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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거실에 앉아 선풍기를 틀었다. 첫째 아들이 그림을 그리다가 내 무릎에 앉았다. 그리고는 커다란 눈을 똘망 똘망 거리며 나에게 말한다.

"아빠, 나 군대 가기 싫어요"

헐~ 우리 아들, 입대 영장을 받고 노심초사 하는 청년? 아니다. 아침저녁 공부에 매진하는 중고생? 아니다. 작년에 유치원 졸업하고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이다. 난 어이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군대? 왜?"
"군대요. 거기가면 막 때린대요. 가기 싫어요."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걸까 싶어서 다시 물어봤다.

"누가 그래? 어디서 그런 말을 해?"
"티브이에서 봤어요. 왜 남자만 군대 가야 해요? 꼭 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 가면 죽는대요."

아이가 그새 많이 크긴 했다. 티브이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고 혼자 생각한 것이다. 파워레인저나 앵그리버드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티브이에서 탱크도 나오고 총 쏘는 장면이 나오는 뉴스를 보다가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몇 달 전만 해도,

"아빠, 군대 갔다 왔어요? 왜 남자만 가야 해요?"

정도에 그치던 질문이었는데, 어느새 분단 대한민국의 실체를 파악해 버린 듯한 아이의 눈망울을 보며 난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정전 60주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자유를 찾아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들과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에게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들> - 거제도 포로 수용소 유적지 정전 60주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자유를 찾아 대동강 철교를 건너는 피난민들과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에게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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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어난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과 '윤 일병 사망사건'을 비롯해 남경필 경기도지사 장남의 군 후임병 폭행과 성추행 등이 메인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그러면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군 문화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미 군대에 자식을 보낸 사람은 전화 혹은 방문 면회를 통해 자식이 안녕한지 확인하기도 하고, 휴가를 나오면 목욕탕에 데려가서 어디 상처는 없는지 일일이 살펴본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군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입영 당사자들은 물론, 부모들도 군에 자녀를 보내야 하는 건지 고민하는 등 군대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유례없이 커져가고 있다.

군대 내 폭력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성장통'?

사실 군대에서의 폭력은 공공연한 비밀로, 어느 시대 어느 부대에서나 있었지 않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사회와 가정의 보호를 받고 있는 중고생들 사이에도 폭행과 따돌림이 존재하는데, 한창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청년들을 강제로 이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며 폐쇄된 공간으로 내몰았으니… 우리 모두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살고 있는 셈이다.

휴전이라는 남북 대치상황은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강압적으로 총기를 들게 하고 있다. 징병제든 모병제든 자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는 군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군대문화는 많은 부분에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반근착절(盤根錯節)'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후한의 7대 황제 안제가 왕위에 올랐을 때 일어난 사건이 배경이 된 것이다. 뜻을 풀어보자면, 나무의 뿌리와 줄기 등이 얽히고설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군 문화를 제대로 일컫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군대문화는,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의 잔재를 고스란히 이식받은 후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레드 콤플렉스가 뿌리박고 있다. 게다가 정전 60년이 넘어가면서 흔히 말하듯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는 왜곡된 인식이 파다해 있다.

이렇게 왜곡된 인식이 군대문화의 틀을 가지고 사회집단에 적용될 때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 공동체의 일치단결로 목표달성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허나 이것이 시간이 흐르며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를 지배할 때는 명령과 지시만이 존재하는 일방통행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남자라면 1차적으로 징병제의 대상이 된다. 그들 중 99%가 군 면제를 얻지 못하고 군대 내에서도 좋은 보직을 받지 못하는 보통 사병들이다.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이 상투적인 말은 온 몸으로 말단 군대문화를 겪어 온 보통 사병출신들의 넋두리이며, 정상적이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진심어린 충언으로 보면 지나친 비약일까? '반근착절'의 상황을 끝낼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모하는 상황

언론에 보도된 피해자의 실태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얘기가 많다. 그만큼 군대 내에서의 폭력은 일상적이고 흔한 것이며, 피해자가 진급하면 가해자로 변모하게 되는 자연스런 흐름이 있다.

사람의 심리는, 폐쇄된 공간에서 다수의 계급이 존재하고 그 계급이 인간의 상하를 가르는 구분점이 될 경우에 이는 '군기를 잡기'위해 혹은 '훈련의 일환'으로 하위 계급을 억압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모하는 과정이 군대 내의 일과에서 너무 자연스럽기에 본인 스스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군문화의 개선을 위해 관심병사제도의 재검토와 사병간의 관등성명 금지, 휴대폰 소지 허용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개선안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일부 안들은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제대로 실천되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군대 내의 폭행과 따돌림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의문사도 그 수가 줄지 않고 있다. 단지 군 부적응자의 자살로 황급히 결론을 짓고 마는 현 상황에서 우리 병사들과 부모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숨 막히는 2년을 기다려야 하는가?

사병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지휘관, 군 경험이 없는 국방부 및 정부 인사들의 대안들은 징병제로 가로막힌 청춘들의 간절한 외침을 들을 수 없다. 대안을 내놓기 위해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내 놓은 대책마다 사병들의 인권이나 처우 개선과는 거리가 먼 것은 그네들의 삶이 우리 '청춘 사병'들처럼 절실하지 않고 하루하루가 치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갓 입소한 훈련병에서 자대로 배치 받은 사병이, 진급을 거듭하며 병장으로서 제대를 하게 되기까지의 일상과 반복적인 훈련 중에 느끼는 고민과 갈등을 아는 지휘관은 얼마나 될까?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것의 중요성을 얼마나 알고 있으려나, 혹은 그런 정치인은 얼마나 되려나?

일차적인 시각의 차이는 여기에서 존재한다. 간부들은 그들만의 교육과정과 훈련을 통해 사병 등을 지휘하게 되고, 학교와 기수를 통해 끈끈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 인맥은 그들만의 정보 공유의 공간이고, 소속 부대에서 불미스러운 사건 발생 시 이를 무마할 수 있는 질기고 질긴 끈이 된다. 이 틈에 사병들이 삐집고 들어설 공간은 없다.

간부들 사이에서의 사건 사고도 있지만 이는 사병들에게서 일어나는 사건에 비할 수 없다. 간부들 역시 살아온 환경은 다르겠으나 누구나 비슷한 교육과정을 거치며, 딱히 특별하지 않은 진급이란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병들은 그렇지 않다. 사병들의 공간은 다양한 사회계층에서 저마다 다른 교육과정 및 생업에 종사하다 강제 징집당한 곳이다. 이렇게 다양하고 특이한 사람들이 타의로 모여 있는 공간에서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이들은 오직 '군제대' 하나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는 명령과 복종을 근본으로 할 수 있지만 신뢰와 배려, 타 병사에 대한 관심이 먼저 되어야 한다.

맹목적인 복종과 규율을 강요하던 시대의식도 벗어나야 한다. 이제 제발 식민사대주의와 군국주의에 빠진 과거의 그림자를 걷어내야 할 때이다. 최근 잇따른 정치계의 행보와 각종 사건 사고를 접하고 대응하는 정부나 공공기관의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과거로의 회귀 중이다. 참으로 처절하고 가슴 아픈 과거를 겪은 만큼 그 상처도 크겠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전방위적 프레임이 바뀌지 않으면 군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는 세대가 오기는 힘들 것 같다.


태그:#군대문화, #군대 가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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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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