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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숙 박사는 지난해 8월 독일외무부 자료를 근거로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학살 희생자 수가 지금까지 알려진 6661명 보다 3배 이상 많은 2만3058명이라는 충격적인 자신의 연구결과를 세상에 발표했다.

당시 강 박사는 "6661명이라는 숫자는 중국 상하이 거주 조선인 조사단이 일본 현지에서 1923년 11월 28일까지 집계한 수치"이며 "재일교포위문반과 당대 일본 최고 지식인인 '중앙공론' 편집장 요시노 사쿠조가 조사한 것을 비교해 도출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독일외무부 자료는 "4개월 후인 1924년 3월 작성된 것이기에 지금까지 나온 관련 사료 중 최종적인 조사 결과물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9월 1일은 비극적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이 일어난 지 어느덧 91년이 되는 날이다. 수천에서 수만 명의 죄 없는 재일 조선인들이 이성을 잃은 일본인들에게 참혹하게 학살당한 참사에 대해 한일양국 정부의 진상규명 활동은 아직까지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을 연구하는 강효숙 박사로부터 이 비극적 참사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지난 며칠 간 강 박사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강효숙 박사
 강효숙 박사
ⓒ 강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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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희생자 수가 기존엔 6621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강 박사가 독일 외부무 사료를 이용하여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자수가 기존의 6621명보다 3배 이상 많은 2만3058명이라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왜 그동안 독일외무부 사료가 한국이나 일본사회에 잘 안 알려졌는지 궁금하다. 또 어떻게 이런 중요한 사료를 그동안 일본이 아닌 독일외무부가 소장하고 있었는지?
"이 사료는 1923년 당시 북경에서 독일 외무부로 무명의 한국항일운동가가 보낸 사료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1991년 독일에 유학중이던 한국유학생이 독일외무부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 관련 자료를 조사, 수집하여 우리나라 국가보훈처에 제공하였는데,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던 사료다.

지난해 내가 발굴하여 한국사회에 최초로 공개하게 된 것이다(독일외무성 아카이브 담당자 확인 : 2013. 9. 2, 국가보훈처 확인 : 2013. 8. 22). 그동안 이 사료가 한국사회에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로는 설마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에 보훈, 공훈과 관련된 사료 이외 이러한 사료가 들어있으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선인 학살 희생자 숫자가 2만3000여 명이란 것은 약간 과장된 숫자일 것 같다는 점이다. 이 자료는 일본정부자료가 아니라 한 항일운동가가 작성한 것이라서 객관성 문제에 있어서 다소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치밀한 확인 작업이 필요한 자료다."

조선인학살,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정부의 관여로 시작된 것

 학살장면
 학살장면
ⓒ 미야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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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일본정부 관여 사실은 어느 정도 밝혀졌는가?
"일본 학계와 일본변호사연합회(일변협)에서 이미,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푼다거나 폭동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내무성 경무국이 경찰조직을 통해 일본 전국에 전파시켰다. 경찰과 관청이 연계되어 유언비어를 전국적으로 전파하여 일반 일본민중들에게 조선인에 대한 불안감을 고양시킨 후 자경단을 조직하게 하는 등의 일이 자료에서 확인되었다.

결국 이렇게 해서 민중들로 조직된 자경단이 같은 민중인 조선인을 학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그동안 뒤로 빠지고 책임을 민중에게 돌리는 식으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면피하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일본정부의 조선인학살에 대한 책임이 면죄되는 것은 아니다.

요코하마의 경우는 경찰이 앞장서 자경단 조직을 종용했다는 증언 등도 많이 있다. 이처럼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자연재해를 이용한 타민족학살이라는 성격을 띤다. 세계에서 유일하다. 일본정부 관여에 의해 군과 경찰, 자경단이 동원되어 자행된 인종학살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정부의 관여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1923년 학살이 끝난 후 국제적십자사에서 조선인 학살 희생자 규모에 대한 진상규명조사 활동을 벌였다. 이 조사활동에 대해 일본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조선인 학살 현황을 은폐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일본정부의 학살 은폐에 대한 양상을 몇 가지 소개하면?
"국제적십자사가 조사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한다는 정보를 접한 일본정부는 피학살 조선인의 시신을 매장한 학살현장에서 유골을 파내어 어디론가로 가지고 가서 이장을 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 유골을 어딘가에 흩뿌려서 학살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자 하거나 은폐하고자 하였던 증거들이 있다."

