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M, <엔터테이너스> 사진 = CJ E&M

CJ E&M, <엔터테이너스> 사진 = CJ E&M ⓒ CJ E&M


"모방자들은 총성 한 발에 산산이 흩어진다." 프랑스의 화가이자 미술이론가인 아메데 오장팡(Amédée Ozenfant)이 한 말이다. 그러나 구입한 탄알이 불량품이 아니고서야 한 발에 모방자가 끄떡없다면 문제는 둘 중 한가지다. 그들이 모방자가 아니거나, 그들을 모방자로 여긴 우리의 시선이 오류였거나.

Mnet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엔터테이너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바닥이 원래 이래. 살려고 할 수 없이 손도 잡고 웃음도 파는 거야." 드라마에는 연예계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권모술수가 보는 시청자가 가히 피곤할 정도로 쏟아진다. 내러티브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업계' 사람들만 아는 사정이고, 그것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지 또한 보는 시청자들의 몫이지만, 우리가 정작 그 속에서 봐야할 것은 '아이돌'이라는 연예계 시스템이다.

아이돌은 이미 플랫폼이다. 그들의 이름을 두고 가수의 전제가 되어있지 않다느니, 새로운 세대가 요구하는 형태의 종합적 퍼포먼스 아티스트라니 하며 존재 가치를 논하는 것은 애석하지만 이미 과거사, 시의 부적절한 논쟁이다. 아이돌은 마치 상장된 주식과도 같다. 혹은 하나의 사업체, 하나, 여섯 많게는 열 몇의 입간판인 셈이다.

아이돌이라는 문화적 폭력

우리는 단순히 잘생기고 다재다능한 사람들을 묶어 아이돌이라 부르지 않는다. 혼자 활동하는 아이돌도 있고 그룹 활동을 해도 아이돌이 아닌 팀들도 있다. 솔직히 이런 식의 단편적인 구분 없이도 우리는 그들이 브라운관 속에서 파는 웃음의 성질만 봐도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다.

아이돌이라는 명칭은 분명 산업 용어 더 좁게는 상업 용어다. 즉 특정한 형태의 시스템을 지칭하는 말이다. 문화 산업이라는 모호한 분류 속에서 그들을 대중예술 행위의 한 종류로 바라보는 것은 목숨 걸고 뛰어다니는 매니저들의 땀에 비춰 봤을 때 조금은 이상적이고 나태한 시선이다.

그들 뒤로는 프로덕션, 기획사와 같은 일련의 '팀'이 있다. 그 '팀'이 최선을 다해 '우상'을 수면으로 올리면 그들은 다시 '팀'을 존속케 한다. 결국 상호 유지보수의 역할을 하고 이 메커니즘은 최종적으로 어쨌든 수익을 내야한다는 문제로 나아간다.

한 아이돌의 성공은 중소기업의 대박 아이템, 테마주의 주가 폭등과 같은 속성의 것이다. 물론 누구라도 전면으로 그 '팀'을 비난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확장을 바라는 어느 자선 사업가가 아니고서야 종국엔 노력과 시간에 대한 대가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과정이 어찌되었든 현재 2014년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주의 절반 이상 이뤄지는 음악 프로들의 라인업 리스트는 과반수가 아이돌 이름이다. 이들을 앞서 말한 주식으로 본다면 현재 코스닥이 상당 수준의 호황을 드러내고 있음 역시 명확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적자생존, 자연선택과 같은 결과론적 시각으로 간편하게 정리되어선 안 되지 싶은 최소한의 영역이 바로 문화고 대중 예술이다. 즉 대중에게 위안이 되는 예술이며, 이 말은 곧 대형 기획사들이 제한된 전파와 음원 사이트, 음반 판매대에 자본을 앞세운 무차별적 노출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문화생활 영위를 막는 권리침해, 대중에 대한 폭력을 행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플랫폼

 소유 & 매드클라운의 '착해 빠졌어' 앨범 재킷.

소유 & 매드클라운의 '착해 빠졌어' 앨범 재킷. ⓒ 스타쉽Ent


즉, 지금부터의 비인기, 마이너, 소자본 예술에 대한 지지와 관심은 더 이상 문화가 획일화되거나 초라해지지 않겠다는 배수진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거부하는 과정에서 아이돌은 이미 존재를 전제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는 가령 인기 아이돌 멤버와 콜라보레이션(협업)하는 언더그라운드 랩퍼, 기획사 히트곡 작곡가와 인디밴드의 공동 앨범 제작과 같이 이미 자리 잡은 시스템을 영리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고도로 상업화된 시스템을 적대시하는 시선이 아닌 그것을 영리하게 이용해 건강한 형태로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전략을 찾아야 한다.

가녀린 마네킹들의 시대를 거쳐 최근엔 실력까지 겸비한 그룹들이 등장하고 있다. 즉 저급한 수준의 문화 콘텐츠에 전파라는 공공재를 빼앗겼다는 억울함,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시기에 다다른 것이다. 아이돌이라는 단어는 주식, 사업 수완과 같이 긍정 또는 부정의 성질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에 관해 오래 전부터 가지고온 편견을 벗고 이젠 그저 무기물로서 인식하는 세련된 의식을 지녀야 한다.

어쩌면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이돌 위에 다양한 형태의 문화가 얹히면 언젠가 우리의 멋진 선남선녀 친구들이 미국 게릴라걸스나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s) 멤버들과 같은 컨템퍼러리 아티스트 그룹이 되고 그들의 뮤직비디오가 일련의 행위예술 퍼포먼스 아트가 되는 그런 아름다운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아이돌은 이미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아이돌 소유 매드클라운 엔터테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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