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캄보디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젊은 세대들이라면 아마도 가난, 킬링필드, 앙코르와트 정도. 기성세대들이라면 시하누크 국왕과 200만 학살의 주범 폴 포트 정도 아닐까 싶다. 해마다 약 40만여 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앙코르와트를 찾는 까닭에 이 나라 이름이 우리에게 다소나마 익숙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가난한 나라'라는 이미지는 좀체 지워지지 않았다.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열리는 보디빌더 대회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열리는 보디빌더 대회
ⓒ ABBA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가난'으로 도식화된 단어들과 이미지로 가득 찬 이 나라에서 처음 '보디빌딩'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기자는 무척 놀랐다. 10년 넘게 이 나라에서 살아온 기자에게도 무척이나 생소한 단어였기 때문이다. 지인으로부터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에서 보디빌더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되물어 보기까지 했다.

보디빌딩 행사소식을 듣고 관련 내용을 찾으면서 한 가지 더 놀랐다. 최근 캄보디아 보디빌딩 협회를 창립한 인물이 기자도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현장을 찾아 눈으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마침 지난 17일(현지시각) 캄보디아 보디빌딩협회가 주관하는 행사가 열린 시내 모 호텔 행사장을 찾아갔다. 

울끈불끈 근육 자랑하는 캄보디아 보디빌더들

한껏 근육을 자랑하는 캄보디아 청년 보디빌더
 한껏 근육을 자랑하는 캄보디아 청년 보디빌더
ⓒ 박정연

관련사진보기

행사장 문을 들어서는 순간,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입구 쪽 로비에서는 캄보디아인의 체형이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보디빌더 20여 명이 무대 출연을 앞두고 열심히 근육을 움직이며 몸을 풀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온몸에 갈색 오일을 잔뜩 바르는 선수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본 행사가 시작됐다. 이 행사는 오는 9월 6일 개최되는 캄보디아 전국단위 보디빌딩대회 홍보를 위한 기자회견이기도 했다. 벌써 4번째 치르는 대회란다. 가운데 단상에 앉은 창립 구성원들이 한 명씩 소개되자, 참석자들이 힘찬 박수를 보냈다.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리 충 교수였다. 캄보디아 앙코르 보디빌딩 협회(ABBA) 창립자이자, 앞에서 잠시 언급한 기자의 오랜 지인이기도 하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보디빌더들의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무대 위로 건장한 보디빌더들이 한 명씩 차례로 모습을 나타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큼 탄탄하면서도 엄청난 근육을 가진 보디빌더들의 군더더기 없는 멋진 공연이 펼치자, 객석에서 함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숨을 죽이며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여성관객들도 많았다. 현지방송과 언론들도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연신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행사가 끝난 후 로비에서 캄보디아 앙코르 보디빌더 창립자인 리 충 교수를 만났다. 간만의 해후였다. 워낙 바쁜 유명인사라 여기저기 찾는 손님들이 많아 잠시 짬을 내기도 어려웠다. 안부도 묻기 전에 그가 보디빌더 협회를 창립하게 된 동기부터 물었다.

그는 질문에 "캄보디아 보디빌더들의 우수성을 널리 소개하고 동시에 캄보디아가 가난하다는 이미지를 깨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협회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보디빌더 협회 회장인 동시에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30대 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에서 IT 디자인을 전공했다. 더불어 수년 째 캄보디아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도 맹활약 중인 A급 모델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아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현지 빌드 브라이트대학교에서 한국어교수로 재직 중인 석미자 교수다. 

페이스북 사진 보고 연락...활동 수익 기부하는 30대 교수

남성표지 모델로 등장한 리 충교수
 남성표지 모델로 등장한 리 충교수
ⓒ Men'sHealth

관련사진보기

갑작스럽게 동남아 지역에서 보디빌더로 활동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물었다.

"아주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됐다. 페이스북에 내 사진을 그냥 올렸을 뿐이다. 근데 싱가포르의 한 패션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사진모델 테스트를 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모델 일을 하게 됐다."

그동안 그가 찍은 화보 사진들을 그의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찾아봤다. 그가 모델로 등장하는 화보 사진이 줄잡아도 수백 장이 넘는다. 남성 피트니스 잡지는 기본이고, 유명 남성 속옷을 비롯해 다양한 잡지에 표지모델로 등장하고 있었다.

