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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하면서 만난 열손가락 협동조합 조합원들
 취재하면서 만난 열손가락 협동조합 조합원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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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1일 오전 11시 47분]

"(저 같은 장애인들은) 학교 졸업하면 무엇을 해야 할 지 걱정이 돼요. 졸업하고도 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기업에서 저 같은 장애인들도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어요"

23살 오애솔씨가 참으로 힘겹게 한 말이다. 이 세 문장을 전달하기 위해 애솔씨는 수도 없이 눈을 깜박였고 안간힘을 써 가며 입술을 옴짝 거렸다.

애솔씨는 뇌병변장애가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휠체어에 의지 한 채 살아야 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인이 되었지만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애솔씨는 현재 일을 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아래 열손가락)' 덕분이다. 애솔씨는 조합활동 안내와 후원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 및 문자 메시지 발송, 조합 내 장애아 모임인 '위풍당당'을 이끄는 당당한 조합 구성원이다.

'열손가락서로돌봄사회적협동조합'은 뇌병변장애 자녀 부모모임인 '열손가락'이 모체가 되어 결성한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올 4월에 설립인가를 받았다. '열손가락'에는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의 의미가 들어있다. 장애아도 비장애아와 똑같이 소중한 자식이라는 의미다.

열손가락 협동조합 덕분에 직업을 얻은 23살 아가씨 오애솔씨.
 열손가락 협동조합 덕분에 직업을 얻은 23살 아가씨 오애솔씨.
ⓒ 열손가락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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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전 10시에 안양 9동에 있는'열손가락'을 방문, 조합 결성 이유 등을 알아보았다.

"스무 살이 지나서 장애학교를 졸업하면 갈 데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예요. 그 때는 부모가 돌보기 힘들어요. 아이는 크고 부모는 늙었고…사설 시설에도 가기 쉽지 않아요."

조합을 만든 가장 큰 이유다. '조합을 결성한 계기'를 묻자, 문선옥 이사장은 "부모들이 모여 이 문제 걱정하다가 아예 장애아 돌봄 사업체를 꾸려서 아이들 미래를 직접 책임지자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에 가장 적합한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은 애솔씨와 그의 어머니다. 애솔씨 어머니는 "조합 만들자고 제안한 게 바로 접니다. 조합이 없었으면 둘이 함께 집에만 있어야 했을 거예요. 이곳에서 함께 일하고 있어서 정말 좋아요. 이곳 존재 자체가 제겐 행운이죠"라고 말했다.

"(열손가락)존재 자체가 내겐 행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구매·생산·판매 등의 사업을 해서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시키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게 협동조합의 존재 이유다. 일반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이 있다. 일반 협동조합은 업종 및 분야에 제한이 없지만, 사회적 협동조합은 취약계층에 대한 서비스 등 공익사업만을 할 수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 '열손가락'은 그 목적에 걸맞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서로돌봄품앗이활동' 과 '장애자녀방과후교실', '장애자녀방학돌봄' 등의 사업이다.

방과 후 교실과 방학 돌봄은 글자 그대로 방과 후와 방학 때 장애아를 돌보는 사업이다.  '서로돌봄품앗이활동' 또한 글자 그대로 장애아 부모들이 서로 품앗이 돌봄을 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의 특징은 품앗이 통장이란 게 있어서, 품앗이가 체계적으로 관리된다는 것이다. 조합원의 품앗이는 통장에 적립된다. 적립한 품앗이는 프로그램참여비 등으로 활용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업 덕분에 삶이 여유로워졌으며 조합 존재 자체가 힘이 되고 있다고 조합원들은 입을 모았다.

[문선옥 이사장] "기존 복지관 같은 곳에 가면 우리가 그 틀에 맞춰야 하는데, 여긴 우리에 맞는 틀을 직접 만들 수 있어서 좋아요. 품앗이 같은 게 그런 프로그램이죠.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야 하는데 주변에 도와 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 가까이 있는 조합원한테 연락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덕분에 혼자 있어도 안심이 되고, 마음에 여유도 생겼어요."

