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풍수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 지도교수인 최창조 선생님을 만나고서였다. 처음 마주대할 때 약간 날카로운 인상이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한마디로 너무나 인간적인 분이었다. 막걸리를 좋아하고 얼큰하게 취하면 '천둥산 박달재'를 부르는 그런 분이었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선생님은 완주군 주변으로 함께 답사를 다녀오자고 했다. 이때가 선생님과 함께 한 첫 풍수 답사였다. 주로 형국론에 관한 답사였지만 어렴풋하게 풍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전주 색장동 장군대좌형국(將軍臺對形局), 봉동읍 연화도수형국(蓮花倒水形局), 복용농주형국(伏龍弄珠形局), 노서하전형국(老鼠下田形局) 등을 살펴보고 봉동 어느 허름한 주막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답사를 마무리 했던 기억이 선하다.

진안으로 발령받고 줄곧 진안에 살면서 마을 곳곳에 대한 답사를 하였고 선생님이 찾아올 때마다 마을을 소개해 주곤 했다. 종평마을, 하초마을, 유산마을, 율현마을, 무릉마을 등을 답사하면서 진안의 자연 환경이 아주 잘 보존되어 있어 진안을 '자연사 박물관'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진안을 답사하면서 마이산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진안에 오는 때이면 마이산이 보이는 민박집에서 묵었고, 만에 하나 진안에서 살게 된다면 마이산이 보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다고 했다. 소박한 마음의 표현이었겠지만 진안의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었고, 마이산에서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안을 떠나 생활하다가 다시 진안을 찾을 때면 고향의 상징처럼 다가오는 것이 마이산이다. 타 시·도에 가서 누군가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을 때, 진안이라고 대답하면 갸우뚱거린다. 그러다가 "마이산이 있는 진안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알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필자는 그래서 진안군을 '마이산군'이라 개명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다. 심지어는 진안군이 전남에 위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마이산은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의 한 줄기가 장수 영취산에서 다시 거슬러 금남호남정맥을 타고 팔공산에서 운장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금남호남정맥이 진안에 와서 말귀같이 생긴 마이산을 세워 놓았다. 신기한 생김새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듯한 마이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마이산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동안 바라보는 산이다. 때론 영적인 기운을 느껴 많은 무속인이 찾기도 하는 산이다. 현재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어 주면 제일 좋은 산이다. 이런 마이산에 인공적인 가식이 필요 없다. 마이산 주변의 요란한 개발은 또 다른 환경 파괴로 이어질게 분명하다.

마이산과 관련하여 한 가지 제안하자면 마이산 근처에 풍수박물관을 조성하면 제격일 듯싶다. 굳이 새롭게 건설할 필요는 없다. 현재 진안역사박물관을 새롭게 마이산풍수박물관으로 특성화하면 된다. 마이산과 관련된 풍수적 자료는 수 없이 많다.

또한 진안지역 자체가 풍수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풍수이야기가 풍부한 곳이다. 우리나라에 풍수를 학문적으로 연구가 학자도 상당수 된다. 이를 활용하여 정기적으로 저명한 풍수학자와 마이산이나 진안지역 답사와 함께 학술 대회를 지속적으로 한다면 마이산이 한국 풍수 메카로 발 돋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e-진안 신문(2014.8.18)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문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전북 전주고에서 한국사를 담당하는 교사입니다. 저는 대학때 부터 지금까지 민속과 풍수에 관심을 갖고 전북지역 마을 곳 곳을 답사하고 틈틈히 내용을 정히라여 97년에는<우리얼굴>이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전북지역의문화지인 <전북 문화저널> 편집위원을 몇년간 활동한 바도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전남 해남 서림에 가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