현재, 캄보디아도 인터넷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SN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SNS를 통해 캄보디아에서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성공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1년에 3~4번 정도 싱가포르 등 주변국으로 출장을 간다고 말했다. 다음 주도 화보집 촬영을 위한 10일간의 싱가포르 출장이 잡혀 있다. 리 교수의 모델료 수입은 캄보디아 일반대학졸업자 월급에 수십 배가 넘는다.

그런데 그 수입의 용도가 놀랍다. 그는 현재 캄보디아 현지 시골 초등학교 교실 건립과 자신이 협회장으로 있는 보디빌더협회를 위한 발전기금으로 수익을 100% 헌납하고 있다고 했다. 협회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회계상 오해를 받을까 싶었기 때문. 돈 관리는 철저히 협회 이사진에게 맡겼다.

아내의 나라인 한국을 방문한 리 충 교수
 아내의 나라인 한국을 방문한 리 충 교수
ⓒ 리 충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아내인 석 교수는 "남편이 사진모델로 번 돈을 가난한 시골학교와 협회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전액 헌납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서운한 적도 있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남편이 사회봉사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어서 이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리 충 교수는 "캄보디아 사람들은 킬링필드를 겪으면서 자기 정체성마저 잃어버렸다. 가난한 캄보디아가 스스로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정체성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 청년들의 선망 직종으로 떠오른 헬스 트레이너

그는 생활이 어려운 보디빌더 선수들에 대한 지원과 시골학교 건립에 애쓰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 같은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도와주고, 나눠주고 있듯이 우리도 이제는 받기만 할 것이라 아니라 나눠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가까운 내 이웃부터다."   

현재 캄보디아 선수로 등록된 전체 보디빌더들은 40여 명 정도다. 거기에 지망생 수까지 합치면 100명이 약간 넘는 수준. 캄보디아 보디빌더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하다. 사실 생계가 어려운 보디빌더가 많다. 아직까지 '보디빌더'라는 직업만으로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 교수는 그들의 훈련은 물론이고 생계까지 돕고 있다. 현재 리 충 교수가 직접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보디빌더들이 가장 많이 가진 직업은 호텔 피트니스 센터 트레이너다. 보디빌더 지망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씨엠립은 특히 4~5성급 고급호텔이 즐비한 만큼 직장을 구할 확률도 높다. 최근에는 수도 프놈펜 특급호텔책임자들까지 이곳을 방문했다. 실력 있는 헬스 트레이너들을 뽑기 위해서다.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고급호텔 피트니스 센터는 현지에 거주하는 유럽인들의 전용 운동공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고급 헬스클럽에 등록한 캄보디아 출신 부자들도 꽤 많이 늘어났다. 여전히 빈부격차가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캄보디아에도 돈 많은 중산층이 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헬스 트레이너들에 대한 수요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캄보디아 출신 빌더들은 평균소득을 가늠하기 힘들다. 호텔 측과 직접 연봉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략 월 500~600달러 이상은 될 것이라고 한 관계자가 귀띔해주었다. 캄보디아 봉제근로자 최저 임금이 10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고액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보디빌더의 꿈을 키우는 캄보디아의 청년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보디빌더의 꿈을 키우는 캄보디아의 청년들
ⓒ 박정연

관련사진보기


보디빌더 선수들은 퇴근 후 저녁시간대에 리 교수가 운영하는 훈련장에 모여 몸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당장 9월 초에 열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 대회에는 체급별로 1위부터 5위까지 상금을 준다. 1등 우승자에겐 300달러, 우리 돈 약 30만 원이 주어지고 5등에겐 50달러 등으로 차등 지급된다.

대상인 '미스터 앙코르(Mr. Angkor)'로 선발되면 300달러가 추가상금으로 지급된다. 선수들이 늦은 밤까지 모기와 싸워가면서 땀을 흘리고, 열심히 훈련에 매진하는 이유다. 우승하면 조건이 좋은 호텔에 취직도 할 수 있어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보장된 길이 열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캄보디아 보디빌더 선수들에게 리 충 교수는 곧 그들의 희망과 같다. 리 충 교수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어봤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보디빌더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 세계대회 입상으로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캄보디아의 부정적 이미지도 씻고 싶다. 이와 별개로 가난에 찌든 캄보디아 어린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학교와 교실도 지어주고 싶다. "

그의 소박하면서도 멋진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태그:#캄보디아, #박정연, #캄보디아 보디빌딩, #MR. ANGKOR, #리 충 교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