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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불가능한 사망에 대비해 사전의료지시서가 필요하듯 혼인생활에서도 필요한 것이 혼인전계약서(Prenuptial Agreement)이다. 혼인전계약은 혼인이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상태인 이혼에 이르렀을 때를 대비해 미리 당사자 간에 권리의무 등에 관해 명확하게 정리하는 문서이기 때문이다. 즉 혼인 전에 이혼 시를 대비해 주로 재산분배 등에 관해 미리 약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240쪽)

참 재미있다. 그리고 서글프다. 어찌 이 시대가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법원은 이런 계약에 대하여 과거에는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현재는 그 효력을 인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온라인리걸센타 펴냄)의 저자 김승열 변호사는 이런 계약은 "부자의 재산을 지키는 방안 차원이 아니라 상호간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법의 소비자는 국민, 당연히 주체돼야

<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 표지
 <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 표지
ⓒ 온라인리걸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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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는 8꼭지의 글 묶음과 두 사회칼럼으로 엮어져 있다. 첫 꼭지 '회사법'에서는 주가조작 근절, 철도파업의 법적 접근 등 21개 칼럼이 묶여있다.

이어 기업금융법, 외국판결 및 공정거래법, 지적재산권법, 방송통신법, 보건복지법 및 중재, 세법과 에너지법, 이민법, 소비자법률과 환경법, 법률문화 등에 관련된 140여 편의 칼럼이 들어있다.

부록 꼭지인 마지막 칼럼들은 '조용필 열풍과 50대의 반란', '학생운동 경력이 멍에인가, 명예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이 들어있다. 조용필의 <바운스>와 <헬로우>의 인기는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고 50대의 영원한 로망의 대리만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학생운동 열외자였던 저자는 학생운동 세대의 등장을 정치적 잣대로 보면 안 되고 미화도 매도도 아닌 현재의 가치로 봐야한다고 충고한다.

이 책은 저자가 30여년간 법조계에 몸담고 피부로 경험한 사회현상을 묶어놓은 것이다.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법적 자문역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솔직히 일반인에게 법이란 '그들만의 이야기'인 게 사실이다. 저자는 이런 법을 서민에게 들고 내려와 선물하고 있다.

법의 주체가 누구일까? 일반인은 법하고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법조계 사람들, 국회, 아니면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이 법과 관계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대다수 국민을 지배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국민이 '판결대상자'가 아니라 '사법소비자'라며 소비자 기본권이라는 접근방식을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저자는 형사사건에서 실질적인 당사자주의가 강화되어야 하고, 판사에 대한 회피기피제도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재제도를 통하여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대체분쟁해결기구 같은 게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뿐만 아니라 재판정에서 사법소비자인 국민에 대한 폭언이나 욕설 등은 소비자 기본권이란 접근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황제노역 근절, 모든 판결 공개해야

<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 저자 김승열 변호사는 법률전문칼럼니스트가 되겠다고 말하고 있다.
 <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 저자 김승열 변호사는 법률전문칼럼니스트가 되겠다고 말하고 있다.
ⓒ 김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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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황제노역'이란 게 있다. 체납세금이나 추징금 등을 낼 수 없는 피고인이 돈 대신 일로 벌금을 내는 걸 말한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세금포탈 혐의로 254억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그에게 하루 일당 5억 원으로 환산한 이른바 '황제노역'을 판결해 국민의 공분을 샀었다. 대개 1일당 5만 원으로 환산해 노역장으로 유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경우는 5일 동안의 노역으로 무려 30억 원을 감면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판결을 내린 법관이 특정 지역에서만 오래 근무한 '향판'이란 것이다. 허 전회장의 아버지가 광주·전남지역에서 37년간 근무한 향판이며, 사위나 매제 등 집안이 이 지역의 법조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2004년 도입된 향판 제도를 10년 만에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승열 변호사는 황제노역에 대한 법원의 대처와는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재판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황제노역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종판결문은 물론 판결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판결문을 공개해 일반인이 그 내용을 검증하게 함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디지털 시대로 변화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사법부 역시 사법 소비자 중심의 문화로 조속히 변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법 영역에서 민주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판사는 단지 감독자, 최종 판단자일 뿐이고 양 당사자가 주체라고 말한다. 사법 민주화란 바로 사법 소비자가 권리를 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법 제도는 디지털 패러다임에 맞춰 정비돼야 한다는 것이고, 지식재산 관련 법제도 역시 변화하여 지식재산시장의 기술혁신을 통한 틈새시장 공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민청 설립 등 사회적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은 신선하다.

