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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에 반복해서 간다. 코르도바에 있는 동안 메스키타에 두 번 갔다.
 같은 장소에 반복해서 간다. 코르도바에 있는 동안 메스키타에 두 번 갔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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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키타는 코르도바의 관광 코스 1번을 자랑하는 건축물이다. 원래는 이슬람사원이었다가 이슬람세력이 쫓겨난 후 지금은 교회로 바뀐 탓에 건축 형식은 이슬람이고 안에 그림이나 집기들은 교회의 것이다.

터키에서 보았던 교회 벽화가 생각났다. 인물들의 눈을 긁어놓는 것은 물론 다각도에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타종교에 의해서. 물론 교회도 종교의 이름으로 더한 짓을 했겠지. 그랬기에 메시키타의 '두 종교의 동거'는 아름다웠고 감상하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현재 나는 여행이 생활이 되어 버린 여행생활자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여행지와 관광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하는 데 많이 게을러진, 한 마디로 예의없는 여행자가 되었기에 무언가를 보고 내 눈이 감탄할 때는 '작품 외적 요소를 배제한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때이다. 별로 아는 바가 없어도 멋졌다. 한참 메스키타 내부의 웅장함, 정교함 그리고 이질적인 느낌을 한없이 보고 있었다.

"저처럼 어린데 혼자 여행한 사람 못 봤죠?"

말발굽 형상의 이 아치가 수도없이 많다.
 말발굽 형상의 이 아치가 수도없이 많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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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혜성과 같이 나타난 걸군. 덥다고 시원한 대리석 기둥에 붙어 한국말을 조잘대던 현, 주에게 관심을 보이며 자연스레 우리와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예배용으로 사용되었을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앞 긴 의자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조용하게.

걸은 군대 가기 전 스페인에 두 달 일정으로 여행 왔다고 했다. 스페인어 전공인데 '전과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선택의 기로에서 한 마디로 '시장조사'를 나왔다고 했다. 일단 2주 정도 여행했는데 지금까진 스페인이 마음에 든단다. 그 결과 스페인어를 꾸준히 공부해도 괜찮은 것 같단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이곳에서 살 수도 있을 것 같단다. 다행이다. 지금의 마음이라면 전과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직 어린데 저처럼 혼자 이렇게 여행 나온 사람 못 봤죠?"

순간 뭐라고 대답할지 난감했다. 정말 순진한 얼굴로 묻는 걸에게 지금껏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런 사람 많이 보았다고, 어린 나이에 세계를 무대로 유목민처럼 살아가는 '겁없는 의지의 한국인'을 여럿 보았다고 말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다고.

이슬람교와 교회 둘 중 교회와 관련된 문화재이다.
 이슬람교와 교회 둘 중 교회와 관련된 문화재이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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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땐 주로 교양과목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진 까닭에 전공임에도 '스페인어' 공부는 많이 못했단다. 차라리 2주간 스페인 여행을 통해 말을 많이 익혔다는 걸군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좋다. 그런 걸군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남편과 상의 후 점심 한 끼를 사주기로 했다.

우린 스페인에서 여러 번 시도했던 바로 그 메뉴 '오늘의 요리'를 2개 시켰다. 어려운 건 없다. 영어가 안 통해도 그 사람들이 와서 "전채 요리로는 무엇을 먹겠느냐?"며 이것 저것 나열할 때 하나를 대충 말하면 되고, "메인 요리로 무엇을 먹겠느냐?" 하면 그땐 좀 성의껏 책에서 본 듯한 메뉴를 말하면 된다.

자라나는 새싹, 스페인어라는 세계에 1년이란 에너지를 쏟은 걸군은 적극적으로 메뉴와 관련해 현지어로 종업원과 얘기를 했다. 현지어를 모르는 우린 그들의 대화를 효과음과 몸동작만으로 추측해야 했다. 아마도 그는 스페인 요리와 관련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는 듯 했다.