8월15일 여름 물놀이 잔치 중
 8월15일 여름 물놀이 잔치 중
ⓒ 열손가락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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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00 방과 후 교사] "16살 여자아이인데 아기수준이고,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해요. 밥도 먹여주고 기저귀도 갈아줘야하기 때문에 이곳에 오기 전에는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제대로 된 여행은 꿈도 못 꾸고요. 이번 여름에 나머지 아이 셋 데리고 16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여행을 했어요. 1박2일간 열손가락에서 우리 아이를 돌봐준 덕분이죠."

[유00총무] "10살 된 여자아이인데, 이곳에 오는 아이 중 가장 중증 이예요. 밥도 못 삼키고 목도 못 가눠서 누워있기만 하죠. 조합에 오기 전에는 나만 이런 고통 속에서 살고 있나 하는 마음에 의기소침했는데, 이곳에 와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서로 위로 받을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함께 다니니까, 아이를 데리고 거리에 나가도 시선이 따갑지 않고요. 예전엔(혼자 다닐 때) 쯧쯧 거리며 혀를 차는 소리를 듣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각종 프로그램 덕분에 자유롭게 외출하고 여행 할 수 있다는 것도 물론 좋고요."

유 총무는 말을 마치면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주변에 있는 조합원들이 "울지마, 왜 또 그래"하고 위로하자 눈물을 훔치고 다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00사무국장] "17살 남자 아이인데, 휠체어 타고 다녀요. 5분 10분 거리에 조합원이 있다는 게 정말 든든해요. 이곳에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아이가 직접 조합원 엄마들한테 전화해서 이야기도 하고 도움도 요청하고 그래요. 덕분에 (우리 아이의)사회적 관계가 넓어졌어요. 이게 아이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죠."

"쯧쯧 거리며 혀를 차는 소리가 너무 괴로웠는데"

뇌병변장애 1급 서동희 양, 38명 조합원 아이 중 가장 중증. 밥 먹는데만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뇌병변장애 1급 서동희 양, 38명 조합원 아이 중 가장 중증. 밥 먹는데만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 열손가락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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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손가락' 덕분에 좋아진 것은 이 밖에도 많다. 아이를 돌보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든 것도 큰 장점이다.

비용이 저렴한 복지관을 이용하려면 오랜 기간 기다려야 한다. 또한, 이용기간이 최장 5년으로 제한 돼 있어 장기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해서, 이용료가 비싼 사설 돌봄 센터에 맡기던지, 아니면 집에서 부모가 돌볼 수밖에 없는 게 중증 장애아를 둔 가정의 현실이다.

'열손가락' 돌봄 비용은 사설보다는 싸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복지관 보다는 약간 비싸다고 한다.

운영 기금은 조합원을 포함 약 100명의 후원인들이 매달 내는 후원금과 뜻있는 기업의 지원금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급료를 받는 상시 근무 직원 두 명과 조합원으로 구성된 자원 봉사자 3~4명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돌봄 장소는 뜻있는 조합원이 5년간 무상으로 빌려 주었다. 덕분에 사업 출발이 순조로웠다고 한다. 뜻있는 기업의 지원으로 올해 9월부터는 돌봄교실 과 치료교실 공사도 한다. 문 이사장은 "어쩌면 올해 안에 돌봄과 치료가 병행 되는 곳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열손가락'에서 돌보는 아이들은 주로 뇌병변장애아들이다. 또 활동 보조지원을 못받는 지적 장애아도 있다. 뇌에 손상을 입어서 오는 사지마비, 뇌성마미, 소아마비 등을 통틀어 '뇌병변장애'라고 한다. 현재 39명의 장애아 가정과 뜻을 같이하는 후원인 20명을 합해 총 59명이 열손가락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안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열손가락, #뇌병변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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