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 얼간이 교사가 인도에 발을 딛다.
▲ 인도 배낭 여행의 시작 세 얼간이 교사가 인도에 발을 딛다.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인드라 간디 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나오는데, 의자에 앉아 있던 직원이 내 가방 뒤에 달린 작은 등산 컵을 만지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Cup!" 엉덩이를 흔들자 껍이 딸랑딸랑 한국 사찰의 고즈넉한 풍경소리를 울리며 잠든 공항을 깨웠다.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비해 인드라 간디 공항은 꽤 깔끔한 현대식 시설로 되어 있었는데,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실총을 들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만은 같은 풍경이었다. 왠지 정국이 불안정한 외국에서 군인을 보면 크게 죄 진 것도 없는데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만지고 용모를 정돈하게 된다. 이 인도 군인은 궁궐 앞의 해태처럼 눈을 부릅뜨고 '인도에 들어오려면 몸과 마음을 정제해야 해!'라고 호통치는 파수꾼이었다.

픽업을 나온 멀쑥한 인도 젊은이가 우리를 무덤덤하게 반겼다. '좀 웃어라도 주지.' 그냥 기계적인 일상인 듯 밋밋한 인사를 나누고 그를 따라나섰다. 공항을 나가자마자 그는 우리를 그림자 취급하며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잰걸음으로 차가 주차된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혹 새벽 용역 회사의 봉고차를 타러 끌려가는 일용직 인력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 이 낯선 분위기, 풍경, 냄새, 사람들! 게다가 밤이라서 그런지 주변에 온통 어두운 그림자가 내린 시멘트 색의 건물과 벽만 보이고,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형형색색의 컬러는 보이지 않았다. 혹 SF에 나오는 무채색의 회색 도시라고 할까?

역이 바로 앞인데 길을 건널 수 없다... "형 어떻게 해"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그의 차에 커다란 배낭 세 개를 싣고 빠하르간지로 출발하였다. 감기에 걸린 양 쿨럭쿨럭 대는 차가 처음부터 불안해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검문소에서 검표를 하자마자 시동이 꺼져버리고 말았다. 경직된 정적 속에서 드르륵 드르륵 겉도는 자동차 열쇠 소리! 족히 20년은 넘어 보이는 고물차는 늙은 소마냥 힘들게 시동이 걸리더니 조마조마하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차선과 신호등은 아무 쓸모없는 장식품이었다. 이럴 때면 장자의 말이 생각난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는 생명 있는 무질서를 사랑한다.' 난 이런 인도가 참 맘에 든다. 다 흩어버리고 대붕(大鵬)이 되어 비상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델리의 가장 큰 시장이자 배낭여행자들의 거리인 빠하르간지(메인 바자르)에 도착했다. 드디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픽업 젊은이가 입을 열었다.

"Please give me tip.(팁 주세요.)"

우리는 이제 막 인도에 도착해 인도화폐인 루피가 없는데? 인도 젊은이는 우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석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병오형이 한국에서 미리 환전해 온 돈이 있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별 감흥도 없는 표정으로 팁을 챙겨 넣고 짐을 내려주었다. 그의 침묵은 요가와 명상으로 다져진 평정심의 증거인가? 그에게 준 우리의 팁은 우리가 오기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는 인연의 결과물인가? 환상처럼 덧씌어있는 인도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하찮은 것까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묵직한 배낭을 메고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우리가 찾은 게스트하우스의 방은 창문도 없고 침대 두 개와 바닥에 엑스트라 패드 하나를 깔아놓은 비좁은 곳이었다. 인도 백치인 우리가 무엇을 마다하겠는가? 이 늦은 밤에 지친 몸을 누일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밖에……. OK, No problem! 인도 첫 날밤, 새색시처럼 고운 분홍색 내복을 입고 온 장호가 우릴 열락(悅樂)으로 인도하였다.  

델리의 여행자 거리이자 메인 바자르! 어리숙한 세 얼간이가 뉴델리 역을 찾아가다. 차, 릭샤, 사람으로 뒤엉킨 아비규환의 도로, "형아들, 이 거리를 어떻게 건너?"
▲ 빠하르간지 델리의 여행자 거리이자 메인 바자르! 어리숙한 세 얼간이가 뉴델리 역을 찾아가다. 차, 릭샤, 사람으로 뒤엉킨 아비규환의 도로, "형아들, 이 거리를 어떻게 건너?"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눈을 떴다. 3평 남짓한 방에 세 얼간이가 누워 있었다. 주위에 풀어헤쳐져 있는 배낭들! 이곳은 인도였다. 드디어 인도여행의 시작이다. 우리는 대충 세면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빠하르간지 중앙을 관통하는 주도로로 나가자 아직 아침이라서 그런지 한산한 분위기였다.