깊이 고민하지 않고 주문한 '오늘의 요리'에 대해 걸이 약간 변경하는 것 같은 광경을 흡족하고 마음 편하게 지켜보았다. 그간 경험을 떠올려 요리를 상상해 본다. 먹을 만한 전채 요리 2종류와 메인 요리 2종류가 나오겠지. 이 정도면 스페인 씨에스타 시간에 여유로움과 포만감을 느끼며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할 것이다. 유명한 관광지의 멋스런 뒷골목 야외 테이블에서 사람답게 뭐라도 집어 먹을 생각을 하니 현대판 신선놀음이다.

음식 2개 먹고 계산하는데 금액이 '상상초월'

드디어 요리가 나왔다. 전채 요리라고 하기엔 제법 양과 내용이 흡족했다. 닭고기 요리를 먹고 본격적으로 메인 요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게 끝이란다. 알고 보니 남편-걸-종업원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전채 요리를 시키지 않고 곧장 메인요리 2개만 시켰단다. 황당하지만 괜찮다. 우린 현대판 신선이니까.

"그래, 그럴 수 있지. 괜찮아, 아까 그 메뉴들의 전채 요리를 시키면 되지. 아까 그 메인 요리들의 전채 요리를 달라고 해봐요."

걸은 한동안 뭐라고 뭐라고 말을 했다. 또 우린 흡족했다. 그렇게 오징어튀김까지 먹고 신선놀음을 끝내고 코스요리 2개 값을 계산하려고 하니 금액이 상상초월이다. 잠깐의 소란 끝에 우린 알았다. 자라나는 새싹, 걸군이 헷갈려서 그만 메인요리 2개를 더 시킨 것이다. 결국 코스요리를 4개 먹은 경우가 되어 버렸다. 코스요리 2개면 될 것을 코스 생략하고 메인요리만 4개를 먹은 것이었다.

우린 상황을 이해했고 걸은 그때부터 소리없이 늙어갔다. 우리 테이블을 전담하던 종업원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자세다. 우리가 이의제기를 해본들 나아질 것 같지 않다. 그냥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만 축낼 것 같다.

그래서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8만 원에 가까운 돈을 냈고 남편은 걸을 향해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경제관념이 어둡지 않은 편이라 돈을 규모있게 쓰는 남편이지만 "괜찮다"는 그의 말에선 진정성이 느껴졌다. 후배관리를 하며 한턱 쏘는 부류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먼 곳에서 만난 조국의 청년을 위해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진짜 괜찮은데...

맥주를 마셔 낮부터 얼굴이 벌게진 걸의 얼굴빛은 괜찮다는 말에도 검붉게 변했다. 걸의 되풀이하는 이 말 때문에 우린 지금 당장 여기서 헤어지는 게 상책임을 직감했다.

"제가 매일 바게트로 만든 샌드위치만 먹었거든요. 이런 비싼 음식은 먹어보지 못해서 잘 몰랐어요. 저 때문에... 비싼 음식은 잘 몰라서... 죄송해요."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던지라 그런 말을 하는 걸이 더 가여웠다. 자라나는 새싹인데 오늘 밤 자다가 경기할까 걱정되었다. 계산을 끝낸 후 후끈 달아오른 마음으로 우린 어느 예쁜 골목에서 작별인사를 했고 각자의 길을 갔다. 지금 속히 찾아야 할 건 유대인 거리가 아니라 평정심이다.

우린 정말 괜찮은데 이 일로 부정적 감정을 한 보따리 받은 걸군이 걱정되었다. 캠핑장에 돌아와서도 내내 걸군이 걱정된다.

"그래, 이 모든 게 다 식당 종업원 그 놈 때문이다."

설명해 봤자 너무 복잡해서 설명하기도 뭣하지만 그래도 '고객 만족'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자신이 바로잡거나 도와줄 여지는 충분히 있었어. 그럼에도 '잘 걸렸다'란 뉘앙스를 풍기며 그 이상한 주문을 꼬박꼬박 받아 적고 음식을 내온 놈. 우리의 희귀한 실수에도 음식 값을 전혀 할인해 주지 않은 놈. 그래서 이런 화창한 날 걸의 마음에 먹구름을 몰고 온 놈. 경비충당을 위해 당분간 리씨네로 하여금 현지식을 먹지 못하게 한 놈. 참 야박한 놈. 그 놈.

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태그:#리씨네 여행기, #유럽캠핑, #스페인, #코르도바, #메스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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