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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상 속 사회적인 성(Gender)', 인도의 하이데라바드 시에서 8월 18일부터 5일간 제 12회 '세계여성학대회'가 열렸다. '유엔 여성총회'라는 별칭이 붙은 이 행사는 지난 2005년 한국에서 ‘화통’을 주제로 개최된 바 있다. 주요 의제는 성차별을 비롯해 식민지주의, 구조적 빈곤, 전쟁 문제 등 여러 종류의 억압·불평등 등이다. <오마이뉴스>는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는 한국 여성들의 삶을 '쾌락', '관리', '파괴'라는 주제로 풀어봤다. [편집자말]
"야한 동영상 나눔 합니다. 10명까지만!"

회원 수가 약 12만 명인 한 여성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은 매주 금요일 저녁만 되면 분주하다. "약속이 있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취소해서 할 일이 없다", "시험기간이라 불금에도 놀러 나갈 수가 없다"며 심심함을 토로하는 회원들에게 야한 동영상(아래 야동)을 공유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선착순으로 야동을 보내주기 때문에 빠른 댓글은 필수다. 물론 야동을 받을 이메일 주소만 적으면 된다.

야동, 웹툰, 성인소설 등 성인콘텐츠를 소비하고, 적극적으로 피임을 하며 성생활을 즐기는, 성에 능동적인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성인물을 보는 여자"는 아직 낯설다. 여전히 피임을 위한 콘돔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는 "가부장적인 사회 질서는 여성에게는 '순결'을 강조하며 남성과는 다른 성 규범을 적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왜 남성들은 성에 적극적인 여성을 꺼리는가?

최근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성인용 유료 웹툰
 최근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성인용 유료 웹툰
ⓒ 이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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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야동은 이미 상당한 여성 마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전 세계 포르노(야동)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탑텐리뷰스) 결과, 포르노 소비자 중 여성이 약 30%를 차지했다. <워싱턴타임스>는 지난 2010년 7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전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포르노를 소비하는 것은 사회적 익명성과, 신체적 안전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여성들이 점차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야동뿐만 아니라 성인만화, 성인소설, 웹툰(인터넷 만화) 등 성인 콘텐츠를 소비하는 여성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교보문고의 로맨스 소설 베스트셀러 20권 중 7권이 성인 여성들을 겨냥한 19금 소설이었다. 20~30대 성인 여성들이 주로 찾는 인터넷 사이트의 '나쁜 상사'라는 웹툰은 1년 동안 약 2억8000여만 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야동을 처음 접하고 이제는 취미 삼아 즐기는 수준까지 되었다는 오아무개(25)씨에게 '왜 야동을 보느냐'고 물었다. 오씨는 "대학생이 되고나서 호기심에 야동을 봤다"며 "처음에는 너무 낯설었지만 몇 번 보다보니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주변 여자 친구들도 야동을 보느냐'고 물었더니 "자주 보는 친구도 꽤 있고, 전혀 보지 않는 친구도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대부분의 야동이 남성 시청자 위주라 가끔 너무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면 보기에 불편하다"고 말했다.

반면 야동을 소비하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시각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직장인 남성인 정아무개씨는 '여성들이 성인물을 즐겨 보는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여자들은 그런 것 안 보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요즘 취미로 야동을 보는 여성도 많다'는 기자의 말에 정씨는 "여자도 성욕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알지만, 내 여자친구는 그런 걸 안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야동을 남성만 보느냐, 여성도 보느냐의 문제를 떠나, 야동 자체가 갖는 폭력성과 성차별성은 문제점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관계자는 "여성의 성적 욕망이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포르노(야동)는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시각에서 구성되어 있고 여성다움, 남성다움 등의 성역할을 공고화하는 문제가 있어 긍정적으로 보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콘돔 사는 여자

한 대학가 앞의 드러그스토어(의약품, 화장품 판매점)에 20여종의 콘돔이 구비되어 있다.
 한 대학가 앞의 드러그스토어(의약품, 화장품 판매점)에 20여종의 콘돔이 구비되어 있다.
ⓒ 이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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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에게 피임은 상식이지만, 여전히 콘돔은 '남자가 준비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25세 남성인 이아무개씨는 "콘돔은 제가 직접 준비하는데, 만약에 여자친구가 먼저 콘돔을 사오면 왠지 싫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 이유에 대해 "왠지 민망하고, 너무 (여자친구가) 적극적인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성들이 직접 콘돔을 구매하거나 준비하는 것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30대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대학가 앞 드러그스토어(의약품, 화장품 판매점)에는 적게는 5종, 많게는 20여 종의 콘돔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홍익대와 이화여대 앞에 있는 한 콘돔 판매 전문점은 투명한 유리창과 귀여운 캐릭터로 밝은 분위기를 연출해, 젊은 여성들과 커플들이 자주 찾는다.

한 대학가 앞의 콘돔 전문점
 한 대학가 앞의 콘돔 전문점
ⓒ 이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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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아무개(대학생)씨는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에 늘 자신이 먼저 콘돔을 준비한다. 황씨는 "콘돔을 미리 사두면 피임을 하지 못하는 돌발적인 변수를 피할 수 있고, 게다가 내 취향에 맞는 콘돔을 고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황씨는 그러나 "편의점에서 양 손에 콘돔을 들고 고르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나를 쳐다봐서 짜증이 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순결을 강조하는 사회 구조가 여성에게 '수동적인 성' 요구"

'결혼제도와 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쓴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에 따르면, '순결 이념'은 여성을 순결한 여성(성녀)과 순결하지 않은 여성(창녀)으로 나눠 여성의 행동에 대해서 윤리적인 잣대를 적용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순결 이념은 여성에게 육체적 순결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규범의 의미로도 작용한다.

장필화 교수는 논문에서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구조 속에서 사회는 여성에게 성에 수동적일 것을 요구해왔다"며 "여성의 성적 수동성은 단지 성관계 행위에서의 수동성뿐만 아니라 피임, 성적 욕구 표현이나 쾌락 추구의 억제, 결과적으로 성적 자율성의 결여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성에 적극적인 여성을 꺼리는 남성들의 태도는 여성들에게 순결을 강조하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그러나 "최근 미디어가 여성의 성적 적극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여성의 성적 적극성이 여성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오로지 남성의 성적 쾌락을 위해 요구되는 성 파트너로서의 역할이라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여성의 성에 대한 통제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신주진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미디어에서 여성의 성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이후 성에 대한 금기들이 많이 깨졌고, 특히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순결이데올로기가 약화되었다"고 설명했다.

신주진 연구원은 이어 "그러나 현실에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억압이나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여성적이어야 하고 남성은 남성적이어야 한다는 고정적인 관습들이 재생산되고 있다"며 "이런 방식은 개인의 다양한 성정체성을 억압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윤소 기자는 <오마이뉴스> 20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성,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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