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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해외관광객 400여 만명이 찾는 캄보디아의 세계적인 문화유적 앙코르와트의 모습
▲ 앙코르와트 전경 매년 해외관광객 400여 만명이 찾는 캄보디아의 세계적인 문화유적 앙코르와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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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23년, 푸른 눈을 가진 한 20대 젊은이가 캄보디아의 이름 모를 정글 속 사원에서 진귀한 예술조각품을 도굴하려다,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이 젊은이는 곧바로 수백 km 떨어진 수도 프놈펜으로 압송돼 감옥에 갇혔다. 그에게는 캄보디아의 문화재급 유물을 수차례  밀반출한 혐의가 적용됐다. 그리고 결국 그는 바퀴벌레와 쥐떼가 들끓는 지저분한 현지 감옥 안에서 수개월을 견뎌야만 했다.

당시 인도차이나의 작은 나라, 캄보디아는 당대 초강대국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다. 프랑스총독부는 물론이고 본국정부도 이 젊은이가 저지른 범죄내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 입장에선 자신들이 식민통치하던 나라에서 흔히 일어나는 범죄 중 하나였다. 유적 발굴이란 명분아래 정부차원에서 묵인하거나 자행된 도굴도 흔하던 시절이라 프랑스 당국 입장에서도 대충 눈감아줄 수 있는 그런 사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캄보디아 왕실은 '반테이 스레이'라 불리는 사원에서 발생한 이 사건만큼은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더욱이 이 젊은이가 도굴을 시도한 유물은 단순한 유물 이상의 가치를 갖는 문화재급 보물이었다. 천년 가까운 긴 세월동안 왕실의 소유나 다름없는 국가의 보물을 밀반출하려 했던 이 사건은 왕실을 넘어 일반 국민들을 분개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결국 그는 프놈펜의 지저분한 감옥에서 나름 긴 시간동안 옥고를 치러야 했고, <좁은 문>으로 유명한 작가 '앙드레 지드' 등 친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비록 지옥 같은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당시 그는 프랑스정부에 많이 서운했던 것 같다. 수년 후 그는 자신의 천부적인 문학적인 재능을 되살려, 당시 유물을 도굴하는 과정에서 직접 겪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담은 자전적인 소설을 출간한다. 그 책은 다름 아닌 <왕도로 가는 길>(La Voie royale, 1930)이다. 그리고 그 책을 쓴 저자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말로'(André-Georges Malraux)다.

앙드레 말로를 따라다니는 '캄보디아 도굴 사건'

세계7대 불가사의로 손꼽히는 앙코르와트 전경을 감상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
▲ 앙코르와트 전경을 감상하고 있는 외국인 세계7대 불가사의로 손꼽히는 앙코르와트 전경을 감상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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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1933)이라는 작품으로 프랑스 콩쿠르 문학상을 수상한 당대 최고의 작가인 그는 22살 젊은 나이에 인도차이나 반도 고고학 조사단 일원으로, 라오스를 거쳐 캄보디아에 첫발을 딛게 된다. 세계적인 작가로서 반열에 오르기 훨씬 이전이었다. 동양어학교를 졸업해 동양미술에 관심이 많던 그는 조사단에서 따로 나와 캄보디아 내 수많은 조각상을 도굴, 프랑스 본국으로 가져가는 사업을 시작했다.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이런 도굴범죄에 단순한 발견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고,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당시만해도 식민국가들을 상대로 한 프랑스와 영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무차별적인 도굴이 워낙 공공연하게 일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그는 그 당시 젊은 시절, 일생일대 단 한 번의 실수 때문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문호'라는 타이틀 말고도, 크메르유적 도굴범이었다는 멍에를 쓴 뒤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현지 유적가이드들의 설명에도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위키피디아 인물사전을 비롯해, 그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곳에는 과거 도굴사건에 관련된 기록과 내용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과거 고대유물을 둘러싼 프랑스의 도굴과 강탈, 그리고 이로 인한 훼손의 역사는 100여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1863년부터 1953년까지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은 90년 동안 엄청난 규모의 문화재급 유물들이 훼손되고 도굴에 의해 사라졌다. 앙드레 말로가 도굴을 계획했던 시기도 바로 이 때였다. 그 여파로 지금도 캄보디아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운 좋게 남은 힌두교 유물이나 석상들도 목이나 손발목이 훼손되어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그동안 해외에 밀반출된 문화재급 크메르유물을 되찾기 위한 캄보디아 정부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캄보디아가 수십 년 동안 장기 내전에 휩싸이면서 다시 돌아온 유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도굴범들에 의해 밀반입되었을 것으로 거의 확실히 되는 유물들조차도 미국 소더비나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공공연하게 거래가 이뤄질 정도다. 일부 문화재급 유물들의 경우는 캄보디아 정부가 직접 반환을 위해 법적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 밀반출되었던 크메르 유물들의 반환이 성사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정부의 끈질긴 환수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거둔 것이다. 영국 크리스티 경매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도 그동안 보관 전시 중이던 유물들을 지난 5월 캄보디아에 돌려주었다.