- 최근 요코하마시가 학생들이 배우는 일본역사교과서에서 1923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기록을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정부가 수정한 주요내용은 무엇인지? 또 역사교과서를 수정한 배경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요코하마는 지역적으로,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 6661명 가운데 반 수 이상이 학살당한 장소다. 현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 정부의 우익화 경향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작년에는 중학생용 일본사 교과서 내용 중에서, '군경민에 의한 조선인 학살'이라는 기술에서 군과 경찰이 빠진 기술로 수정되었다. 그리고 이것도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일본정부는 이미 배포된 재작년 역사 교과서를 모두 수거하라는 지시를 내려 상당부분 수거한 상태다.

일본 정부에 대한 일본인들의 불신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교과서 속에서 일본정부가 이렇게 나쁜 일을 했다고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이 정부에 대해 어릴 적부터 믿지 못하게 되고 정부의 하는 일에 불만을 품거나 지지를 하지 않게 되는 등 비판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에서 시작된 현상이다. 현재 일본정부의 우익화 경향이 빚어낸 교육계의 잘못된 현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인학살 연구, 이제 겨우 시작되고 있다

- 일본과 비교해 한국에서의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나? 또한 한국정부의 지원과 조치는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가?
"관련 연구는 이제 겨우 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관심들이 적었고, 사건 현장이 일본이라는 한계점이 있었다. 그동안 전후보상문제, 강제동원문제,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중심의 정부정책에 의해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전후보상문제, 강제동원문제,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도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에야 비로소 그 조사가 시작되었다. 더욱이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학살문제는 '학살'이라는 큰 명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니었다고 본다."

- 그동안 일본변호사연합회(아래 일변협)에서 1923년 조선인 학살의 전모에 관하여 진상조사와 원인규명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후 조선인 학살과 관련하여 일본정부에 권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변협에서 일본 정부에 제출한 권고서의 핵심내용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일본정부가 조선인학살 사실을 인정, 사죄하고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 책임 속에는 유골 이장장소, 신원 등에 관한 정보 공개 등도 포함되어 있다."

- 일변협에서 발간한 조선인학살 진상규명 보고서에 담긴 일본군대에 의한 조선인 학살 사실이 확인된 주요 내용에는 어떤 것이 있나?
"군인과 자경단에 의한 학살 사실을 정부 측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또 일본 내무성 경무국의 유언비어전파 사실 역시 송신소 기록 등을 통해 제시하였다."

- 조선인학살 행태 중 도쿄, 요코하마 등 지역적 학살 행태의 특징을 정리하면?
"도쿄의 경우 수도라는 특성 때문에 가장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은 곳으로 군대에 의한 학살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요코하마의 경우는 경찰이 동원되어 민중들에게 자경단을 조직하고 조선인을 학살한 곳이다."

-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 활동과 관련하여 고 문무선 할머니의 공헌을 어떻게 평가하나? 또한 문무선 할머니가 어떤 분이셨는지도 소개하면?
"고 문무선 할머니는 관동대지진 발생 당시 도쿄 시나가와구(品川区) 오오이(大井)에 거주하고 있던 재일조선인이다. 그분 부친의 지인이 관동대지진 직후 학살당했고, 학살당한 조선인 유체에서 잔혹한 흔적을 본 재일조선인 증인이었다. 고 문무선은 이러한 조선인학살의 목격자로서 1999년 12월 10일 일본정부에 대해,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학살은 '집단학살'이었고 중대한 인권침해였음을 밝힐 것을 요구하였다.

