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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섬 나오시마 이야기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노란 호박'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노란 호박'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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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섬 나오시마(直島,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소재)로 간다. 그 이유는 모네(Claude Monet)를 만나고,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를 만나고, 이우환(李禹煥)을 만나기 위해서다. 나오시마는 1992년 아트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현대 예술의 성지가 되었다. 세토내해를 따라 형성된 산업이 몰락했고, 1980년대 후반 들어 피폐해진 이 섬들을 살리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때 주동이 된 사람이 나오시마 촌장 미야케 치카츠쿠(三宅親連)와 후쿠다케 서점 사장인 후쿠다케 데츠히코(福武哲彦)였다.

그러한 뜻이 데츠히코의 아들 소이치로(總一郞)에 의해 1992년 베넷세 하우스 뮤지엄(Benesse House Museum)으로 가시화되었다. 베넷세 하우스 뮤지엄은 미술관과 호텔을 일체화한 건물로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설계로 이루어졌다. 베넷세 하우스 뮤지엄에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수십 점 전시되어 있다.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 백남준, 오다케 신로(大竹神郞),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리차드 롱(Richard Long)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프로젝트의 하나인 '하이샤'
 이에 프로젝트의 하나인 '하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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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환경파괴로 죽어가던, 일자리가 없어 사람이 떠나던 섬이 예술의 섬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현상을 '나오시마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산업과 함께 망해가는 삶, 산업으로 인해 파괴된 자연을 예술을 통해 부흥 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항상 후쿠다케와 안도가 있었다.

1997년에는 이에(家)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에 프로젝트는 혼무라(本村) 지구의 민가를 개보수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를 통해 카도야(角屋), 미나미데라(南寺), 하이샤(はいしゃ) 등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카도야에는 미야지마 다츠오(宮島達男)의 작품 세 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디지털 시대를 상징하는 숫자를 넣어 문명과 폐허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우환의 작품 '휴식'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이우환의 작품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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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데라는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절터에 신축한 건물로, 그곳에 제임스 터렐(James Turrel)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은 터렐의 전매특허인 빛의 예술로 '달의 뒷면(Backside of the moon)'이다. 하이샤는 치과의원 겸 주택으로 사용되던 건물에 오다케 신로의 작품을 설치했다. 이 건물은 겉에서 보면 유령의 집 같다. 벽을 진한 갈색으로 칠하고, 집의 상단부에 스피커를 달고, 벽 밖으로 배의 일부를 돌출시켰기 때문이다. 오다케는 이 집의 주제를 '혀 위의 꿈(舌上夢)'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2004년 나오시마에는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이 문을 열었다. 이름처럼 건물 전체가 땅 속에 묻혀 있고, 지하 전시실에 모네,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빛의 예술가로, 빛을 건축에 활용한 안도 다다오의 건축미학과 맞아 떨어져 이곳에 전시될 수 있었다. 이후 안도와 터렐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해서 함께 작업하고 있다.

나오시마에서 이루어진 가장 최근의 작업은 이우환 미술관 개관이다. 2010년 제1회 세토우치 국제예술제(Setouchi Triennale)에 맞춰 안도와 이우환의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이우환은 공간의 여백을 강조하는 예술가다. 또 물체와도 대화를 하는 철학자다. 그래선지 전시공간으로서의 방은 만남, 침묵, 명상, 그림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우환 미술관에서 우리는 우주와 시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새벽부터 서두를 수밖에 없는 이유

다카마츠와 섬 사이를 운행하는 페리
 다카마츠와 섬 사이를 운행하는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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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로 들어가려면 배를 타야 한다. 뱃길은 두 군데서 연결된다. 하나는 오카야마(岡山)현의 우노(宇野)항이고 다른 하나는 가가와(香川)현의 다카마츠(高松)항이다. 우노항에서는 하루에 17회 배가 왕복하고, 다카마츠항에서는 하루에 9회 왕복한다. 우리는 다카마츠공항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다카마츠항에서 나오시마로 가는 배를 탄다.

배는 두 종류다. 하나는 페리고 다른 하나는 고속여객선이다. 우리는 아침 8시 12분발 페리를 탈 예정이다. 우리가 간 때는 일본의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시기여서 나오시마로 들어가는 승객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한 시간쯤 일찍 다카마츠항에 도착한다. 버스를 여객터미널 주차장에 세우고 승선을 기다린다. 우리 일행은 시간 여유가 있어 항구 근처의 볼거리를 살펴본다.

