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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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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다."

정국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길 때마다 청와대는 어김없이 발을 뺐다. 정치적 갈등의 진원지가 청와대, 즉 박근혜 대통령인 경우에 특히 더 청와대는 '여야가 알아서 하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정쟁에서 초월해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며 근엄한 훈수를 두는 모습을 연출하는데 만 골몰하는 모양새였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그랬다. 기초공천 폐지 문제가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을 때 청와대는 "국회에서 여야가 논의할 문제"라며 침묵했다. 기초공천 폐지는 대선 공약이었음에도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박 대통령은 공약 번복에 대해 어떤 설명도 내놓지 않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대신 자신의 약속 파기에 대한 책임을 국회에 떠넘겼다. 

특별법은 대통령의 약속인데... "여야가 처리할 할 일"

유가족들의 반발로 꽉 막힌 세월호 특별법 처리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에 유가족들의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거부하고, 국회가 정치공백 상태로 빠져들고 있지만 청와대는 지금까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해 왔다.

이런 청와대의 태도가 앞으로 바뀔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기자들과 만나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라며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박 대통령이 직접 내놓은 약속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16일 세월희 희생자 가족대표 17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난 자리에서, 또 사흘 후 대국민 담회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유가족들의 뜻이 반영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5월 16일 가족 대표들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별법은 저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검·경 수사 외에 진상규명을 하고 특검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정부패를 원천 방지할 수 있는 공직자윤리법도, 부패방지법도 다 이번에 통과가 돼서 그런 기반을 닦아놓고, 이걸 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투명하게 그 결과를 유족 여러분한테 공개를 하고, 거기에 대해서 유족 여러분이 이건 좀 부족하다든지, 이건 어떻게 된 건지 그런 게 있으실 겁니다. 그런 거는 항상 어떤 통로를 통해서 계속 여러분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조사하는 과정이라든가 이걸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 의견이 항상 반영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해 나가겠습니다."

다시 만나자고 해놓고... 39일째 단식 중인 '유민 아빠' 외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6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들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6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들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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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또 "유가족 뜻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며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도 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진상 규명에 있어서 유족 여러분들의 여한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 거기서부터 깊은 상처 치유가 시작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며 "오늘 다 이야기를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유가족 뜻이) 계속 반영이 되고, 투명하게 공개가 되느냐를 다시 의논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박 대통령과 유가족의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그 뒤로 박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 영접 행사에 초대된 유가족들을 스치듯 지나친 게 전부였다.

특히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39일째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청와대 민원실을 직접 방문해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지난 19일 자신의 대선 승리를 도운 새누리당 중앙위원 60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규모 오찬을 베푼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세세한 것 하나까지 '깨알 지시'를 내려왔던 박 대통령이지만, 선거가 모두 끝나자 대통령의 입에서 세월호 특별법은 사라졌다. 대통령이 약속한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난항을 겪으면서 국회 입법 활동이 꽉 막히게 됐음에도, 박 대통령은 규제 완화가 핵심인 경제 관련 법안 처리를 국회가 외면하고 있다며 도리어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 사정을 통해 야당 겁주기에 나섰다.

"대통령 약속 지켜졌는지 답하라"... 대답 없는 청와대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를 위한 단식 38일째인 19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대통령면담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영풍관으로 가려하자 경찰들이 통행을 막아 항의도중 지팡이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 "관광객보다 못한 국민이 유가족이다" 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를 위한 단식 38일째인 19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대통령면담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영풍관으로 가려하자 경찰들이 통행을 막아 항의도중 지팡이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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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20일 저녁 가족 총회를 마친 후 '대통령의 약속'을 언급했다. 유가족들은  "눈물로써 했던 대통령의 약속을 믿었지만 대통령을 만나고자 하는 가족들의 절규에 답하지 않고 청와대 2000미터 밖에서 가족들을 가로막음으로써 답했다"라며 "대통령과 청와대는 가족들을 직접 만나 지난 3개월 동안 대통령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답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만약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사과와 함께 즉각적인 약속 이행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동안 야당을 향해왔던 유가족들의 화살을 돌려 이제는 박 대통령과 여당을 정조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현재 야당은 여야 재합의안을 들고 유가족들을 만나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 있다. 원래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요구를 듣고 특별법 마련에 먼저 나서야 했던 건 야당이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이었다. 유가족들이 여당을 믿지 못하니 야당이 그 역할을 대신 했을 뿐이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말대로 이건 "새누리당이 부끄러워 해야 할 일"이다.

이제 청와대와 여당이 야당 뒤에 숨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릴 때가 됐다. 유가족들의 재합의안 거부로 진퇴양난에 빠진 새정치연합의 처지를 보면서 미소만 짓고 있는 것은 여당으로서 자격미달이다. 오히려 유가족들의 요구를 듣고 이해를 구하는 일은 여당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정상이다.

특히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자 유가족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박 대통령도 침묵을 깨야한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규제완화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는 국회가 아니라 대통령의 약속 위반이다. 집권 후 불통과 불신이라는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박 대통령이 부디 고질병인 '유체이탈'과 '책임 회피'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태그:#박근혜, #세월호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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