또 조선인학살은 외국인 학살이므로 국제법에 따른 외국인(타민족)에 대한 집단학살행위로서의 책임이 있음을 밝힐 것도 요구하였다. 그리고 집단학살 가해책임자를 일본 국내법으로 처벌하지 않은 일본정부의 책임을 밝힐 것 역시 요구하였다. 아울러 일본정부는 학살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과 재일조선인, 재일외국인에 대한 집단학살 재발방지조치를 취할 것을 덧붙였다.

한국정부와 한국 학계가 외면 및 무관심에 가까운 상태에 있을 때 고 문무선 할머니는 본인의 목격, 경험을 기초로 홀로 외롭게 일본정부를 상대로 그 책임과 사죄를 요청하고 재발방지까지를 목표로 한 싸움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이에 대해 묵살로 일관하였다. 고 문무선 할머니의 이러한 투쟁이 결국은 일변협을 움직이게 한 것이고, 현재 일본정부의 국가책임과 일본민중의 책임을 묻는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먼저, 일본정부가 조선인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 관동대지진 당시 자행된 조선인학살은 상당 부분이 군대보다도 민중들로 구성된 자경단에 의한 학살행위로 이루어진 것이었는데 자경단에 의한 몇 가지 학살 사례를 소개하면?
"나무에 묶어두고 죽창이나 일본도 등으로 지나다니면서 찌른 사례가 있다. 또 양손을 묶은 상태에서 강 속에 던져놓고는 그나마 헤엄쳐서 목을 강 위로 내밀면 작은 배를 타고 가서 도비구치(독수리 부리 같은 갈고리가 달려있는 공구)로 목을 찍어서 다시 물 속으로 조선인의 몸을 밀어 넣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대지진 때문에 활활 타고 있는 석탄 불 속에 조선인을 산 채로 집어 던진 경우도 있었다. 또 오토바이 뒤에 긴 줄로 몸을 묶은 조선인을 매달고 죽을 때 까지 달린 사례도 있다. 또 구덩이를 파고 조선인을 생매장한 사례도 있다. 너무 참혹해서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 향후 한일정부가 이 조선인 학살 진실규명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보나?
"먼저, 일본정부가 조선인 학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하지만 현 일본정부의 분위기로서는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된다. 한국정부는 지난 1923년 상해입시정부에서 일본정부에 대해 사실을 규명하여 보고서를 전할 것을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한국정부에서 단 한 번도 일본정부에 대해 조선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관련 자료 제공을 요청한 바가 없다.

그리고 9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지금은 그 많은 조선인 피학살자 유골들이 일본의 어느 곳에 매장되어 있는지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 그분들의 유골이나마 찾아내어 유족들에게 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학살 희생자 신원은 알아야, 유족들이 그 날에 제사를 지내지 않겠는가. 이런 차원에서 먼저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대해 조선인 학살과 관련한 정보를 요청해야 한다. 그 후 조사위원회를 조직하여 체계적으로 학살현장, 매장, 이장 장소들을 확인하고 조사해야 한다. 그 후 억울하게 학살된 분들이 누구인지 그 신원이 규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강효숙 박사는?
원광대학교 사학과 졸업(문학사)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대학원 일본사연구(문학석사)
일본 치바(千葉)대학 대학원 사회문화과학연구과 졸업(문학박사)
국가보훈처 해외사료수집위원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수집위원
독립기념관 해외사료수집위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
원광대학교 사학과 시간강사
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안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대표 주요저서>
-『관동대진지과 조선인학살』(공저), 동북아역사재단, 2013.12.
-『동학농민혁명의 기억과 역사적 의의』(공저), 전북사학회·정읍시, 2011.12
-『청일전쟁기 한·중·일 삼국의 상호전략』(공저), 동북아역사재단, 2009.4. 등


덧붙이는 글 | 관동대지진 국제학술회가 오는 29일 오후 2시부터 동북아역사재단 회의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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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