해줬다. 무엇보다 어떤 차를 타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능력을 암시했다. 한마디로 자동차가 인정의 도구로 작용한 것이다. 능력까지 인정받으면 자존감도 채울 수 있다. 자동차는 그야말로 '행복을 약속하는 상품'으로 인식돼 온 것이다.

어떤 소비가 우리를 행복하게할까?
 어떤 소비가 우리를 행복하게할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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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사람들과의 유대관계를 더 바란다"는 의식이 퍼지고 있다. 자신의 이익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회와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것을 이타적 행동이라고 한다.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경제주의적인 인간'은 절대로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 소비 현장에서 사람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스스로 그렇게 하고 싶어서' 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기분 좋아서'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거나 무리를 해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을 위해 그렇게 할 뿐이다. 다른 소비는 억제하면서도 휴대전화 요금이 많이 나오는 것은 개의치 않고, 자신의 트위터나 블로그를 방문한 사람들의 이력을 확인하면서 늦은 밤까지 타인과의 관계를 확인한다. 즉 사람들 간의 '관계'를 위해 돈을 쓰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야마다 마사히로·소데카와 요시유키 저 / 뜨인돌 / 2011. 4.12 / 235쪽 / 1만 2000원)


더 많이 소비하면 우리는 행복할까 - 저명한 사회학자와 전문연구팀이 밝혀낸 행복의 조건

야마다 마사히로.소데카와 요시유키(덴츠해피니스팀) 지음, 홍성민 옮김, 뜨인돌(2011)


태그:#펜타곤 모델, #행복,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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