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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나라 이탈리아에서도 동성커플이 여느 이성부부와 똑같은 법적 권리를 갖게 될 전망이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 위키피디아 공동저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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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마테오 렌치(39·민주당) 총리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오는 9월 국회를 통과하게 될 두 가지 입법계획안을 발표했다. 그것은 바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고용정책과 동성커플들의 시민결합제도다. 렌치 총리는 이미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이와 같은 구상안을 갖고 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해 대다수 이탈리아 국민들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시기는 적절하다'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지난해 12월 민주당 당내 경선(투표율 68%)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지난 2월 24일 총리가 된 그는 취임 직후 이탈리아 선거법과 헌법을 고쳐 의원 수를 줄였다. 또 이탈리아 GDP의 약 10%를 차지하는 마피아의 불법사업을 막는 마피아퇴치를 공식 선언하는 등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신세대 정치인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렌치 총리는 친 EU성향의 중도좌파 민주당의 리더로서 성장 중심의 과감한 정책들을 실행하는 중인데 이렇듯 의미 있는 사회개혁안들 중에는 동성커플들의 권리보장도 포함되어있다. 사실 동성커플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정책이 채택되기까지, 주변 유럽 국가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한 몫 했다.

동성부부도 이성부부와 똑같은 법적 권리 갖게돼

동성커플들에 대한 권리 보장에 나선 첫 번째 유럽 국가는 네덜란드(2001년)다. 당시 네덜란드 국민 90% 이상이 동성결혼에 찬성했다. 이후 벨기에(2003), 스페인(2005), 노르웨이(2008), 스웨덴(2009), 아이슬란드(2010), 포르투갈(2010), 덴마크(2012), 프랑스(2013), 영국(2013), 룩셈부르크(2014) 등이 이미 '동성결혼 허용법안(입양권까지를 포함)'을 통과시켰다.

그 외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아일랜드, 헝가리, 리히텐슈타인 등이 이탈리아와 함께 올해 내로 동성결혼 등에 대한 '시민결합제도 입법안'을 통과시키려 준비 중이다. 물론 세계적으로는 이미 캐나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과 브라질의 특정 주들이 벌써 동성결혼 입법화를 실행했다.

'동성결혼 입법안'이 통과된 국가들에서는 동성부부들도 이성부부들과 똑같은 법적권리를 갖고 결혼은 물론 자녀도 입양해 키울 수 있다. 반면 '시민결합제도 입법안'은 동성결혼 당사자들의 법적 혼인 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권리와 상속, 이혼 등의 모든 법적 이익을 보장하지만, 입양 권리는 제한한다(현재 이에 대해선 동성애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찬성쪽은 한 가지씩 실천하자는 입장이고, 반대쪽은 입양권 빠진 결혼 어설픈 제도란 입장이다).

9월 이탈리아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이 법안은 '시민결합제도'에 포함된 동성 결혼안이다. 특히 이 법안에는 그동안 법적 혼인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산분할 등을 요구하지 못했던 사실혼 및 그에 준하는 이성커플(약혼 및 장기간의 연애관계)도 모두 구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보수적인 이탈리아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200여명이 동성애 혐오범죄건으로 살해 및 고의적 폭행을 당해왔다. 천재 영화감독으로 알려진 파졸리니 감독(1922~1975) 역시 동성애 혐오자로부터 살해당했으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해 슬며시 덮였다. 이후 이 일은 1998년 사건 미해결처리로 마무리됐지만, 몇 년 전 그가 살해됐음이 공식 발표되기도 했다. 그만큼 이탈리아에서 동성애를 인정받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오래 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이탈리아 사회 분위기

동성애가 이탈리아 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사례는 '알프레도 오르만도 분신 사건'이다. 동성애 작가였던 그는 1998년 1월 13일 로마 교황청 베드로광장에서 온몸에 가솔린을 부은 뒤 불을 붙여 분신 시위를 하다 결국 사망했다. 이후 동성애 단체들이 시위나 행진 등을 기획했지만, 사회적으로 큰 공감대는 형성되지 못했다. 2006년에는 민주당 대표였던 프로디가 동성결혼법안을 추진하려 했으나, 역시 가톨릭교회의 반대로 좌절됐다.

그러나 실제 이탈리아 사회 분위기는 오래 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부감 없이 동성애자들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역사에 기록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카라바지오 등의 이탈리아 천재 예술가들이 동성애자였음을 수긍하고 인정했다. 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인사들(국회의원, 언론인, 스포츠선수, 디자이너, 도지사, 교수, 사제)이 생기면서 동성애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정당들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 외국인과 소수 이민자들,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던 북부연합당 역시 동성법에 찬성했다.