앙코르유적 내 중형버스 출입 금지한 이유

앙코르 유적지 벽이나 돌기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서들. 한자어와 함께 1905 라는 숫자가 써 있는 것으로 보아 1백여 년 전 이곳을 다녀간 누군가가 쓴 낙서로 보인다.
 앙코르 유적지 벽이나 돌기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낙서들. 한자어와 함께 1905 라는 숫자가 써 있는 것으로 보아 1백여 년 전 이곳을 다녀간 누군가가 쓴 낙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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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사이 10%대의 꾸준한 성장에 힘입어 캄보디아 생활수준도 조금씩 향상되고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과거 이 나라를 90년간 식민통치를 하던 프랑스도 다시 돌아와 수십 년째 앙코르 유적 복구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일본, 호주, 영국, 중국, 인도 등 여러 나라들도 이미 10여 년 전부터 크메르문화유적지 복구 및 복원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정부도 작년 앙코르유적 복원사업에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캄보디아인들도 조상들이 만든 문화재유물에 대해 큰 애정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입장수입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되었던 캄보디아인들 스스로가 유적보호에 차츰 관심을 보이며, 앙코르 유적복원과 관리에 보다 많은 관심을 열정을 쏟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캄보디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관광객들이 늘면서 유적 훼손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해 캄보디아를 찾는 해외관광객수는 매년 400만 명을 넘어선 상태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앙코르와트를 찾다보니 앙코르유적의 훼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앙코르유적을 보전 관리하는 압사라 당국(Apsara Authorities)이 유적지 내에서 관광객들을 싣고 운행하던 35인승 중형버스의 출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한 줄여 사암으로 만든 유적의 부식을 막기 위함이다. 지금은 작은 승용차량이나 '툭툭'이라 불리는 3륜 오토바이택시만 간신히 '앙코르 톰' 남문이라 불리는 성문입구를 통과할 수 있다. 최근엔 중국에서 전기차가 도입되어, 소음도 적은 이 차를 타고 유적지를 들러보는 관광객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앙코르와트 유적을 관람하고 나오는 툭툭의 모습.
 앙코르와트 유적을 관람하고 나오는 툭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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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워낙 많이 찾아 성질이 무른 사암으로 만든 일부 돌계단 중엔 관광객들의 발길에 닳아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곳도 많다. 더 이상 훼손을 막기 위해 돌계단 위에 목조계단을 만들어놓은 곳도 많다. 일각에서 관광객들이 신고 있는 신발이 무딘 돌계단의 훼손을 가속화시킨다는 주장이 제기돼 수 년 전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덧버선을 제공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적이 있다. 유적보호를 위해 앙코르와트를 수년간 잠정폐쇄한다는 소문도 나돌았지만, 결국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 유야무야된 상태다.

그러나 인근 씨엡립 국제공항의 이전 계획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점보제트기의 잦은 이착륙에 따른 진동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사암으로 쌓은 유적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유네스코와 유적보존관리당국의 지적 때문이다. 지금도 앙코르유적에 가면 유적보호 및 관리를 위해 압사라당국에서 나온 관리직원들과 관광경찰들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다. 이들이 이곳에 나와 있는 이유는 입장권 검사뿐 아니라 도굴하거나 유적에 낙서를 하는 등 훼손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앙코르와트 사원에 들어서면 인간의 손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부조벽화를 볼 수 있다. '압사라'라고 불리는 여신의 아름다움은 가히 지금 봐도 매혹적이다. 그런데 고개를 잠시 돌려 벽면과 기둥 언저리를 보면 그동안 다녀간 관광객들이 남긴 낙서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백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들도 보인다. 관광객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아주 오래 전, 누군가 남긴 낙서들임이 분명하다. 지금처럼 관리감독이 철저한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감히 철필이나 날카로운 칼로 벽면에 그런 낙서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지 당국과 경찰도 당황시킨 황당한 사건

