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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전 11시께, 한 달 만에 강정에 돌아온 문정현 신부가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미사를 준비하자 경찰 관계자가 공사 차량을 안내하며 이동선을 잡아주고 있다.
 21일 오전 11시께, 한 달 만에 강정에 돌아온 문정현 신부가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미사를 준비하자 경찰 관계자가 공사 차량을 안내하며 이동선을 잡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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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했던 4박5일 동안 한국은 더없이 행복했다. 사람들은 메시아를 만난 듯 저마다의 소원을 이야기했다. 소원은 곧 이뤄질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또 메시아의 손에 이끌린 듯 아프고 낮은 곳으로 눈을 돌렸다. 상처는 곧 치유될 것처럼 보였다.

교황은 바티칸시국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빠르게 생활과 일상으로 돌아왔다. 교황의 선한 눈에 기대어 기도했던 소원과 바람은 이뤄졌을까. 21일 유민이 아빠는 세월호 특볍법을 요구하며 쓰러진 채로 단식 39일째를 맞았고, 제주도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반대싸움 2654일째를 이어갔다.

문정현 신부는 한 달 만에 강정마을에 돌아왔다. 그동안 그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 머물렀다.

"또 일상으로 왔네. 한 달을 광화문에서 살았어. 그래도 마음은 여기 강정에 있었지. 밧줄이 양쪽에서 나를 끌어당겨. 세월호의 밧줄, 강정의 밧줄..."

문정현 신부 '고착' 시키는 경찰들

이날 오전 11시 사제복을 입은 문 신부는 여느 날처럼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정문에서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또 여느 날처럼 "업무방해 행위를 하고 있다"며 의자에 앉아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문 신부를 수차례에 걸쳐 들어서 옮기기를 반복했다. 이른바 '고착'이다.

제주해군기지 반대싸움 2654일째인 21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여느 때처럼 미사를 올리던 문정현 신부와 김성환 신부는 "공사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고착되기를 반복했다.
 제주해군기지 반대싸움 2654일째인 21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여느 때처럼 미사를 올리던 문정현 신부와 김성환 신부는 "공사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고착되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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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제주해군기지문제로 옥고를 치른 3명의 사제와 함께 예수회 공동체를 방문한 교황으로부터 "가장 힘든 일을 치러냈다"는 위로의 말을 들은 김성환 신부도 마찬가지. 김 신부는 "강정에 언제 돌아오셨냐"는 질문에 "해오던 일 계속 해야죠"하며 웃는다. 그리고 경찰로부터 수차례 고착을 당했다.

21일 강정마을 미사에서 강론을 한 홍석윤 신부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슬프고 힘들 때 포근히 웃어주고 기댈 수 있는 위로"라며 "다 같은 지도자인데 교황의 얼굴을 보면 위로가 되는데 다른 (한국 지도자의) 얼굴을 보면 왜 위로받지 못 하는가"라고 물었다.

홍 신부는 "교황은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았다, 주님을 모시며 교회에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것을 말했을 뿐"이라며 "그것은 바로 지금 고통받고 상처 당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오께, 미사를 마친 이들과 강정지킴이들이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평화의 띠' 잇기를 마치고 나서 '강정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경찰은 공사에 방해가 된다며 이를 제지했다. 여기저기서 경찰과 지킴이들 사이에 마찰을 발생했다. 비슷한 상황이 4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강정은 '잊혀진 마을'이 되고 있다.

같은 말을 하는데 교황은 '선한 목자', 문정현 신부는 '빨갱이'

그럼에도 마을 주민들과 강정지킴이들, 사제들은 '해군기지 반대싸움 2655일째'를 준비한다. 이들에게 교황의 한국 방문 전과 방문 이후는 어떻게 다를까.

21일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미사를 드리던 수녀와 신도를 경찰이 고착시키자 공사차량이 운행을 재개하고 있다.
 21일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미사를 드리던 수녀와 신도를 경찰이 고착시키자 공사차량이 운행을 재개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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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이라는 제도교회의 대표인 교황이 우리의 문제를 공감해주는 것만으로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다. 그동안 벽에 대고 외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잘못했을까' '우리가 문제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리가 부족하고 서툴기야 하겠지만 우리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교황은 밀양과 강정, 용산 그리고 쌍차와 세월호 등 아픔과 상처가 있는 곳을 보듬어주셨다. 물론 우리 주변에도 둘러보면 교황처럼 아픈 사람과 함께 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문정현 신부 같은 분들 말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들을 '종북좌파'라고 몰아세우지 않나."   

스스로를 '평신도'라고 부른 오두희씨의 말이다. 똑같은 상처와 아픔을 보듬는데 왜 교황의 말은 '선한 목자의 진리'가 되고, 문정현 신부의 말은 '빨갱이 신부의 선동'이 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이 답은 교황을 보낸 한국 사회가 스스로 해야 할 것 같다.

21일 경찰에 의해 수차례 고착을 당한 문정현 신부.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의 옆에 교황 프란치스코의 발언을 엮은 책이 놓여 있다.
 21일 경찰에 의해 수차례 고착을 당한 문정현 신부.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의 옆에 교황 프란치스코의 발언을 엮은 책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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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교황 한국 방문,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문정현 신부,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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