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본이 든든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미국이나 호주의 땅과 건물을 사들이던 시절, 한국만큼 일본에 자신만만한 나라는 없었다는 말이 있다. 식민지였다는 기억 때문에 주눅 드는 것보단 훨씬 좋은 자세였다. 중국도 마찬가지. 현재 중국의 부상에 대해 세계인들이 염려와 함께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의 부상에 대해 별반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

예전과 달라진 중국...한국의 올바른 처세는?

한국 기자단을 정성껏 맞았던 중국 한 지방정부의 모습. 지금은 이런 자리를 만들기 쉽지 않다
▲ 한국 방문단을 성의 껏 맡는 증국 지방 정부 한국 기자단을 정성껏 맞았던 중국 한 지방정부의 모습. 지금은 이런 자리를 만들기 쉽지 않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필자 역시 중국에 대해 미리 주눅 들 필요는 없다는데 뜻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것이 만용이 아닌 자신감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먼저 중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지난 15년간 필자가 만난 중국은 많은 변화를 겪었고,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접하는 중국 친구들의 모습에는 분명히 이전과 다른 도도함이 묻어난다. 이런저런 기회로 정을 나누며 만나던 친구들도 지금은 보기 쉽지 않다. 일이 있어 연락하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대답을 하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이들을 기고만장하게 했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높아진 중국의 위상 때문이다. 미국과 더불어 G2시대를 연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고, G1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마당에 중국의 변방에 있는 우리나라가 그들의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지금 중국의 입장에서 한국이나 북한의 문제는 갈등의 진앙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 있을 뿐 그 이하의 고민도 아닌 것 같다.

사실 이는 그들을 탓할 수 없는 일이다. 몇 년 전 만난 한 대기업의 중국 법인장은 "처음 중국에 갈 때는 부장(우리의 장관급)급이라고 해도 정당한 이유로 요청하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부장 조리'(비서)는 물론이고, 국장급조차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죠"라고 말했다. 중국의 달라진 위상이 느껴지는 말이다. 이제 한중 관계는 변했다. 달라진 상황에 알맞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만날 수 있는 것은 위기뿐이다.

분명한 앞으로의 상황은 이미 기고만장해진 중국의 입장이 앞으로 더 강해지리라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의 입장도 명약관화다. 중국의 관료들은 과거 연 1000 만 달러의 국가재정을 담당했다면 지금은 1억 달러, 10억 달러를 관리하는 게 현실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15년 전까지 중국에선 한 도시에 1000 만 달러를 투자하면 시 정부 자체에서 투자 결정자에게 극진한 대접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00 만 달러 투자 정도는 눈도 돌리지 않은 도시가 많다. 우리 기업들이 1000 만 달러 정도의 적은 돈을 투자하면서 과거와 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문제다. 이런 상황은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솔직히 한국은 소국(小國) 아닌가. 중국이나 미국은 큰 나라이다. 어떻게 작은 나라가 중국이나 미국 같은 대국을 이간질해서 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인가." -왕지쓰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

"중국은 전략적 안정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중국의 핵무기는 방어용이다. 나는 한국 친구들에게 항상 얘기한다. 만약 한국이 미·일 주도의 MD에 가입하면 중국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것이므로 중국은 분명히 한국에 대한 전략을 바꿀 것이다. MD는 한중 우호의 마지노선이다." -주펑 베이징대 교수

이 내용은 2010년 출간한 문정인 교수의 인터뷰집인 <중국의 내일을 묻다>에 있는 내용이다. 기분이 나쁘기도 하지만 뼈저린 말들이 많다. 이 책에 소개된 젠비젠의 화평굴기(대외적 평화와 대내적 조화 속에 중장기적으로 발전하겠다는 국가 전략)나 옌쉐퉁의 대국굴기(강한 국가로 성장해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공헌을 한다는 국가전략), 자오팅양의 천하(세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 등은 그 형식이 어떠하든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 점에선 유사하다. 

현장에서 느낀 한중 관계의 변화

그럼 한중 관계의 현장에서 느끼는 중국은 어떨까. 필자는 지난 2001년 11월 <오마이뉴스>에 '차이나드림'이라는 기획을 연재했다. <중국은 있지만 우리가 얻기엔 멀다>, <식지 않는 열기, 뒹구는 상처들>, <그나마 10% 정도가 성공했다고 할까> 등의 제목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한 이 시리즈에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기업들의 어려움을 짚고, 생명력 연장을 위한 대책을 말했다. 당시 인용했던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멘트는 "자영업자들이 중국에서 하던 실수를 다음에는 벤처기업이 하고, 다음에는 중소기업, 대기업 순으로 되풀이합니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중국 전략을 해가야만 중국과 지속적으로 좋은 관계를 형성해 갈 겁니다"라는 말이다.

