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추석 때면 언론에서는 '차례상 차리는 법'을 소개합니다. 제각각 차이가 있겠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넓은 상 위에 20여 가지가 넘는 음식이 올라 있는 푸짐한 상차림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전통 의례 전문가들은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는' 이런 차례상이 우리 전통에 맞지 않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명절 차례상의 비밀을 캐봅니다.

이 기사는 지난해 추석에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과거 기사를 다시 올리는 이유는 아직도 오해에서 비롯한 허례허식이 차례상에 많이 스며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차례상을 '전통에 맞게 차리'는 그날까지 <오마이뉴스>는 꾸준히 관심 두겠습니다. <편집자 말>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조상을 기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할 수 있죠, 불교면 불교식, 이슬람교면 이슬람식,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 드리면 되는거고. 각자 돌아가신 분들이 좋아할만한 음식 차려놓고 알아서 하면 됩니다. 그게 정말 제대로 된 전통이에요."

2014년 8월 17일 경기도 일산의 한 커피전문점. 그가 추석 차례상이 왜 맛이 없을 수밖에 없는지 '썰'을 풀기 시작하자 주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노트북 앞에 앉은 기자 등판에도 덩달아 눈길이 꽂혔다. '먹는 얘기' 전문가. 황교익 맛칼럼니스트다.

황씨는 한국인들이 추석을 상당히 오해한다고 설명했다. '홍동백서·어동육서·좌포우혜·조율이시'로 대표되는 요즘의 다섯 줄짜리 거대한 추석 차례상 역시 유교 전통과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통이라 주장할 근거가 희박한 음식으로 상을 차리면서, 그것도 맛 없는 것만 골라 올리는 현실을 다같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차례상 구성 집착말고 추석 왜 지내는지 생각해봐야"

오늘날 한국 가정에서 차리는 추석 차례상은 대체로 비슷하다. 맨 뒷줄에는 밥과 국, 떡, 송편이 놓인다. 맨 앞줄에는 유과·대추·밤·배·사과·곶감(또는 감) 등이 올라간다. 이 사이에 3종류의 부침개와 나물·탕·식혜·어포·생선·산적 등등을 추가하면 한 상이 차려진다.

다양한 식재료를 쓰다보니 금전 부담도 크다. 정부에서 견적을 낸 차례상은 매년 20만 원 안팎이지만 친지들이 모여 먹는 밥상까지 감안하면 실제 예산은 그 2~3배를 넘는다. 황씨는 "다같이 모여서 조상을 기억하며 제철 음식을 먹는다는 게 추석 차례상 취지인데 지금의 차례상은 그 취지에 전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 올해 추석상은 전통시장에서 하면 19만 3384원, 대형유통업체를 이용하면 27만 4753원 정도라고 한다.
"20만 원은 무슨. 우리 집만 해도 차례상 한 번 차리고 친지들 식사 한 번 하려면 40만 원은 우습게 넘어간다. 유교 전통에 따르면 차례상이 이렇게 화려하고 비쌀 이유가 없는데 취지에 안 맞는 식재료들이 껴 있어서 비싼거다."

- 어떤 품목들이 그런가.
"추석 차례상은 제철 음식을 조상신에게 올리는 거다. 그런데 막상 상차림을 보면 제철 음식이 거의 없다. 시금치는 겨울 채소라 추석 즈음에 나오는 건 맛이 맹탕이다. 곶감은 1월이나 되어야 나오고 대추, 밤도 11월 이후에나 나오니 차례상에 올라간 것은 작년 것이다.

고사리 역시 봄에 따서 말려둔 것을 쓴다. 여름까지 넘겼으니 향이 적을 수밖에 없고 도라지나 배추 역시 지금은 물맛이다. 7월~9월 조기는 살이 무르고 맛도 엉성하다. 진짜 맛 없는 것들만 올려놓고 먹는 셈이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그래도 전통 상차림 아닌가.
"그렇지가 않다. 차례상은 유교의 제사 예법에 따라 올리는 것인데, 제사 기본원칙을 정해놓은 <주자가례>를 보면 포·과·채 이런 식으로만 쓰여 있다. 구체적으로 사과·배·감 이렇게 안 써 있다. 그냥 과일을 올리면 되는거다. 차례상에 꼭 올라가는 사과, 배 같은 과일들은 전통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추석과는 절기도 맞지 않는 과일들이다."

- 사과·배는 추석 전에 햇과일이 출하되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추석 전에 출하되는 것들은 생장촉진제를 써서 인위적으로 빨리 키운 것들이다. 맛과 질이 떨어진다. 배가 특히 심한데 한국에서 주로 키우는 신고배는 추석 지나고 한 달쯤 있어야 익는다. 여러모로 제철 음식과는 거리가 멀다. 추석 '대목' 때문에 산업 구조 자체가 일그러진 셈이다." 

- 제철과일이란 어떤 걸 말하는건가.
"올해같은 경우는 노지수박, 포도, 복숭아 같은 과일들이 제철이다. 요즘 백도가 정말 맛있게 익을 때 아닌가. 민간에서는 복숭아가 귀신을 쫓는다고 해서 금기의식이 있는데 그건 유교의 금기가 아니라 민간의 금기다. 진짜 조상을 기리는 의도라면 돌아가시는 분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 우리 차례상이 잘못되어 있다는 건가.