최근 어느 한국 대학생이 사진촬영 중 실수로 밀치는 바람에 머리 부분이 사라진 힌두석상의 모습이 보인다. 수십 년 사이 처음 일어난 사건이라 현지 경찰도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다는 후문이다.
▲ 앙코르유적 내 앙코르 톰 남문 진입로 석상들의 모습 최근 어느 한국 대학생이 사진촬영 중 실수로 밀치는 바람에 머리 부분이 사라진 힌두석상의 모습이 보인다. 수십 년 사이 처음 일어난 사건이라 현지 경찰도 이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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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압사라당국 관리인과 현지 관광경찰도 미쳐 손을 쓸 틈도 없을 만큼 찰나의 순간에 크메르유적 한곳이 훼손된 사건이 일어났다. 앙코르 유적 중 '앙코르 톰(Angkor Thom)'이라 불리는 성곽 주출입문 중 하나인 남문을 건너는 다리에 걸쳐진 석상의 머리 하나가 한 관광객의 실수로 떨어진 것이다. 이 다리난간에 놓인 석상들은 대략 12세기께 사암으로 완성된 것으로, 수 백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대표적인 문화재급 유물이다.

그런데 이런 큰 실수를 저지른 관광객은 공교롭게도 한국인 대학생이었다. 현지 신문 대부분은 사건 다음날인 8월 13일 오전 이 학생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거론하며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심지어 이웃나라인 태국과 베트남에도 사건이 전해졌다. 인도차이나반도 전역에 거의 다 알려진 셈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대학생이 밀어 떨어뜨린 석상 머리는 원래 것이 아닌 시멘트로 만든 모조품이었다. 약 2.5m 가량 되는 거대한 석상에서 떨어진 머리가 진품이었다면, 분명 초대형사건이 됐을 것이다. 

현지 언론들은 관광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된 대학생과 인솔자로 온 한국 전남 한 선교단체 책임자, 그리고 행사를 진행한 여행사 관계자까지 경찰서로 가 조사를 받은 뒤 훈방조치 후 풀러났다고 전했다.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초유의 사건이라 경찰당국도 이들의 신병처리를 두고 몹시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그렇지만 이 소식을 접한 한국 교민사회는 "젊은 대학생이 나라 망신시켰다"며 몹시 흥분했다. 인도차이나 문제를 연구하는 인터넷 사이트 <크메르의 세계>에도 대학생의 철부지 행동을 비난하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렸다. 교민들이 주도 애용하는 페이스북 등 SNS도 이 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심지어 일부 교민들 중에는 "이 대학생이 소속된 봉사단체가 기독교단체이기 때문에 혹시나 의도적으로 힌두석상을 훼손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가 사건발생 이틀 후 현장을 찾아가 확인해본 결과, 악의를 가지고 석상의 머리를 떨어뜨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우선, 그런 일을 고의적 시도했다고 보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더욱이 이 학생은 석상이 떨어지는 과정에 피하지 못해 발목을 다쳤다. 다만, 대학생과 현지 신문 등이 밝힌 내용처럼 단순히 기념사진촬영을 하기 위해 살짝 밀었다고는 보기 힘들만큼 석상 머리는 무거웠다. 때문에 사진촬영을 위해 석상 머리 쪽에 기대거나 석상 목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과정에서 체중이 실려 몸체 위에 얹은 석상 머리가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유적지에서 공공연하게 찬송가... 꼴불견이다"

앙코르와트 회랑내 세워진 경고표시판. 사암으로 조각된 벽화 그림에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는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 앙코르와트 회랑 경고표시판 앙코르와트 회랑내 세워진 경고표시판. 사암으로 조각된 벽화 그림에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는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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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코르유적에서 가까운 씨엠립에서 10년 넘게 산 한 교민 이은희(가명)씨는 이 사건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설사 그 학생이 사진촬영하려다 실수로 그렇다손 치더라도, 만약에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십자가상이나 기독성지의 유물이었다면, 아무리 기념사진 촬영이라도 할지라도, 그렇게 함부로 목에 매달리거나 무리하게 몸으로 밀칠 수 있었겠느냐? 이는 다른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존경심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부끄러운 사건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교민사회에서는 기독교봉사단체들이 그간 유적지에 벌인 잘못된 처신과 행동에 대한 비난으로 불똥이 튀는 양상이다.

일부 교민들은 사건자체보다는 사건을 일으킨 학생이 기독교봉사단체 소속이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유적지에서 공공연히 찬송가를 부르기고 기도를 하는 모습도 꼴불견"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현지 한 여행사 대표 김정수(가명)씨도 "나도 기독교를 믿지만, 선교단체들이 힌두교와 불교성지까지 들려 현지인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큰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거나 기도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가 자주 있다"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최소한 예의도 없는 것 같아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기까지 하다, 가끔 직접 가이드로 나설 때마다 유적지에 도착하기 전 차 안에서 여러 차례 주의와 당부를 하지만, 잘 안 지키는 경우가 많다"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반면 일부 교민들은 "이번 사건이 더 이상 크게 확대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태그:#캄보디아, #박정연, #앙코르와트, #앙드레 말로, #왕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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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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