다카마츠항 상징조형물
 다카마츠항 상징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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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마모(玉藻) 방파제 끝에 있는 등대로 간다. 이 등대는 세토내해에 있는 붉은 유리등대(赤燈臺)로 유명하다. 붉은 유리로 바깥을 둘러싸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이 등대는 밤에 유리벽에 빛을 비춰 빨간색으로 빛난다. 그러나 아침에 보아서 그런지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다. 등대를 보고 나서 우리는 해변도로에 있는 다카마츠항 상징조형물로 간다.

이것은 '하늘과의 경계(Liminal Air)'를 뜻하며, 항구로 또는 바다로 들어가는 문을 나타낸다. 이 조형물은 제1회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개최된 2000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항구에 연한 수성로(水城路) 남쪽으로 다카마츠성의 성루들을 볼 수 있다. 다카마츠성은 일본의 대표적인 수성으로, 해자로 바닷물을 끌어들여 외부의 공격을 차단했다고 한다. 

미야노우라항으로 접어들며 보이는 빨간 호박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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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관광을 마친 우리는 페리선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버스를 탄다. 우리 같은 단체 관광객은 버스에 탄 채로 페리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페리로 들어간 다음에는 버스를 내려 객실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배를 타는 시간은 50분이다. 그리고 배를 내릴 때도 버스를 타고 내리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배가 출발하기 10분 전인 8시까지는 버스에 올라야 한다. 그러므로 서둘러 버스로 돌아간다.

배는 8시 12분 출발한다. 잠시 등대가 있는 방파제를 빠져나가 세토내해로 들어선다. 세토내해는 시코쿠와 주코쿠 사이에 있는 바다로, 폭이 15~55㎞로 넓지 않다. 그리고 수심도 평균 31m에 불과해 물결이 잔잔한 편이다. 나는 선실로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나오시마의 미야노우라(宮ノ浦) 항이 가까워졌을 때 다시 갑판으로 올라간다. 방파제 너머로 항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방파제 너머 선착장 한쪽에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도 보인다. 이 작품은 200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994년에 만들어진 노란 호박과 함께 나오시마의 상징이 되었다. 노란 호박은 박물관 지역 해안가 콘크리트 방파제 위에 있다. 사실 쿠사마의 예술 이력에 있어서는 노란 호박이 더 중요하다. 그것은 쿠사마의 홈페이지 자신의 이력 부분에 소개되기 때문이다.

여객선 터미널 건물
 여객선 터미널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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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에서 내린 다음 여객터미널 건물로 들어간다. 이 건물도 니시자와 류에(西澤立衛)와 세지마 가츠오(妹島和世)가 지은 유명 건축이다. 유리를 통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의 건물은 가나자와(金澤)에 있는 '21세기 미술관'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그를 통해 이들 건축가는 2010년 프리츠커(Pritzker)상을 받았다.

여객터미널 건물에서 잔디밭을 지나 어항 쪽으로 가면 빨간 호박이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빨간 호박 주위를 한 바퀴 돈다. 호박이기도 하지만 무당벌레 같기도 하다. 빨간색에 크고 검은 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로테스크한 호박이다. 쿠사마의 예술은 1960년대 행위예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1966년 제33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1500개의 구슬로 만든 '나르시서스 정원'을 출품해 유명해졌다. 그런데 이 전시회에서 그 작품을 단돈 2$에 판다고 해서 비엔날레 집행부로부터 강렬한 제지를 받기도 했다. 쿠사마는 이후 항상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예술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그녀는 현대 자본주의의 기업과 협업 형식으로 예술 작업(Art Project)을 진행하기도 했다. 코카콜라, 루이뷔통과의 작업이 대표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목욕탕: I♥湯

아이 러브 유
 아이 러브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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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을 보고 나서 나와 아내는 미야노우라 지역 아트 프로젝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 러브 유'로 알려진 나오시마 배스(直島錢湯), 도예체험공방, 007뮤지엄 등이다. 우리는 그 중에서도 유명한 목욕탕 I♥湯를 찾아간다. 이 목욕탕은 2009년 오다케 신로가 시설과 디자인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9시에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오후 2시는 되어야 문을 연단다. 우리는 외관만 구경할 수 밖에 없다. 내부의 벽과 바닥에 그려진 그림과 유명한 코끼리를 볼 수 없어 아쉽기는 하다. 겉보기에 이 목욕탕은 면단위 시골의 허름한 목욕탕에 불과하다. 건물, 조형물, 야자수가 촌스럽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9년 이후 목욕을 하며 예술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고 한다.