"그렇다. 원래 제사, 차례는 양반들만 하던 거다. 구한말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양반이 아니었던 사람들도 제사를 지내게 됐는데 이런 사람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언론이나 국가에서 구체적으로 홍보했던 게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것들이다. 어느 책에도 이런 게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속담에도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쓸데없는 참견을 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라. 어떤 집은 '조율이시'가 맞다고 하고 어떤 집은 '조율시이'가 맞다고 하는데 배와 감을 어떤 순서로 놓는 게 조상을 기리는데 있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웃음)."

- 그렇다면 유교의 전통적인 추석 차례상은 어떻게 구성되나.
"추석 차례상에는 제철에 나는 음식 몇가지 올리면 족하다. 사과·배 안 올려도 된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조상을 기억하려는 마음이다. 차례상 구성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가 추석 명절을 왜 지내는지 그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전통 좋아하는 남자들 추석 제대로 하려면 여자들한테 명절 음식 시키면 안 된다."

- 여자들에게 음식을 시키면 안 된다니?
"조선시대 때 제사음식은 다 남자가 만들었다. 대신 차례에 여자들은 빠졌다. 그런데 지금은 명절 고생은 여자들이 다 하고 남자들은 차례상 앞에서 생색만 내지 않나. 이것도 근본을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풍경이다."

"남 쫓아가는 삶... 음식문화 안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황씨는 "추석은 그냥 밤에 달이 크게 뜨면서 가을이 시작되는 '놀기 좋은 날'"이라면서 "추석과 비슷한 중국의 중추절도 '그냥 즐기고 노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추석 차례상에 대해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유교국가도 아니고 먼저 세상을 떠난 조상들을 기리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국민이 매년 같은 차례상을 차리는 풍경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주체적으로 삶을 결정하기보다는 항상 집단이 요구하는 삶에 맞춰서 살아왔고 거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못사는 사람들일수록 이날만은 한 상 차려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그럼 추석은 뭐 하는 날인가.
"그냥 노는 날이다. 밤에 달도 크고 가을도 곧 시작되니 날씨도 좋다. 우리 민족은 전부터 노는 걸 좋아했지 않나. 중국의 중추절도 그냥 즐기고 노는 날이다. 추석이 뭐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나."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수확에 감사를 드리는 의미가 있지 않나.
"추석은 가을 수확물이 나오기 전이다. 한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건 쌀인데 쌀은 추석에 안나오지 않나. 추수감사절 의미를 찾자면 쌀 수확 이후에 명절을 잡아야지. 추석 차례상에 햅쌀을 놓으려면 아주 빨리 여무는 품종을 따로 심거나 덜 여문 이삭을 손으로 훑어내 쪄서 올려야 한다."

- 그러면 그냥 집집마다 알아서 조상을 기리고 친지끼리 재밌게 놀면 되나.
"그렇다. 추석에 조상을 기릴 때 집집마다 차례를 올리는 것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차례는 유교 전통인데 여기 해당되는 건 양반들 뿐이다. 조선시대 초기 양반은 사실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나머지 90%는 다른 방법을 써도 된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건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화다. 차례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 왜 전국민이 추석 때마다 동일한 차례상을 차리고 있다고 생각하나.
"역사적으로 우리는 근대 시민의식을 가졌던 적이 없다. 각 개개인이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없는거다. 항상 집단이 요구하는 삶에 맞춰서 살아왔고 그게 익숙하다. 남이 하는 것을 쫓아가는 삶. 그게 음식문화 안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추석에 차례 안 지내고 해외여행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요즘 명절 차례 안 지내고 다같이 외국 놀러나간다. 원래 풍습이나 문화라는 게 위에서부터 바뀌고 밑으로 서서히 내려간다. 추석·설 차례상에 대한 강박도 서민층에서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못사는 사람들일수록 이날 만은 한 상 차려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는 거다."

- 정부도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매년 추석상 지침을 발표한다.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금은 유교 사회도 아니고 한국은 국교가 없는 나라다. 유교국가가 아니면 유교식 버려도 된다. 그런데도 정부가 해마다 그 해의 추석상 견적을 공식 보도자료로 내놓는 것은 암묵적으로 '이렇게 상을 차리세요', '이렇게 안 차리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닐 수 있어'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 올해는 사과·배·밤·쇠고기 등 28개 품목 가격을 추석 보름전부터 점검하고 있다.
"그런 것 자체가 추석 차례상에 오를 수 있는 음식 품목을 한정하는 효과가 있다. 사과, 배 가격 관리한다고 하니까 사람들 뇌리에는 무의식적으로 '저건 차례상에 꼭 올라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철 과일 놓으면 되고 마음이 중요하다."

- 당신네 집은 어떻게 추석을 보내나.
"한국은 장손 중심의 사회다. 나는 집안에서 막내라 발언권이 약하다(웃음). 계속 얘기를 하고는 있지만 '옛날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손가락질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있다. '조상도 몰라보는 후레자식'이라는 손가락질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도 바꿔야하지 않나. 이번 추석이 내 삶이나 행동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댓글4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74kg. '밥값'하는 기자가 되기위해 오늘도 몸무게를 잽니다. 살찌지 않는 기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