하지만 동성애 관련 가장 인상 깊은 행보를 보인 건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지난해 9월 교황은 사제, 수녀들에게 향후 사목방안지침을 전하던 중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이라는 잣대로 이미 아픔을 당하고 있는 이혼자들, 동성커플들을 교회가 거부한다는 건 이들에게 두 번 세 번의 아픔과 가해를 행하는 것'이라는 차원의 발언을 했다. 교회법 이전에, 인간본연의 양심으로 이들을 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관련기사 : '노숙인들과 생일파티한 교황, 그 이유는...').

이외에도 이탈리아 사회 내 소소한 변화 또한 주목할 만하다. 지난 2월 보수적인 역사의 도시 베네치아를 기점으로 이탈리아 북부도시들은 일제히 학생 신상정보 카드에서 부모 성별을 적는 란은 없애고 부모 숫자만 적게 했다. 이는 동성부모나 한부모, 조부모 위탁가정 아이들이 위축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탈리아 법원, 동성애 비하 발언 변호사에 벌금형

사실 북부지방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동성부모 및 결혼 등에 관한 교육용 시청각교재가 채택되었고 자연스레 그러한 교육이 이뤄져왔다. 따라서 이번 부모란 성별 미기입은 너무 뒤늦은 안이한 변화였기에, 이것을 성토하는 시민단체 학부들이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최근 당시 시위에 나섰던 부모 중 한 명인 파브리치오 파도안(39)씨는 "다르다는 건 그냥 단지 다를 뿐, 틀린 게 아니다"라며 "난 내 아이들이 차별과 편견에 물들어 뒤틀린 가치관으로 자라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엔 동성커플 비하 발언을 한 정치인들이 정식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이런 변화를 재빨리 눈치 챈 정치인들은 아예 동성단체와 협회에 평생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는데, 적극찬성인 정치인 중 대표적인 사람이 베를루스코니(전 총리)와 그의 파트너인 프란체스카다.

반면 편견적 발언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예도 있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6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법원은 지난해 10월 16일 한 라디오방송(Radio 24) 대담프로에 출연해 동성커플 및 합법적 결혼에 대해 '자연과 우주, 인류의 법칙에 위배된다, 나는 이들이 싫다'라고 발언한 카를로 타오르미나 변호사(전 베를루스코니 총리 집권당시 당대변인 역임)에게 사회노동 봉사와 함께 1만 유로(한화 1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더불어 재판에 쓰인 일체의 경비는 물론 공개 사과문 게재, 일정기간의 변호사 직무정지 등도 선고했다. 이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 발언이 법적인 처벌과 제재를 받게 된 경우며 그 처벌대상자는 한때 집권여당에서 정치활동을 했던 유명 변호사였기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렇듯 동성애에 대한 이탈리아의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9월로 예정돼 있는 국회 입법안 통과는 더욱 확실시 되고 있다. 사실 이런 변화는 한 순간 이뤄지지 않았다.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곳곳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한 방울, 한 방울 땀을 흘리며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탈리아 교육 시민단체들은 신학적, 사회적, 도덕적으로 동성결혼과 자녀입양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 자료물을 배포해왔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등은 다른 여느 시민들처럼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사회의 가치 있는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아야한다. 그들의 혼인관계 및 그것의 권리와 의무에서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권리, 의무와 존중을 받아야만 한다." - (2010, 영국왕실 정신과 학회 일동 선언문)

"연령, 인종, 성, 종교, 사회지위, 경제적 상황 등으로 인해 사람을 차별함은 상대에게 행할 수 있는 가장 악한 행위 중 하나에 속한다. 이것으로 상대가 받게 되는 마음의 상처는 육체적인 폭력과 동등하며 그이상의 문제를 야기키도 한다. 차별로 인해 상대가 누려야할 권리, 이익 등을 교묘히 포기하게 하거나 제외시킴은 인간의 사악함이며 사회악을 조성한다. 따라서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불평등한 차별은 없어져야만 한다." - (2004. 미국 심리학회 선언문)

"25년간의 학회보고에 따르면 동성부부에게서 자란 아동이나 이성부부에게서 자란 아동이나 차이점은 전혀 없다. 또한 아이들은 한부모 슬하에서 자라도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양심적인 가치관과 교육관으로 일관되게 아이들을 양육하는 성인이라면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이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성커플들도 여느 부모들처럼 훌륭하게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걸 밝히는 바이다." (2006. 미국 소아과 학회 선언문)


태그:#이탈리아, #동성애, #시민결합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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