아침 식사를 하려는 한국 식당이 9시 반에 문을 연다고 하여 빠하르간지 주변을 어리숙한 몸과 마음으로 산책하였다. 도로를 따라 쭉 내려가다 사람들과 차, 릭샤들이 뒤엉켜 번잡하게 움직이고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바로 '뉴델리 역' 앞이었다. 뉴델리 역으로 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려는데 당최 갈 수가 없었다. 온갖 차들과 릭샤들이 길을 건너는 행인을 무시한 채 쏜살같이 달렸다. 나와 병오형은 대담한 도전정신으로 길을 건넜건만, 장호는 도로에 발 하나 내딛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형아들, 이 도로를 어떻게 건너?"

우리는 한적한 빠하르간지 골목골목을 소요하다가 길을 잃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우리에게는 계획도 나침반도 내비게이션도 없는 상태이기에 모든 것이 혼돈이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B게스트하우스 건물 옥상에 위치한 한국 식당에는 벌써 몇몇 한국인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세 명의 젊은 한국 남자친구들을 만났다. 그 중 두 명은 필리핀 어학연수에서 만난 인연으로 인도 여행을 온 학생이었다. 배낭여행에서 좋은 것은 낯선 사람을 만나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나이가 들며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면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없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와우~ 멋진데요' 하며 인간관계의 첫 바늘을 꿰려하면 상대방은 나에게 돋보기를 들이대며 위아래로 분석을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 나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의 영역 안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 외면해야 하는 사람인가? 그냥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구태여 뭘 붙이고 뭘 떼어내야 한단 말인가?

사람은 서로 하나가 되려 할 때 위험해질 것이다. 만남은 둘이 있어야 하고, 둘이 해야 한다. 그리고 둘 모두 있는 그대로 노출되고 수용되며 존중받아야 한다. 마주보는 만남은 누군가 희생될 여지가, 상처받을 가능성이 줄어든다. 하나가 되려할 때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변해야 하고, 나는 상대방이 기대하는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 욕망과 기대에 상대방이 따르지 않을 때, 만남은 위태로워지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렇듯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위험한 외줄타기와 같은 것이리라.

그렇다고 모든 만남이 의미있는 만남으로 발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서로의 인간적인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 만남만으로도 소중한 인연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다? 나(I)와 그것(It)이 아니라 나(I)와 너(You), '우리'의 만남이 되길 원하는가? 그럼 화이부동(和而不同) 하자! 나는 당신들과 조화롭게 어울려도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나와 당신은 똑같아질 수도 없고, 똑같아질 필요도 없고, 똑같아 져서도 안 된다. 우리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은 '나와 너', '우리' 관계의 뿌리가 될 것이고, 나와 당신의 '다름', 즉 다른 사고방식, 행동, 일상들은 우리의 발전적인 만남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같음은 공유하고 다름은 존중한다."     

인도에서 지하철 타기, 참 까다롭네 

사람은 둘이 만나 둘이 마주 서 있는 것이지, 나 혹은 당신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 빠하르간지의 행인 사람은 둘이 만나 둘이 마주 서 있는 것이지, 나 혹은 당신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젊은 친구들과는 오래 만난 사이마냥 편하게 얘기하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들은 한국 식당이 위치해 있는 B게스트하우스에서 700루피로 묶고 있었다. 어라? 우리는 그 금액의 두 배를 초과하는 1500루피로 햇빛없이 칙칙한 더블룸에 묵고 있는데? 우리는 바로 숙소를 옮기기로 결심을 하고 묵고 있는 A게스트하우스로 발걸음을 떼었다.

이미 우리가 이틀을 예약하여 다른 예약을 받지 않았을 텐데, 남은 하루를 취소하면 게스트하우스 측에서는 손해가 아닐까? 우리의 입장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 난감한 상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를 타개하는 방법은 방을 옮기는 데 빼도 박도 못하는 악의적인 구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원래 계획에는 내일 델리를 떠나는 것이었는데, 기차 편이 마땅치 않아 오늘 밤에 조드푸르로 가야 한다는 시나리오를 대번에 만들어냈다.

