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번지점프를 하다><혈의 누><가을로><후궁>의 김대승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신사동 위더스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혈의 누><가을로><후궁>의 김대승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신사동 위더스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무려 23년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긴 시간 동안 충무로에서 부침 없이 영화에 대한 열정과 애정으로 뚝심 있게 버티고 있는 감독이 있다. 바로 <번지점프를 하다>로 유명한 김대승 감독.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영화 <하얀 전쟁> 연출부로 영화판에 들어온 김대승 감독은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 <태백산맥>(1994), <축제>(1996)의 연출부와 <창>(1997), <춘향뎐>(1999)의 조감독을 거치며 약 8년 동안 혹독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김대승 감독은 장편데뷔작으로 2000년 <번지점프를 하다>를 내놨다. 이후 <혈의 누>(2005), <가을로>(2006), <연인>(2007), <후궁: 제왕의 첩>(2007)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충무로의 밥을 먹으면서 관객들과도 꾸준히 소통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지난 세월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번지점프를 하다>"

- 2000년에 내놓은 <번지점프를 하다>는 당시 멜로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열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영화 팬들이 좋아하는 멜로 영화로 손꼽힙니다. 다음 카페 '번사모'(<번지점프를 하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영화 개봉 10주년을 맞아 특별상영회를 개최하기도 했다죠?
"제가 '번사모' 모임에 마지막으로 간 게 2011년, 10주년이었을 때예요. 단성사에 번사모 멤버들이 쭉 모였는데 일본 분들이 반 이상이더라고요. 1주년, 2주년 때에는 한국 관객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본 관객은 10분의 1정도였는데, 그 사이에 일본 팬들이 많이 늘었더라고요. 이병헌씨랑 홍수현씨도 10주년 기념 상영회에 왔다 가시고요. 

감독으로 대단히 기분 좋은 일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혈의 누> <가을로> <후궁> 등이 이후에 쭉 만들어졌는데 지나온 10여년의 세월 동안 '내가 영화에 담아내는 철학이나 솜씨가 늘었는가, 좋아지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부끄럽기도 해요. 수타면을 뽑아내는 장인이라면 진짜 선수라도 됐을 텐데, 지난 세월 동안 난 어떤가 돌아보게 되는 게 <번지점프를 하다>이기도 합니다."

 김대승 감독 연출 <번지점프를 하다>

김대승 감독 연출 <번지점프를 하다> ⓒ 눈엔터테인먼트


- 그동안 연출한 작품 중에서 아픈 손가락은 어떤 영화인가요?
"어디서 잘 못 하는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가을로>가 가장 아픈 손가락이죠. 멜로 영화지만, 한국 현대사의 곪아터진 상처인 삼풍백화점이 붕괴 사건의 비극을 담고 있어요.

엄지원씨가 여행을 하고 그 과정에서 유지태씨를 만나는 멜로가 있고, 다른 한편 백화점이 무너지고 그 안에 매몰된 이야기가 교차되는 건데 백화점을 못 찍었어요. 제작자는 백화점 붕괴 촬영에서 정말 적은 비용을 생각하고 있었고, 찍는 내내 개봉 할지 못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부산영화제 개막작이 아니었다면 아마 완성을 못 했을 수도 있을 정도였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한국현대사의 문제도 짚고 싶었는데 완성도 면이나 그 과정 속에서 많이 힘들게 찍었습니다."

"임권택 감독님 만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이 돼 있겠죠"

-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어떻게 임권택 감독님 사단에 들어가게 됐나요. 
"1990년 2월 졸업을 하고 선배들에게 일자리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는데 정말 운 좋게 <하얀 전쟁> 스크립터를 하게 됐어요. <하얀 전쟁> 끝나고, 임권택 감독님이 <태백산맥> 촬영을 위해서 전쟁영화 경험을 한 연출부를 뽑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임권택 감독님 연출부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근데 <태백산맥>이 뒤로 밀리게 되면서 <서편제>부터 감독님 연출부로 함께하게 됐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제가 천운을 타고 난 것 같아요. 당시 연출부 사람들이 모두 임권택 감독님과 일하고 싶었을 텐데 정말 운이 탁탁 맞았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서편제> <태백산맥> <창> <춘향뎐>까지 하게 됐어요. 정말 감독님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중요한 작품들을 함께 해서 저로서는 대단히 영광스러웠습니다. 연출부 시절에 '내가 임권택 감독님의 마지막 조감독을 하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기도 했어요."

- 임권택 감독님에 대한 애정은 언제부터였나요.
"고등학교 때 <만다라>를 보고 매혹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서 충격적인 게 <장군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성룡의 취권, 이소룡의 정무문 등의 액션이 유행이었는데 <장군의 아들>을 보고, '액션이 이럴 수도 있구나' 충격을 받았어요. 완성도가 높은 영화들이었죠.

