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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4박5일 동안 한국 땅을 밟았던 프란치스코 교종이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에 선물한 메시지 내용들에 깊이 주목한다. 한마디 한마디를 면밀히 살피며 큰 울림과 감명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교종께서 어린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거나 안아주는 모습, 특히 세월호 유족들을 대하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교종의 손을 잡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유족들을 보면서 나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단식 34일 유민아빠 만난 교황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교황방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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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종이 선출되고 새 교종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갖게 된 직후부터 프란치스코 새 교종의 면모를 비교적 쉽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서울 '대한문미사'와 전국 각 교구의 시국미사에 참례할 적마다 프란치스코 교종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고, 새 교종의 메시지를 자세히 전하는 사제들은 "교황님에게서 힘을 받는다"는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그 당시에도 어김없이 매주 월요일 서울을 갔고, 전국 각지를 다니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 참례하곤 했다. 2010년 11월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되었던 4대강 파괴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는 2012년 7월부터 대한문 앞으로 자리를 옮겨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2013년부터는 제18대 대선의 불법부정을 규탄하고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는 시국미사로 전환되었는데, 종래에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까지 요구하게 되는 전국 각 교구와 수도회의 시국미사에도 나는 거의 빠짐없이 참례했다.

천주교 각 교구와 수도회의 시국미사가 연이어 전개되는 과정에서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세월호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정의구현사제단, 2013년 하반기에 출현한 평신도 단체인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등이 전면에 나서서 세월호 유족들과 연대하며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적극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진실과 양심, 정의와 평화, 생명과 환경, 인권과 민주주의 등의 명제를 내걸고 전국 각지에서 미사를 거행하는 가톨릭 성직자들은 최고 권위인 프란치스코 교종의 권고 <복음의 기쁨>을 거의 절대적 지침으로 삼는다. 현실문제들을 방관하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일에 투신하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은 한가지로 프란치스코 교종에게서 힘을 받고 있는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한국교회 수장이 아닌 교종에게서 힘 얻어야 하는 현실

이런 현상에서 나는 일말의 자괴감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우리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교회의 수장들에게서는 제대로 힘을 얻지 못하고 세계교회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종에게서 힘을 얻어야 하는가? 뼈아픈 의문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우리에게 큰 힘을 주는 주교들도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인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등에게서 받는 힘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가장 큰 교구이며 대표 격인 서울대교구의 전임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과 현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다수 주교들의 수구적인 태도에서 오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도 컸다. 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청주교구)의 지적대로 '성경을 통해 <조선일보>를 보지 않고 <조선일보>를 통해 성경을 보는 주교들'의 고질적인 태도는 한국교회 전반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 추기경이 서울대교구 한복판인 용산참사 현장과 여의도와 대한문 등에서 매일 또는 매주 거행되는 미사에 왜 한 번도 가지 않았고 격려 한마디 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또 서울대교구 사제들이 700명이 넘는데, 용산미사와 여의도 거리미사, 대한문미사 등에 참례하는 사제들은 왜 손가락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지 참으로 이해가 난망하다.

15일 오전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종 집전 성모승천대축일 장엄미사에 우리 가족도 참례했다. 새벽 3시 30분 태안에서 출발해야 했다.
▲ 프란치스코 교종과 함께 한 우리 가족 15일 오전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종 집전 성모승천대축일 장엄미사에 우리 가족도 참례했다. 새벽 3시 30분 태안에서 출발해야 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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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으로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큰 울림이 일었다고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메시지와 가르침은 타종교인 뿐만 아니라 무종교인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내고 또 추구해나가야 할 길이 명확히 제시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한국교회 전체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함을 느낀다. 교종 방한이 일회적인 이벤트 같은 것이 아니고, 한국교회를 변화시키는 일대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한국교회의 체질 변화는 한국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도 갖는다.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고위성직자들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어느 분야, 어떤 집단이든 지도자들의 변화가 가장 중요한 법이다. 한국교회의 경우 고위성직자들의 가치관이 변하고 시야가 확장된다면 전체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의 변화는 쉽게 탄력을 받게 된다.

그런 변화의 계기야말로 프란치스코 교종 방한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이한 이후 생겨나게 될 공허감 같은 것을 방한 동안의 명확한 기억으로 잘 메우고 채우며 계속적인 파장이 생성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프란치스코 교종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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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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