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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구속된 다섯 명의 가해자 중 유일한 간부인 유아무개 하사에 대해 당초 헌병이 '상해치사 교사' 혐의를 적용했던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작성 '제28사단 현장조사결과보고 및 향후계획' 문서에 따르면 "4명에 병사에 대해 상해치사, 1명의 병사에게 단순 폭행, 의무지원관(유 하사)에게 상해치사 교사 및 방조,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송치한 상태"라고 돼 있다.

하지만 헌병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28사단 보통검찰부는 유 하사를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폭행, 폭행방조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유 하사에 대해 당초 헌병이 적용했던 '상해치사 교사' 혐의가 빠진 것이다.

법적으로 교사(敎唆)란 범죄의 의사가 없는 타인으로 하여금 범죄를 결의해 실행하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타인에게 범죄를 교사한 교사범은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이 병장 "유 하사가 '윤 일병 교육하라'고 지시"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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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수사기록에 따르면 유 하사가 윤 일병에 대한 가혹행위를 묵인한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구타를 부추긴 정황이 나온다.

육군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의 주범 이아무개 병장은 사건 다음날 6군단 헌병대에서 이뤄진 첫 피의자 신문에서 "처음부터 유 하사로부터 '윤 일병을 교육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라고 진술했다.

이 병장은 "평소 유 하사가 '선임병 후임병간에는 구타가 있어야 된다'면서 '구타를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라면서 "윤 일병이 쓰러지기 이틀 전 유 하사에게 스탠드로 폭행당하는 것을 보고 교육이 잘 되지 않으면 저와 의무병들도 폭행을 당할 것 같아서 때렸다"라고 주장했다.

유 하사의 진술조서를 보면 자신이 폭행을 묵인한 이유에 대해 "폭행 정도가 심한 상황으로 판단되지 않았고, 윤 일병도 잘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선임병들에게 야단맞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나와 있다.

유 하사는 또 "의무병과만 근무하는 우리 의무대가 서로 단결하기를 바랐다"라면서 "의무병들만 생활하는 곳이므로 기강 확립을 위해서는 선후임병간의 질책, 야단과 경미한 구타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의무반 관리 책임자였던 유 하사는 자신보다 3살이 많은 이 병장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함께 성매매까지 하는 등 같이 어울려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간부와 병사라는 관계가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유 하사가 구타를 해서라도 윤 일병을 교육시키라고 했다'는 이 병장의 진술은 두 사람 사이에 지시-복종 관계가 이미 무너져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선뜻 신뢰하기 어렵다.

왜 헌병은 '상해치사 교사'로 판단했을까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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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1차 수사를 담당한 헌병은 어떤 이유에서 '유 하사가 폭행으로 윤 일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행위'(상해치사)를 '지시 혹은 사주'(교사)한 것으로 판단했을까. 지금까지 드러난 수사기록으로는 그 이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군 수사기록을 다 살펴봐도 유 하사의 사건 당일 행적 등은 잘 나타나 있지 않다.

인권위가 해당부대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한 시점이 지난 4월 14~15일로 사건이 일어난 뒤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헌병은 가해자 진술, 목격자 증언 등을 통해 유 하사와 이 병장 사이의 특수관계를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헌병이 당초 왜 유 하사를 상해치사 교사범으로 판단했는지에 대한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군 법무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1차 수사를 담당한 헌병과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군 검찰관의 법 적용이 달라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상해치사 교사 혐의를 적용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어서, 당초 헌병이 왜 이 혐의를 적용하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 "병사들 사이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간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국가와 군의 관리책임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태그:#윤일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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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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