어린 시절 감독님의 영화를 극장에서든 어디서든 찾아보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과 처음 우연히 마주친 게 남산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였는데, 임권택 감독님이 편집실 앞을 지나가시더라고요. 정말 너무 설렜고 인사를 드렸는데 인자하게 웃으면서 잘 받아주셨어요. 저한테는 임권택 감독님, 배창호 감독님 등 꿈에 그리던 스타를 만난 거였죠."

 4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신세계 센트럴시티에서 열린 영화 <화장> 제작발표회에서 임권택 감독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2013년 10월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신세계 센트럴시티에서 열린 영화 <화장> 제작발표회 당시. 임권택 감독. ⓒ 이정민


- 실제 연출부로 들어가서 임권택 감독님과 일을 해보니 어땠나요.
"연출부에서 처음 인사를 드렸는데, 감독님이 '난 네가 무슨 학교를 나왔는지, 뭘 잘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네가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3년만 견뎌봐'라고 하셨어요. 사실 당시는 연출부 하면 무조건 10년, 도제 시스템이라서 3년은 우습게 생각했어요. 근데 <서편제>를 하면서 해남으로 갔는데 크랭크인 할 때 스태프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작살이 났어요.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감독님이 '애 옷이 왜 이렇게 깨끗하냐'고 난리 날 정도로 혼내셨어요. 너무 무서웠고 그제야 '왜 3년만 버티라'는지 알겠더라고요. <태백산맥> 하면서도 너무 힘들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 같았어요. 늘 혼이 났죠. 그때 '아 진짜 그만 해야겠다'는 마음을 계속 먹었어요. 근데 또 어느 날 '수고했어' 그러시면 마음이 녹고. 그렇게 8년을 같이 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감독님은 자신과 자기의 가족들, 자기 연출부한테는 대단히 엄격하신 분이었어요. 감독님 댁에 방문했을 때, 멍하니 TV 보는 걸 한 번도 못 봤어요. 늘 시나리오 고치고, 무엇이든 읽고 계셨습니다. 자신한테 굉장히 엄격한 분이었고 두 아들한테도, 연출부한테도 엄청 엄격하셨죠. 그 외 다른 분들에게는 다 너그러우세요."

- <번지점프를 하다>를 만들어 내놓았을 때 임권택 감독님이 어떤 평가를 하셨을지 궁금해요.
"<번지점프를 하다> 개봉하고 나서 첫 시사를 하는데 감독님한테 전화를 못 하겠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서. 오금이 저리고. 그렇다고 감독님을 돈 주고 보게 하실 수 없으니 두 번째 시사에 초청을 했어요. 전화 하면서도 '안 받으시면 좋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근데 받으시더니 '가야지!' 하시더라고요.

임 감독님이 영화를 보시고 나오시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이 '저리로 가자'고 하셔서 차 있는 데까지 모시고 갔는데, 욕을 욕을 먹었죠. '거기 사운드, 시간이 있어 없어?! 최선을 다해서 해!'라고. 억장이 무너지고, 눈물 바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씨네21> 인터뷰 때 <번지점프를 하다>를 어떻게 보셨는지 임권택 감독님에게 질문을 했나 봐요. 그때 임 감독님이 '장점이 꽤 많더라'며 칭찬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그 잡지를 부등켜안고 또 눈물바람이었죠. 제가 초·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길게 다녔지만 정말 마음으로부터 존경하는 단 한분의 스승은 임권택 감독님이세요. 만약에 감독님을 안 만났으면 지금 다른 인간이 돼 있었을 거 같아요.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이세요."

 영화 <후궁: 제왕의 첩>에서 화연 역을 맡은 조여정.

김대승 감독이 연출을 맡은 최근작. 영화 <후궁: 제왕의 첩>의 여주인공 조여정. ⓒ 황기성 사단


▲ [스타영상] 김대승 감독 "임권택 감독님, 마음으로부터 감사드립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 '가을로' '후궁'의 김대승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신사동 위더스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며 임권택 감독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 이정민


- 임권택 감독님에게 배운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요.
"되도록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디렉션(지시)을 해주세요. 배우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하는 것도 감독님에게 배운 유산입니다. <태백산맥> 때 배운 것인데, 당시 밥차가 없어서 동네 밥집에서 밥을 싣고 와서 배식을 하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감독님의 연세도 있고 그래서 감독님 상에 반찬 한 가지를 더 올려 두었나봐요. 감독님이 그걸 나중에 알고 제작부장을 불러서 혼을 내셨죠. '내 상에 계란 하나라도 더 올리면 이 밥 안 먹는다'고요. 감독님은 억지로 만드는 권위가 아니라 삶 속에서 어떻게 영화를 찍는지 몸소 보여주시는 분이세요. 영화를 찍는 과정을 보면 존경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경지입니다."