역시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존재이다. 합리화의 능력자 셋이 모이니 호텔 입장에서도 안타까워해야 하는 대본이 나왔다. 호텔 카운터에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하고 직원으로부터 OK사인을 받았다. 방에서 짐을 빼는데, 직원이 찾아와 사장의 전화이니 받으라고 했다. 전화에서 들리는 화나고 실망한 음성!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I'm so sorry!"

난 계속 미안하다는 얘기만 반복하였다. 낯짝도 두꺼운 녀석이로고! 우리는 짐을 챙겨 바로 근처에 있는 숙소로 이동해 더블룸에 투숙하였다. 그 이후 우리는 빠하르간지 거리로 직접 통하는 A게스트하우스 골목을 지나지 않고 뺑 돌아서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래도 염치는 있는 우리들 아니겠는가?   

식사를 한 후 델리 시내 지도를 탁자 위에 펼쳐 놓고 여행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내일 밤 올드델리 역에서 라자스탄주 조드푸르로 출발하는 밤기차를 예약했기 때문에 이틀간 델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배낭여행을 떠날 때에는 한국에서 하루하루의 일정을 세밀하고 잡아놓았었는데, 이제는 그런 수고를 하지 않는다. 고정된 스케줄 없이 하루하루 불확실한 일정을 잡아가는 묘미가 여행의 소중한 한 컷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델리 남쪽으로 내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꾸뜹미나르를 보고, 전공(戰功) 기념문인 인디아 게이트, 현대식 번화가인 코넛 플레이스까지 돌기로 하였다.

시내 여행에 필요한 간단한 복장과 카메라, 복대 등을 챙기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아쉬람 역으로 향했다. 정오가 되면서 빠하르간지 거리는 노점상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이 외국 배낭여행객의 중심지인 만큼 각양각색의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좁은 시장 도로에 릭샤, 오토바이까지 다니다보니 사람들은 쫓기고 튕겨나가야만 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몇 년 전에 개통한 지하철은 일거에 델리의 교통 혼잡을 해결했다고 하였다. 역 앞은 손님을 기다리는 자전거 릭샤꾼과 걸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매표를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한 쪽 벽에 자동발매기가 보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의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슬며시 얼룩진 색안경이 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인도인 대부분은 이 자동발매기를 사용할 능력이 없을 거야.'

지하철의 개통으로 델리의 교통 혼잡이 일거에 해결되었단다. 지하철과 지하철에서 보는 인도의 풍경이 흑백으로 대비되었다.
▲ 델리 메트로 아쉬람역 지하철의 개통으로 델리의 교통 혼잡이 일거에 해결되었단다. 지하철과 지하철에서 보는 인도의 풍경이 흑백으로 대비되었다.
ⓒ 윤인철

관련사진보기


자동발매기로 가다가 깜짝 놀랐다. 지하철 역 한 구석의 철망 속에서 한 군인이 행인들을 향해 소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었다. 범죄자로 오인 받지 않기 위해 정숙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사뿐사뿐 내딛었다. 자동발매기는 충전만 되고 발매는 되지 않는 고장난 상태였다. 다시 줄에 돌아와 표를 끊었다. 지하철 개찰기로 가려면 군인들이 관리하는 소지품 검색대를 지나야 했다.

인도에서는 공항도, 지하철도 군사시설이란다. 아마도 파키스탄과의 분쟁, 혹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분쟁 탓에 빈번히 일어나는 테러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일 것이다. 매표에서 개찰까지 지하철 타기가 참 번거로웠다. 플랫폼에 들어오는 인도 지하철은 최현대식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보이는 밖의 풍경과 내가 서 있는 지하철의 풍경이 흑과 백인양 대비되었다. 흑백 영화에 등장하는 칼라빛 지하철?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중고등학교 현직 교사 세 명이 2014년 1월, 한 달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입니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 우다이뿌르, 조드뿌르, 아그라, 바라나시, 맥그로드 간지 등 인도 중북부를 방문했습니다.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사색과 반추, 철학'이 있는 '여행'에 관한 것입니다.



태그:#인도, #델리, #교사, #배낭여행, #빠하르간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