사외이사제도 개선과 경제민주화 이뤄야

저자 김승열 변호사는 지난 22일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고문변호사나 위원회 활동 등을 통하여 경험한 현안에 대하여 주로 경제지에 올렸던 칼럼들을 모아 이 책을 출판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률전문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며, 30년 법조계 경험을 토대로 "사회현상에 대하여 특히 법률적인 부분에 대하여 쉽게 설명하고 국내외 법령 및 법원의 태도, 개선방향이나 전망 등에 대하여 쓸 것"이라고 말했다.

사외이사가 일에 비해 너무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등기이사와 집행임원의 적정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고 거수기 역할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투입하여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등기임원으로서 향후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도 있다"며 현재의 사외이사제도는 "전문가로서 좀 더 회사운영 즉 집행임원을 감시하고 관리 감독하는 역할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적당한 보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대한 처벌이 문제인 주가조작에 대해 "내부자, 자금책, 그리고 증권전문가 등의 합작품"이라며, "엄중한 법집행과 이러한 행위는 반사회적인 범죄"라는 인식이 먼저라고 말했다. 주가조작을 통해 얻은 이익의 환수는 물론, "오히려 큰 손해를 입게 되고, 자본시장에서 매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조경제'와 아울러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창조경제를 모든 경제활동을 디지털화라는 혁신을 통하여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며, '경제민주화'는 정치 민주화를 이룬 우리나라의 절대적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제민주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생, 거래의 공정성과 투명성, 디지털 소비자권리 등 모든 경제활동분야에서 형평성과 합리성이 담보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경제민주화가 경쟁력을 악화시킨다고 호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태도"라고 일축했다.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의견과 영화 <블랙딜>(이훈규 감독)에서처럼 민영화의 배후에 정치권과의 검은 돈거래가 있다는 점에 대한 질문에, "공기업도 독점하면 부패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민영화 과정에서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이 서비스 개선은 뒤로 한 채 "감독기관인 정치권의 눈치나 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회사의 소송으로 인해 2013년도에만 해도 87%나 취소되었다. 이런 일은 "언론에 밀려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슬그머니 대기업을 봐주는 것"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정부에 "조사단계에서의 법집행의 전문성과 투명성 확보"를 주문하고, "사법부에서도 형식적인 법 논리에 치중한 점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별법, 사법권 줘야

그에게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물었다. 그에게 '조사위원회'에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의 주장대로 사법권과 기소권을 주면 사법체계가 흔들리냐고 물었다.

"모든 권력이 독점되는 것은 재고해야 합니다.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제한적 범위 내에서 수사권을 부여하고 나아가 이를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기소권을 부여하는 형태도 고려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즉 특검과 위원회를 통합한 형태를 한시적으로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운영하는 것도 시도해 볼 수는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위원회와 특검을 동시에 설치하여 상호 견제도 하고 같이 공조도 하여 진상을 규명하는 형태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서두에서 썼지만 '결혼전계약서'를 쓰라는 제안은 충격적이긴 하지만 이혼 후의 법적 공방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력이 있어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라 여겨진다. 이처럼 변하는 시대에 변하는 법적 자세, 이 책의 중심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법조계에서 사법민주화, 경제민주화를 통한 디지털화, 온라인로펌, 디지털시대의 법조계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신선함을 던져주고 있다.

김승열은 누구?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카이스트 겸직교수)로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미국 뉴욕주의 Paul, Weiss로펌을 거쳐, 재무부 OECD전문위원, 공기업 경영평가위원, 경남은행을 비롯한 리스회사및 저축은행 등의 금융기관의 각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단국대학교 정이사, 감사원 행정심판위원, 대한상사중재원의 국제중재인, 법무부 이민정책자문위원, 지경부 에너지정책자문위원, 사법연수원 외래교수, 방통위, 교과부, 환경부, 보사부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했다. 현재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민간위원, 금융위원회의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김승열 지음/ 2014/ 온라인리걸센타 펴냄 / 358쪽/ 1만4000원)



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

김승열 지음, 한송온라인리걸센터 주식회사(2014)


태그:#법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와 경제, #김승열 변호사, #서평, #세월호 특별법, #혼인전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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