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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구조 실패의 원인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의 원인에 대해서도 이제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반복되는 재난사고 속에서 왜 우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되었는지 시민들과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연속칼럼을 통해 '살아남은' 우리의 의무와 우리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3월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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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장을 해야 되는데 규제라는 암을 같이 안고 사는 것은 나라는 발전시키지 못하는 것."
"(규제개혁을 위해) 사생결단하고 붙어야 한다."
- 박근혜 대통령,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2014. 3. 12)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규제혁파를 국정 핵심과제로 선정했다. 모든 규제를 비용으로 환산하여 새로운 규제를 신설할 때는 기존 규제를 반드시 폐지하도록 함으로써 총량을 유지하고, 각 부처별로 규제 총량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도록 하여 국정과제 수행평가에 반영하는 이른바 '규제비용 총량제'를 내년부터 전면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각 부처별로 앞 다투어 규제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규제완화를 부르짖는 최고정책결정자의 메시지가 해수부나 해경으로 하여금 해상안전 규제 강화에 관심을 갖도록 할 리는 만무했다.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규정을 위반한 과적과 부실한 선박 안전 점검 및 승무원의 미숙한 선박운항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고 방지를 위한 선박안전 관련 규제들은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을 통해 대거 폐지 또는 완화되어왔다.

4월 24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선박·해운과 관련해 이미 완화되거나 완화가 진행 중인 안전규제는 20건을 웃돌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6월, 내항선을 운항하는 선장에게 주어진 안전 관련 부적합 사항 보고 의무와 매년 실시하는 내부 심사를 폐지했고, 500t 이하 선박에 해당하는 '관리 외 선박'이 주로 드나드는 부두 등 항만 시설에 대해선 '해상교통안전진단'을 면제해줬다.

이는 규제개혁의 주무부처 핵심관료인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이 5월 21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제816회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밝힌 내용으로도 확인된다. 당시 그는 '그래도 규제는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으로 과적, 적재방법, 감독 관리, 관피아, 초기대응 부실 등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으나, 규제 완화가 원인이라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밝히면서 "세월호 사고를 이유로 규제개혁의 불씨가 약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안전규제를 비롯한 사회적 규제의 유지·강화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규제완화 조치들에 대해 "규제완화가 아닌 규제개혁"이라고 해명한다. 규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해명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개혁은 기업과 사용자의 부담은 줄이면서도 규제효과는 높인다. 대부분의 규제가 이러할까?

<서울경제> 4월 28일자 <청와대 "규제완화때 안전도 반영">에 따르면,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규제완화 시 안전에 대한 고려를 추가하겠다고 하였다. 규제완화 대상에 '안전항목'을 반드시 포함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는 규제개혁의 추진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규제완화 정책을 큰 틀에서 그대로 추진하되 안전항목만 별도로 고려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규제완화 자체가 비용 절감,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한 것인데, 안전 규제는 거의 모든 사안에서 그와 정반대의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제개혁의 방향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우선 모든 규제를 악으로 규정하는 인식과 접근은 규제개혁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으므로 바람직한 규제와 그렇지 않은 규제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공공성, 안전,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위한 규제는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동시에 더욱 강화해야 한다.

무분별한 규제개혁은 시민안전을 위협한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는 안전 관련 규제를 비롯해 환경, 의료, 교육, 노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전개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요구에 맞는 규제를 풀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논리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국민의 생명이나 삶의 질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 이러한 무분별한 규제개혁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규제를 규제답게' 해야 한다. 아무리 규제를 강화한들 규제를 실행에 옮기는 관료와 그 구조가 혁신되지 않는 한 규제강화에 부정적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규제완화를 신봉하는 이들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엄밀하게 나누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적 규제와 사회적 규제도 실상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규제의 강화-완화를 논하기에 앞서 규제를 규제답게 만드는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주장처럼 "관료적 규제에서 사회적 규제로", 그리고 "독과점적 규제에서 민주적 규제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규제 강화-완화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규제를 사회화, 민주화하는 것이 규제를 규제답게 만드는 방안이다.

무분별한 규제개혁 중단 및 규제의 사회화·민주화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와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규제완화 중단, 수명 끝난 원전 폐쇄 등을 요구했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와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규제완화 중단, 수명 끝난 원전 폐쇄 등을 요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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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바와 같이 현재 추진 중인 철도 분할 민영화, 추진 준비 중인 가스, 전력(배전), 공항, 은행, 물의 민영화 추진이 중단되어야 한다. 수서 KTX 분할이 철회되어야 하고, 화물 자회사 분할 또한 저지되어야 한다. 인천공항철도 매각은 말 그대로 민영화인 만큼 추진되어선 안 된다. 이와 함께 국토부의 '철도산업 발전방안' 대신 공공철도 강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재벌을 위한 에너지 산업 재편, 민간기업의 가스 직수입 허용 등을 통한 전력·가스산업의 우회적 민영화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 물 사유화 또한 마찬가지다. 수난 구조의 외주화·민영화에서도 드러났지만, 민간의 전문성과 역량에 의지하여 민영화시킬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따라서 그보다는 공공의 인프라와 인력을 확충하고 질을 제고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대처할 필요가 있다.

영리병원·영리 자법인 허용, 원격의료 허용 등의 의료 규제 완화 내지 의료 민영화, 대중교통·가스·원자력·해상·산업보건 등의 안전 규제 완화 또한 중단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철도의 경우 핵심적인 정비업무, 유지보수 업무는 외주화하는 것이 아니라 철도공사가 직접 담당하여야 하고, 무엇보다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 지하철의 외주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철도·지하철의 안전 점검뿐만 아니라 해상 선박에 대한 안전 점검도 민간업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공공부문에서 직접 맡아서 수행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해 사과하면서 대형 참사 재발을 위한 방안으로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고 밝히고, 안전재난 대응시스템에 대한 국가개조 차원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리고 5월 19일 대국민담화에서 공식 사과한 뒤 곧바로 해경 해체를 선언하고,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해 각 부처에 흩어진 안전 관련 조직을 모두 통합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관피아를 뿌리 뽑기 위해 공무원 재취업 제한 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공익에 중요한 핵심 공직유관단체 기관장에 공무원을 임명하지 않는 한편 행정고시제도를 개편하는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 필수

관피아라는 용어는 세월호 참사 직후에 등장했는데, 이제는 거의 매일 언론보도에 나올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문제는 국가 개조, 관피아 척결의 대안이 관료 대신 민간전문가로 바꾸고, 민간의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 이후 대국민담화에서 공직사회 혁신안을 발표하고 '관피아'를 비판하면서 이를 철폐할 대안으로 공무원 임용 방식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였다. 그 후속 조치로 5급 공채의 비중을 대폭 줄이거나 폐지하고 대신 민간 전문가를 대거 기용하여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즉 관료제를 시장으로 대체하는 '인적 민영화'인 셈이다.

또한 공공기관이나 협회·단체에 관료 출신을 전면 배제한다면 그 자리는 정치인 등 또 다른 낙하산이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관피아 용어 확산은 우려되는 측면이 있다. 오히려 관료를 시장으로 대체하는 게 아니라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얘기해야 할 듯하다.

관료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책 역량을 갖춘 시민사회의 민주적인 통제 장치가 필요하며, 관료들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정해주는 정책정당이 요구된다. 정부정책과정에 대한 민주성의 확대뿐만 아니라 책임성의 확보 또한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인 의회정치, 정당정치의 강화가 중요할 것이다.


태그:#세월호, #안전규제,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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