직도전탕 티셔츠를 입은 사나이
 직도전탕 티셔츠를 입은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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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여행을 하며 직도전탕(直島錢湯)이라는 글자를 새긴 옷을 입고 자전거 여행을 하는 젊은 한 쌍의 연인을 만날 수 있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직도전탕이라는 한자를 쓴 티셔츠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그 남자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다. 나오시마의 이 목욕탕이 그 만큼 유명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오시마 목욕탕은 510¥의 입장료를 받는다. 그리고 목욕용품에 대해서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은 이들 물건을 기념품으로 가지고 간다고 한다. 오다케는 아이러브유 프로젝트 이후 만남의 장으로 이 지역에 술집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다케의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007기념관이 이곳에 있는 이유

007기념관
 007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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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까운 곳에 있는 도예체험 공방으로 가려했지만 오후 1시부터 문을 연단다. 그리고 그곳은 예약이 필수라서 발길을 007기념관으로 돌린다. 가는 길에 박물관과 식당 그리고 기념품점을 겸하고 있는 나오팜(Nao Pam)을 만날 수 있었다. 검은색 2층 판자집 건물로 외형은 오히려 목욕탕보다 나았다. 이곳 역시 11시에 문을 열고, 점심과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생선 정식이 1,000¥ 정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 찾아간 곳은 007기념관이다. 제임스 본드(James Bond) 소설 시리즈 중 <빨간 문신을 한 남자>의 배경이 일본인 데 착안해 2005년 문을 열었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레이먼드 벤슨(Raymond Benson)이다. 이 작품은 2002년 영국에서 처음 발간되었고, 2003년 일본에서도 발간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영화화되지는 못했다.

[빨간 문신을 한 남자]
 [빨간 문신을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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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문신을 한 남자> 이야기는 일본 재계 거물의 딸이 일본에서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죽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임스 본드가 조사해 보니 사인은 나일강 서부 바이러스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 모두 역시 그 바이러스로 인해 죽었다. 이에 본드는 살인자를 찾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일본인 친구 타이거 다나카의 소개로 자신을 도와줄 일본인 여형사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인 여형사 역시 바이러스로 죽게 된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보니 관람객은 하나도 없고 분위기가 음산하다. 본드 복장을 한 남자가 적을 물리치는 장면도 있고, 총을 들고 있는 모습도 있다. 또 제임스 본드 시리즈 책도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에 주를 이루는 전시물은 인간의 심장이다. 전시 공간 가운데에 심장을 크게 만들어 놓았는데, 총알이 박혀 그곳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다. 쏟아진 피는 바닥으로 흘러내려 응고해 간다.

007기념관 내부
 007기념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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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벽에는 본드 시리즈에 대한 설명과 심장 스케치가 가득하다. 실제 본드 시리즈가 이곳 나오시마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가 예술의 한 장르라는 측면에서 이곳에 007뮤지엄이 세워진 것 같다.

그렇지만 본드 시리즈로 정작 영화화된 것은 2002년 출간된 벤슨의 또 다른 작품 <오늘은 죽지 않는다(Die another day)>이다. 이 작품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영화 탄생 40주년을 기념하는 20번째 영화로 만들어졌다. <다른 날>은 북한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관심을 끈 바 있다. 그러고 보니 2002년은 본드가 동양에 관심을 가진 해였던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나오시마 르네상스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나오시마가 현대예술의 성지로 재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재 내용은 1. 예술의 섬 나오시마, 2. 이우환미술관, 3. 지중미술관, 4. 베넷세 하우스, 5. 야외 전시물이다. 이를 통해 예술의 섬 나오시마의 진정한 모습을 자세히 조명하려고 한다.



태그:#나오시마, #예술의 섬, #안도 다다오, #미술관, #다카마츠-미야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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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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