- 20년 이상 충무로에서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그동안 많은 감독님들이 사라지고 또 후배 스타 감독님들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오랜 시간 충무로 버티기, 어떤 것이 가능하게 한 걸까요?
"정말 임권택 감독님을 만난 게 저에게는 첫 단추부터 운이 좋은 거 같아요. <번지점프를 하다>는 제가 쓴 시나리오가 아니었고, 제작자가 맡긴 건데, 왜 저한테 맡겼을까요? 그건 '저 놈이 임권택 감독 조연출'이라는 것 때문이었겠죠. 그렇게 시작이 됐고 <번지점프를 하다>가 잘 됐습니다. 그 영화를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고, 그 힘으로 다음 작품 <혈의 누>가 나왔어요. 그 영화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고, 그 이후에 <가을로> <연인> <후궁>까지 나오게 됐어요. 첫 영화의 힘이 지금까지 오는데 계속 힘을 발휘한 것 같아요."

"멜로는 아직도 너무 어렵지만...차기작도 멜로입니다"

- 그 이후부터 매 작품마다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창작의 고통은 감독 스스로의 몫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 만들기는 힘든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고, 그걸 다른 방식으로 찍고 싶은 거죠. 관람료 내고 영화 보러 오시는 분들이 '시간 버렸네' 하면 안 되니까 당연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돌려 드려야하는 건 완성도죠. 또 완성도 그 이상의 다른 뭔가가 있어야 하고요. 늘 괴롭습니다.

그런 면에서 멜로 영화가 어려운 것 같아요. '너무 유치하지 않을까, 과하지 않을까'를 계속 생각해야 해요. 멜로는 좀 더 가면 신파가 되고, 너무 안 가면 건조하게 되거든요. 감독은 선택하는 사람이라서 명주실을 잡고 가는 심정으로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허진호 감독님, 박흥식 감독님은 정말 훌륭하죠. 그 선을 잘 지켜서 만드시더라고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혈의 누><가을로><후궁>의 김대승 감독이 22일 오후 서울 신사동 위더스필름 사무실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영화 <하얀 전쟁> 연출부로 첫 영화판에 들어온 김대승 감독은 이후 임권택 감독의 주요 작품에 줄줄이 연출부를 하게 되면서 임권택 감독의 애제자가 됐다. ⓒ 이정민


- 차기작 계획은요?
"사극 멜로예요. 가제는 <조선마술사>, 마술사의 사랑 이야기. 마술도 실제로 구현해야 해서 준비할 게 많습니다. 연초에 크랭크인 해서 가을 정도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교수로도 재직 중이시더라고요. 영화의 꿈을 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미래에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느 학교 어느 과를 나오는 게 아니라 '무엇을 읽느냐'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만큼 플롯들을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는 사람들은 없고요, 도스토예프스키 만큼 인간에 대한 성찰을 잘 꿰뚫는 작가도 없습니다. 결국 우리 선인들이 다 해둔 것을 우리가 받아 보면서 가는 건데요. 무엇이든 많이 읽고 쓰고 보고 듣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도제의 끝물에 영화를 시작해서 잘 버티면 기회가 생겼어요. 근데 지금은 도제는 끝났고 자기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거죠. 그 유일한 길은 시나리오인 것 같아요. 부지런히 쓰고 또 쓰고,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시나리오 개발 지원 등을 잘 활용해서 오래 버티면 언젠간 그 순간이 오겠죠. 언젠가는 올 그 순간을 대비해서 뭘 하나씩 만들어 놓고 있어야 해요."


"창간 3주년 <오마이스타>,
이런 영화기사 써 주세요!"


 김대승 감독, 오마이스타 창간 3주년 축하인사

김대승 감독, 오마이스타 창간 3주년 축하인사 ⓒ 김대승


김대승 감독은 오마이뉴스 연예 브랜드인 <오마이스타>에 다양한 영화이야기를 실어 달라고 당부했다.

"문화는 정말 다양성이 꽃피어야 한다고 봅니다. 스크린 독과점으로 다른 영화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개봉 첫 주부터 차별을 받고 스크린을 잘 못 잡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할 것 같아요.

언론에서도 다양한 영화들을 다루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독립영화들도 많거든요. 그 영화를 만드는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면 그 분들에게도 힘이 되고, 한국영화를 전체적으로 살 찌우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과점 문제, 수직계열화 등의 문제도 짚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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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승 번지점프를 하다 혈의 누 가을로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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