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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검찰은 새벽 6시부터 움직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사관 10명은 은밀히 법원에서 발부한 심문용 구인영장을 들고 조현룡(69) 새누리당 의원의 아들과 딸 집으로 급파됐다. 몇 시간 동안 주변에서 대기하며 상황을 주시하던 수사관들은 오전 9시가 넘어 해당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조 의원은 없었다.

사상 초유의 현역 국회의원 동시다발 강제구인이 이루어진 이날, TV 카메라는 여의도 의원회관을 비추고 있었지만 사실 강제구인의 관건은 그곳이 아니었다. 전날 밤 갑자기 조 의원의 행적에 이상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별도 수사관 10명 새벽부터 급파했지만 '허탕'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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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밤 늦게 갑자기 조 의원이 사용중인 대포폰(다른 사람 명의로 개설된 핸드폰)이 꺼졌다. 조 의원은 최근 검찰 수사를 받은 이후 대포폰을 마련해 사용중이었고, 이를 검찰이 파악해 추적중이었다. 조 의원의 영장실질심사 기일은 줄줄이 잡힌 의원들 중에서도 가장 빠른 21일 오전 9시30분(서울중앙지법 윤강열 영장전담 부장판사)이었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새벽부터 움직였지만, 검찰은 조 의원을 찾지 못했다. 의심되는 다른 장소도 뒤졌지만 허사였다. 이제 관건은 여의도였다.

의원회관에는 특수2부 검사 3명과 수사관 30명이 동원됐다. 오전 9시10분께 도착해 9시 20분께부터 건물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검찰의 움직임이 언론에 포착돼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검찰은 904호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62) 의원 방에서 신 의원이 있는 것을 확인했지만, 나머지 의원들은 방에 없었다. 검찰은 의원회관의 CCTV도 뒤졌다.

국회의원 입장에서 검찰의 강제구인 절차에 의해 끌려가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신 의원을 비롯해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재윤(49), 신계륜(60) 의원은 속속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때가 대략 오후 2시 정도였다.

이제 새누리당 의원 2명(조현룡, 박상은)이 문제였다. 검찰로서는 자칫 형평성과 편파성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연루된 혐의로 봐도 입법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야당 의원 세 명은 액수가 1500만 원에서 5000만 원대지만, 새누리당의 조 의원(철도비리 의혹)과 박 의원(해운비리 의혹)은 각각 1억6천만 원과 10억여 원 규모다.

검찰은 공개적으로 "도주"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미 출석이 기정사실화된 야당 의원들을 지렛대로 삼아 '야당도 다 나왔는데 여당은 왜 안나오냐'는 작전도 덧붙였다.

오후 3시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지금 도피중인 조 의원은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조 의원이) 야당 의원들이 출석하면 자기도 출석하겠다는 입장이었으니 자진 출석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인천지검도 "유감스럽게도 박상은 의원은 일방적으로 법원에 심문기일연기 통보를 한 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불응하고 도주했다"며 "박 의원의 핸드폰을 갖고 소재 수사에 혼선을 주는 등 박 의원의 도주를 도운 사람에 대하여는 모두 범인도피로 엄단하겠다"고 압박했다.

야당 세명 지렛대로 삼아 여당 두명 압박

검찰이 구인장이 발부된 여야 의원들에 대해 강제구인을 시도한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실 앞에 도착한 검찰 관계자들이 "구인장을 집행하러 왔다"며 의원실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검찰, 신학용 의원 강제구인 시도 검찰이 구인장이 발부된 여야 의원들에 대해 강제구인을 시도한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실 앞에 도착한 검찰 관계자들이 "구인장을 집행하러 왔다"며 의원실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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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얼마 후인 3시 19분께 행방불명 상태였던 조 의원이 자진해서 나오겠다는 의사를 서울중앙지검에 전해왔고, 오후 3시 42분께 박 의원 역시 인천지검에 출두하겠다고 연락했다.

오전까지만 해도 서면 또는 구두로 전원 연기 의사를 밝히며 '임시국회 회기가 열릴 때까지 하루만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던 의원들 5명 전원을 영장실질심사 법정에 세우는 데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오전 9시30분 예정이었던 조 의원의 영장실질심사는 약 10시간 30분 후인 오후 8시 열렸다. 오전 11시 예정이었던 신계륜 의원의 심사는 오후 6시에 서울지법에서, 오후 3시에 예정됐던 박상은 의원의 심사 역시 오후 6시에 인천지법에서 열렸다. 김재윤 의원과 신학용 의원은 예정대로 오후 2시와 4시에 심사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검찰은 구속 여부와는 별개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발부된 국회의원의 영장실질심사 구인장 집행에 있어서 중요한 선례를 만들었다.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이 엄정하게 집행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었고, 그렇게 집행하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말했다.


태그:#조현룡, #박상은, #검찰, #영장실질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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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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