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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촉촉하게 내리네요. 덕분에 일산에서 서울시내 나오는 '자유로'가 막혀서 출근이 늦었습니다. 매일 아침 '자유로'를 타고 분단의 아픔과 자유를 향한 갈망을 동시에 읊조리며 출퇴근하는 것도 복이다 싶습니다. 도로의 명칭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떤 가치'를 찾아나서는 이들에게는 당연하다싶은데, 문득 제가 즐겨 피우던 담배 생각이 났습니다.

2006년에 출시된 '인디고'라는 담배입니다. 당시에 저는 '인디고 유니콘'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차라서 그 이름이 선명하게 다가오고, 이 담배 판매가 중지될 때까지 줄곧 '인디고'만 피웠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인디고 유니콘'이란 카페에는 이렇게 프로필을 적어두었습니다.

"세상과 자신의 혁명을 꾀하는 모든 노력을 담아 소통하고 싶습니다. 인디고는 지혜를 상징하는 제3의 눈이며, 높은 하늘과 깊은 바다의 짙푸른 남색이 가리키는 영성을 뜻합니다. 유니콘은 온 세상을 아우르는 치유의 힘을 가진 전설 속의 짐승이며,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으며, 그 뿔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인디고 유니콘은 지혜를 통하여 의식을 성장시키고, 세상을 평화롭게 치유하기 위하여 서로가 소유한 바를 마음으로 나누는 공간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와 혁명입니다. 우리 자신과 세상의 동시적 변형을 꾀하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고 세상을 해방시키리라 믿습니다."

KT&G는 '인디고'를 출시하면서 "자유에 대한 열망과 강한 독립성을 갖고 있는 20대"를 타깃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담배 포장에는 '키사'라는 상상 속의 붕새가 비상하는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담배갑이 자외선에 노출되면 감광효과를 일으켜 쪽빛 붕새의 이미지 뒤에 접혀 있던 다른 날개가 돋아나거나 태양이 뜨거나 회오리가 나타납니다. '자유'를 향한 역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담배 콘셉트입니다. 그러니, 제가 '인디고'를 마다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담배 생산이 중단된 뒤에 담배를 끊어볼까, 생각했지만 미욱한 일상이 아직도 저를 '금연 희망자'로만 남게 했습니다.

교종 프란치스코, 쏘울 탄 위대한 영혼

14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의전차량으로 준비된 기아차 '쏘울(SOUL)'을 타고 청와대 부근을 지나고 있다.
▲ 소형차 탄 교황 차량 행렬 14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의전차량으로 준비된 기아차 '쏘울(SOUL)'을 타고 청와대 부근을 지나고 있다.
ⓒ 교황방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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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님,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왜 하필이면 방한 기간에 사용할 의전차량으로 '쏘울'을 선택했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교종께서는 사전에 '작은 차'를 주문하셨고, 소형차량 가운데 '영혼'(soul)이라는 의미를 지닌 '쏘울'을 선택하셨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종교지도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도자는 누구나 자발한 일상 가운데서도 의미 있는 행동을 선택적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 SNS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을 두고 '쏘울 탄 위대한 영혼'(Great soul in soul)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인은 작은 데서도 다른 선택을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종의 이러한 행보는 물론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은 거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교회가 부패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자주 시내에 있는 콘스티투시온 광장에서 거리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여기서 청소부들과 인신매매 희생자들을 위해 미사를 했는데, 미사 참석자들은 광장 한편에 있는 정류장에서 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는 추기경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교종은 추기경 시절에 늘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베르골료 추기경은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고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황'으로 선출된 뒤에 로마를 떠나 방문한 첫순방지인 람페두사에 갈 때에도 현지인이 20년 가까이 타고 다녔던 피아트사의 오프로드 자동차인 '캄파뇰라'를 빌려타고 갔습니다. 바티칸 안에서도 교황청이 제공하는 고급승용차를 마다하고 준중형 자동차인 포드 '포커스'를 손수 몰고 다녔습니다. 작년 9월에는 어느 이탈리아 신부가 교종에게 20년이 넘은 '르노 4' 중고차를 선물했습니다. 이 차량은 교종이 아르헨티나에서 사용하던 차량과 같은 종류입니다.

교종은 2013년 7월 6일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젊은 사제와 수련 수사, 수녀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급 승용차를 사지 말라고 권고한 적도 있습니다. 교종은 "자동차는 많은 일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하지만 최신식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제나 수녀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교종은 "내 말을 듣고, 아마 여러분은 '그럼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합니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는데, "부디 좀 더 소박한 차를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덧붙여 교종은 "만일 화려한 자동차가 좋다면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교종의 인기비결은 소박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

교종은 방한 첫날 한국교회 주교단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교회의 중산층화를 꼬집으며, "부유한 공동체들,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들"을 질책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들이 누리는 생활양식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그들 공동체에 들어가기를 꺼리게끔 하였고 가난한 이들은 그런 공동체에서 편안하게 느끼지 못했습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혹시 한국교회의 많은 주교들과 사제들도 그들이 누리는 편안한 생활양식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번에 한국 주교들이 상용하고 있는 승용차를 알아보니, 대부분이 '체어맨'과 'TG그랜저', '오피러스'와 'NF소나타'더군요. 정진석 추기경은 '제네시스'고요. 일부 네티즌들은 "주교님들은 아직 '쏘울'(soul, 영혼)이 없으신가요?"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이 고령이신 주교님들께서 장거리 운행을 자주 하셔야 하는 형편이라면, 물론 좀 더 편안한 차량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개 교구 안에서 이따금 단거리 운행을 하고 계시다면 굳이 고급승용차가 필요할지 다시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번 교종의 방한 기간 중에 가톨릭신자들 뿐 아니라 온 국민이 교종의 남다른 소박함에 놀라고 기뻐했습니다. 특별히 세월호 유족들처럼 슬픔에 젖어 있는 분들을 위로해 주셔서 더욱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신문방송에서는 프란치스코 교종을 '나이 많은 아이돌'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교종의 인기 비결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소박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 때문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와 맺은 약속조차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지키는 분명함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인기만큼 이번 교황 방한으로 가톨릭 교세가 크게 늘어날 것을 전망하는 이들도 있고, 번영신학에 식상한 개신교 신자들이 대거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가톨릭교회가 주목받게 된 것은 순전히 프란치스코 교종 개인 때문이지 한국 교회가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국교회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거듭 호소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에서 너무 멀리 가 있습니다. 어쩌면 중산층화 된 한국교회에서 교종은 홀로 외롭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음'을 외치는 예언자가 되셨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한국교회 주교님들이 프란치스코 교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길 간청합니다. 그분이 겸손하여 가난한 이들의 손을 잡으면 우리 주교님들도 한국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숨죽이며 흐느끼는 슬픔에 민감해지시기를 원합니다. 교종께서 의전차량에서 내려 단원고 유민의 아빠의 편지를 주머니에 소중히 간직하실 때, 우리 주교님들도 승용차에서 내려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달려가기를 청합니다. 주교님들이 먼저 청빈하고 소박한 삶으로 모범을 보이시면, 사제 공동체가 화답하고, 신자들이 교회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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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입니다.



태그:#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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