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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세븐> VS 책 <적의 화장법>

 

1995년 작 영화 '세븐'을 기억하는가? 8.5를 넘는 평점답게 범죄·스릴러 장르에서 꼭 봐야 할 영화로 자주 회자하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작품이다. 젊은 시절의 브래드 피트를 보며 눈이 호강할 수도, 케빈 스페이시의 조용한지만 섬뜩한 연기에 소름이 끼칠 수도 있다. 사실 꽤 오래전에 본 영화다. 자신을 제물로 바쳐 마지막 범죄를 완성하고자 했던, 뼛속까지 사이코패스 기질이 다분했던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와 다소 충격적인 결말이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벌써 20년이 다 돼가는 옛 영화의 이야기를 들먹거린 이유는 영화 속 '케빈' 같은 인물을 책 속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그 인물은 바로 <적의 화장법> 속 '텍스토르 텍셀'이다. 이는 광기와 유머를 녹여낸 독특한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이다. <적의 화장법>은 화려한 빨간 겉표지 속 숨겨진 어두운색의 속살만큼이나 내용도 어둡다. 책은 연착된 비행기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 한 남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두 남자의 대화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런 측면에서 마치 연극 대본 같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연극이 펼쳐지듯 비행기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대화만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이다.

 

제롬 앙귀스트 VS 텍스토르 텍셀

 

텍스토르는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는 제롬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유년시절부터 마음속에 자라온 악의 씨앗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곧 한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엄청난 범죄'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후반부로 치달을 즈음, 책의 첫 번째 반전이 시작된다. 바로 그 여자가 '당신(제롬)의 아내'라는 말을 던진 것이다. 곧이어 복수할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죽이는 방법뿐이라며, 살해를 종용한다. 이쯤에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맞다. 그는 미친 사람일지 모른다. 텍스토르는 상대를 완벽히 파멸하는 것이 그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를 완벽히 정의하기 위해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뛰어넘는 말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제롬 VS 텍스토르 Round 2

 

제롬는 텍스토르를 향해 외친다. '물적 증거를 내밀기 전까지 너의 범죄를 믿을 수 없다고, 설령 네 말이 맞다 해도 넌 자신을 옭아매는 죄의식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뿐이라고' 말이다. 서로를 가지고 노는 듯한 이 게임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실제로 텍스토르는 제롬의 아내를 죽였을까? 아니면 그토록 심오하고 잔인한 말을 지어낼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일까? 대답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보라. 장담하건대 당신이 그 무엇을 상상하든 너무나도 참신해 충격스러운 결말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에는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이어질 글은 다소 충격적 반전의 소재를 안고 있으므로 책을 읽고자 하는 이라면 내일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향하길 바란다. 두 번째 반전을 안고 있지만, 다음 글은 한층 깊은 생각의 소재를 던져주기 때문에 흥미로울 수도 있다.

 

제롬 VS 텍스토르 Final Round

 

공지했듯 순도 100% 두 번째 반전은 가히 충격적이다. 텍스토르가 자신이 '또 다른 제롬'이라는 고백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제롬 속에 기생하는 내면의 악마이며, 자신이 있었기에 제롬이 범죄사실을 망각하고 살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어 그는 '너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다고 나는 쏴라.'고 말하며 도발하며 제롬을 딜레마에 빠뜨린다. 텍스토르의 말이 맞을 경우, 제롬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내기'이다. 이 숨 막히는 게임의 승자는 누구일까?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책의 마지막 장면을 넘기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책의 제목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 끝날까 했던 더위도 조금씩 물러가는 듯하다. 올여름 공포영화 한 편 보지 못했다면, 마음을 쫄깃하게 할 이 책 한 편 어떠한가? 여름의 끝자락과 함께 '적의 화장법'을 감상해 보길 바란다.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문학세계사(2013)


태그:#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AMELIE NOTH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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