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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한 장면
 영화 <명량>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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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이 연일 한국 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우고 있지만 개봉 초기 스크린독과점 논란은 흥행 기록 이면에 드리워진 그늘이다. 개봉 첫 주말인 지난 3일 <명량>은 전체 2500여 개 스크린 중 최대 1586개를 차지하며 논란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이 과정에서 작은 영화들은 얼마 안 되는 상영관마저 빼앗기다시피했고 상영시간도 심야시간대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명량>의 초반 좌석점유율이 높았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대작영화와 작은 영화의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면서 영화산업의 기형적 구조만 커진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투자·배급·상영을 장악한 대기업의 수직계열화가 이런 문제의 근본적 바탕이라는 것은 이미 전부터 영화계가 공감하는 사안이다.

결국 수직계열화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같은 문제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스크린독과점 문제는 고질적이다. 법이나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투자·배급과 상영을 분리하지 않고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전공 변호사가 설명하는 파라마운트 판결

스크린독과점 논란이 생길 때마다 빠짐없이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미국의 사례다. 미국도 비슷한 일을 겪다가 결국 정부가 나서 대형 스튜디오들이 배급과 상영까지 장악한 영화산업의 독과점 행태를 규제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미국 법원이다. 194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대한 반독점 소송에서 파라마운트를 비롯한 메이저 스튜디오들에게 극장매각을 명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파라마운트 판결'이다.

영화산업의 독점을 규제한 파라마운트 판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할리우드 독점전쟁>
 영화산업의 독점을 규제한 파라마운트 판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할리우드 독점전쟁>
ⓒ 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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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마운트 판결은 미국 정부의 반독점 소송의지를 대변함과 동시에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시스템 붕괴를 촉발한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한쪽에서는 영화산업을 침체시켰다며 부정적으로 보지만, 독립영화가 약진하며 미국 영화산업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판결이 영화산업 전반에 미친 영향이 상당히 컸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스크린독과점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파라마운트 판결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파라마운트 판결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판결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미국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이 판결이 사실상 사문화됐다며 대형 스튜디오의 극장 취득이 가능해 졌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파라마운트 판결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떤 절차를 거쳐 판결이 이뤄진 것일까? 실제로 이 판결은 사문화 된 것일까?

궁금증을 명쾌하게 풀어주는 책이 나왔다. 장서희 변호사가 쓴 <할리우드 독점전쟁>이다. '파라마운트 소송 바로보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은 파라마운트 소송의 시작과  끝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발단과 전개, 판결의 세부적 내용 등이 서술돼 있다. 이후 미국 영화산업의 변화 과정과 한국 영화산업의 현재를 비교하는 부분은 흥미있게 읽힌다. 

책을 쓴 장서희 변호사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대에서 소비자학을 전공한 그는 석사과정을 마친 후 중앙대 영화학과와 영상대학원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영화를 전공히며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던 그는 이후 로스쿨에 진학해 법률을 공부한 후 지금은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소비자와 영화에 대한 전문지식을 법률과 연결해 영화와 관련한 역사적 소송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메이저 스튜디오 배급과 상영 분리시킨 독립영화인들

<할리우드 독점전쟁>에 따르면 파라마운트 판결을 나오게 만든 미국 정부의 반독점 소송은 1938년 대기업 스튜디오의 수직 독과점 체제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워너브라더스 등 극장을 소유한 대형 스튜디오가 극장까지 소유하면서 횡포를 부렸기 때문이다. 가격 담합 공모, 끼워 팔기, 무시사 상영계약, 독립극장들에 대한 차별, 독립제작자들 배척 등이 문제가 됐다.

1938년 시작된 소송은 1948년 연방대법원 결과가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지만, 중간에 정부와 스튜디오 간의 절충이 있기도 했다. 1938년 소송은 1941년 동의판결로 일단락됐다. 동의판결은 소송당사자들의 합의를 통해 판결을 하지 않고 법원의 승인을 통해 소송을 종결하는 제도다.

