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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온통 노란색으로 만들어 놓은 식물, 미국실새삼이다.
 강변을 온통 노란색으로 만들어 놓은 식물, 미국실새삼이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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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 더덕, 오미자, 새삼, 돌콩, 산머루, 다래, 꼭두서니, 새팥, 노박덩굴, 미국 실새삼, 가시박...

내가 아는 야생 넝쿨식물 이름이다. 덩굴이라고도 불리는 넝쿨식물은 줄기가 길게 뻗기 때문에 다른 나무나 식물을 감고 올라가는 게 특징이다. 넝쿨 채소인 호박, 오이, 토종박 등도 비슷하다.

칡이나 오미자, 돌콩, 산머루 등 토종 야생 넝쿨식물의 특징은 주위의 나무나 풀들과 어울려 산다는 거다. 내가 어렸을 땐 소나무에 올라가 산머루도 따고 참나무 위에서 다래도 따 먹었다. 솔향기 때문일까. 소나무 줄기를 감고 올라 열린 머루는 단맛과 신선함이 독특했다.

여러해살이 토종 넝쿨식물로는 오미자, 산머루, 다래, 칡넝쿨 등이 있다. 주변의 나무를 해하는 일이란 거의 없다. 한해살이인 새삼, 돌콩, 새팥 등의 식물도 인근 다른 풀들과 어울려 산다.

외래식물 미국 실새삼, 소름이 돋았다

미국 실새삼. 주변의 식물 줄기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미국 실새삼. 주변의 식물 줄기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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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노란 게 뭐지?"

지난 17일, 아내와 함께 찾은 화천 붕어섬. 가리킨 곳을 보니 파란 풀밭 한가운데 타원형 모양의 노란색이 펼쳐져 있었다. 대체 저게 뭘까. 다가가 보니 실새삼이다. 어렸을 때부터 콩밭이나 밭두렁에 자생하는 새삼과 실새삼은 많아 보아 왔지만 이렇게 주변을 온통 노랗게 물들여 놓은 경우를 보긴 처음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풀숲 한가운데서 자라난 실새삼은 주변의 풀들을 모조리 죽이고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듯 보였다. 멀리서 보면 흡사 노란색 연막탄을 터뜨려 놓은 형상이었다. 징그러움 그 이상이다. 팔에는 소름이 돋았다.

대체 뭘까. 가까이서 보니 옆에 있는 나무와 풀에 자신의 줄기를 감고, 그 줄기에 뿌리를 내렸다. 생긴 모양은 실새삼인데, 노란빛이 짙다. 모르는 건 물어 보는 게 상책이다.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각양각색의 댓글이 올라왔다. 그 중에 신빙성이 있는 댓글, '미국 실새삼'이란다.

조심스레 들여다보니 이 식물은 뿌리에서 양분을 흡수하는 구조가 아니다. 주변식물의 줄기에 뿌리를 내려 양분을 흡수하는 형태다. 주위의 식물들이 모두 말라 노랗게 보였던 이유다.

가시박의 유래, 마을 어르신에게 들었다

척박한 땅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외래식물 가시박. 줄기나 잎을 보면 토종박과 똑같다.
 척박한 땅에서도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는 외래식물 가시박. 줄기나 잎을 보면 토종박과 똑같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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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식물의 특징은 활착력과 번식력이 강하다는 거다. 꽃가루 알레르기 현상을 유발하는 단풍잎 돼지풀, 미국실새삼, 가시박 등의 식물은 한 개의 개체 발견 이후 채 2년도 되지 않아 온통 그것들의 세상으로 만들어 놓는다. 강가에 자라는 것이 특징인 이 식물들은 씨를 강물에 흘려내려 강 주변을 자신들의 세상으로 만들어 놓곤 한다. 번식력은 무서울 정도다.

외래식물인 가시박 줄기와 잎은 토종 '박'을 빼 닮았다. 꽃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열매가 달리기 전까지는 '누가 이런 강변에 박을 심었나'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구분이 모호하다.

"옛날 노인들 잘못이지..."

가시박이 무성한 강변마을의 한 어르신에게 물었더니, 옛 어르신들 때문이란다. 설명은 이렇다.

옛날 농가에 유기나 사기그릇이 귀하던 시절, 박이 그릇을 대용했다. 가을에 초가지붕 위에서 따낸 박을 타 바가지를 만들었다. 겸상을 하지 못한 아낙들이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부엌에서 밥을 담던 용기도 바가지였고, 우물가에 나그네의 목축임을 위해 놓아두었던 그릇 또한 바가지였다.

잘생긴 박을 타 도심지에 사는 친지들에게 선물로 보냈다. 때를 놓쳐 박을 심지 못한 이웃에게 선물도 하곤 했다. 시골에선 박이 인심의 상징이었다.

"그러면 가시박과 토종 박은 어떤 연관성이라도 있는 걸까요?"

가시박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특성을 지녔단다. 병충해 피해도 없다고 했다. 농민들은 가시박을 심고 거기에 토종박 접을 붙였다. 병치레도 없는 싱싱한 박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너도나도 이 방법으로 박 농사를 지었다.

이후 플라스틱 제품의 용기가 나오면서 박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더 이상 박을 심을 이유가 없어졌다. 가시박 피해에 대한 심각성을 몰랐던 농민들은 그대로 방치했다. 지천에 가시박이 퍼지게 된 이유란다. 결국 왕성한 번식력으로 토종식물을 몰살 시키는 가시박을 환경부에서는 환경유해식물로 지정했다.

외래식물 퇴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육군제 27보병사단의 돼지풀 퇴치작전
 육군제 27보병사단의 돼지풀 퇴치작전
ⓒ 국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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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종은 번식력도 강하고 어떤 곳이든 잘 자라는 이유가 뭘까?"

우문현답. 옆에 있던 아내는 명답을 내 놓았다.

"글을 쓴다는 사람이 그렇게 상상력이 없냐. 당신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외국에 살고 있다는 가정을 해 봐라. 살려고 버둥대다 보면 생활력도 강해지고, 거칠어져 척박한 곳에서도 잘 적응할 것 같다는 생각 안 들어?"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서 원조한 쌀에 묻어 들어왔다는 돼지풀을 비롯한 가시박, 미국실새삼 등 외래식물로 우리나라 산야는 몸살을 앓고 있다. 강원도 화천의 육군제7보병사단, 27사단에서는 장병들이 나서 '외래식물 퇴치 작전'까지 펼칠 정도로 그 확산 정도가 심각하다. 일회성 구호가 아닌 멸종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태그:#돼지풀, #미국실새삼, #가시박, #외래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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