미 법무부 독점금지국은 동의판결에 따라 이들 스튜디오들에 대해 3년 동안 제재를 유보했으나 1차 동의판결에 극장 분리가 포함되지 않으면서 독립영화인들의 불만이 커졌다. 찰리 채플린, 사무엘 골드윈 등의 영화인들이 1942년 독립영화제작협회를 만들면서 반독점운동을 펼쳐나갔고, 동의판결 이행 기간이 끝난 1944년 정부의 제재가 다시 시작된다.

미 법무부는 '거래제한 공동행위와 독점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법률'인 셔먼법을 바탕으로 메이저 스튜디오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946년 1심 법원인 뉴욕연방법원은 배급과 상영 영역에서 파라마운트 등 피고들의 셔먼법 위반을 인정한다. 다만 제작영역에서 경쟁법 위반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법원이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법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극장분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스튜디오들은 판결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양측 모두 상소하게 된다. 1948년 5월 3일 미 연방법원은 파라마운트 판결을 통해 상영에 대해 독점 공모가 없다고 본 것과 극장 분리를 명하지 않은 판결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재심리 취지로 1심 법원에 환송 판결을 내린다.

스튜디오들은 끝까지 법정 투쟁을 벌이고자 했으나 일부 스튜디오들이 이를 동의판결로 수용하면서 다른 스튜디오들에게 파급됐다. 뉴욕연방법원은 연방대법원의 환송취지에 따라 1949년 7월 독점 금지에 대한 개선책으로 극장의 분리를 명한다. 파라마운트 판결이 완결되는 순간이었다.

투자·배급·상영을 수직계열화 하고 잇는 CJ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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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마운트 판결 이후 미국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는 붕괴되고 텔레비전의 등장과 함께 영화산업이 침체기에 들어간다. 냉전과 매카시즘은 할리우드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판결의 영향이 크기 하지만 영화산업의 침체 원인은 다른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대기업 수직계열화 용인하면 안 돼

하지만 배급업은 신장됐고 독립영화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성장도 두드러졌다. 스튜디오가 자랑하던 장르적 개성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나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되면서 더 큰 문화적 다양성과 질적 성장을 이뤘다는 평가가 있다.

1985년 법무부가 파라마운트 동의판결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다시 스튜디오의 극장 소유가 허용되지만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여전히 유효하다. 1980년대 이후 다른 판결에서도 계속 인용돼 왔기 때문이다.

'1940년대 당시 메이저 스튜디오에 극장을 분리하라고 한 연방대법원의 명령은, 경쟁법의 목적에는 그 위반행위가 가져온 불법적인 결과물을 제거하는 것이 포함돼야 한다는 견해에 따른 처방이었다.

연방대법원은 파라마운트 판결 당시에도 수직통합 자체는 위법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다만 파라마운트 피고들이 시도한 수직통합은 피고들의 독점 시도의 수단으로 간주하였기에 이를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의 파라마운트 판결은 지금도 건재하다.' (본문 중)

2000년 이후 대기업이 수직계열화가 심화되면서 스크린독과점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영화산업의 현실은 파라마운트 판결이 내려지던 시점의 미국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대기업의 독점에 대해 옹호론과 비판론이 교차하고 있지만, 저자는 한국 영화계에 대한 고언을 통해 이 문제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고 분명하게 정리한다. 

'극장분리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한국영화 시장이 대기업 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직통합의 해체는 대기업 투자심리 악화를 가져와 제작자본의 안정적 공급을 위협하고 한국 영화산업에 큰 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직통합의 해체가 곧 대기업의 영화시장 철수나 투자 위축에 따른 제작자본의 감소를 가져온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해결책은 한국영화제작자본의 체질을 본질적으로 건전화하는 데서 찾아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회피한 채 안정적 자금유입이라는 목적을 위해 대기업 수직통합 문제를 무비판적으로 용인하려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본문 중)


할리우드 독점전쟁 - 파라마운트 소송 바로보기

장서희 지음, 본북스(2014)


태그:#스크린독과점, #수직계열화, #영화, #파라마운트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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