한국기업은 전자,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등에서 약진했지만 대부분의 산업에서 어려움이 커가고 있다
▲ 중국내 한국 제철 회사의 공장 한국기업은 전자,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등에서 약진했지만 대부분의 산업에서 어려움이 커가고 있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실제로 국내 유수의 유통기업들은 중국에서 성공한 듯 보였지만 상처만 남긴 채 물러나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때 중국 굴착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던 기업도 해마다 한 두 계단씩 순위를 내주며 6위까지 추락했다. 대기업들의 전자부문도 이동전화를 제외한 부분은 거의 포기에 접어든 상태다. 이동전화조차 샤오미나 화웨이 등 중국 토종기업에 밀려나는 형국이다. 자동차 부분은 선전하고 있지만 정치적 파고 등을 제대로 넘지 못한다면 세계 브랜드들이 경쟁하는 중국 시장의 내일을 장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한국 기업의 위기는 한국의 중국 수출의 위기와 직결된다. 현재 한국의 해외 수출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다. 그 중 반도체와 석유화학, 자동차 관련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데, 이런 분야의 위기는 수출 한국의 위기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한국 대외수지는 440억 달러로 흑자였는데, 중국 무역수지에서만 628억 달러로 흑자였다. 중국을 빼고 나면 188억 달러 적자로 돌아서는 셈이다. 물론 중국 수출의 상당수가 가공수출의 형태이기 때문에 갑자기 나빠지지는 않겠지만 중국이 없다면 한국의 산업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장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은 최근 2014년 7월까지 마이너스 1.2% 성장하는 등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마이너스 5.1을 기록한 적이 있었지만 최근 수년간 이 수치는 과거에 비해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어 대중국 수출에 이상이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    

중국 관광 시장의 성장 가능성...제주도를 봐라

반면 관광객의 급증으로 서비스 부분은 역전 상황이 확실해지고 있다. 2013년 중국 관광객의 입국자 수는 433만 명가량으로 약 275만 명을 기록한 일본을 제쳤다. 2014년에도 그 차이는 더욱 벌어져 6월까지 중국 관광객이 267만 명가량인 반면에 일본 관광객은 약 116만 명을 기록했다. 한국에 들어오는 중국 관광객의 숫자가 매년 홍콩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 숫자의 10% 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관광시장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가장 잘 활용한 지역이 제주도다. 제주 관광지에는 중국인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밤 시간 번화한 거리에는 중국말이 끊이지 않는다. 시내 면세점에는 중국인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다. 여행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5억 원 이상의 휴양시설을 구입해 '부동산 영주권'의 초기 단계(F-1, F-2)를 밟고 있는 경우가 500여 건에 달한다. 가장 낮은 금액인 5억 원으로 잡아도 중국 개인이 제주도에 2500억 원을 투자한 셈이다.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수치가 최근 형성된 것이고 그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가파르다는 것이다. 이 수치를 냉정히 보면 한국은 중국 투자유치에 실패했지만, 제주도만큼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중화권이 제주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총 네 가지다.

우선 이제 중국 사람들이 제주도를 알기 시작했다는 것. 자존심 강하고 자국 내 볼거리가 많은 중국인에게 제주도가 인식된 것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제주도의 끊임없는 홍보였을 것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지방도시의 공항을 다니다 보면 제주도 광고를 심심찮게 만난다. 인천공항에서는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의 지자체 광고를 만나지만, 전국 공항에서 가장 쉽게 만나는 광고가 제주도 광고다.

이런 노력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이 이루어졌고, 나름대로 효과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또 제주도는 전세기까지 동원해 해외 여행관계자들을 초빙할 만큼 적극적인 홍보와 마케팅을 펼쳤고, 이제 그 결실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제주를 경유한 진시황 시대의 방사 서복과 삼신산 중 하나인 영주산의 신화 등 인상적인 스토리텔링을 곁들였다. 

두 번째로 제주는 투자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비자 제도나 투자 영주권제, 휴양시설의 풀 구좌 구매 가능 등의 조건을 만들었다. 이미 세계 최대의 여행객 유출국이 된 중국에서 한국이 꺼려지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비자 문제다. 

세 번째는 제주도를 방문하는 중화권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객의 증가는 단순히 관광 수입의 증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손익분기점 달성이 쉽지 않은 관광시설 투자는 대단히 모험적인 일이고, 국내 대기업들마저 대부분 손을 놓는 사업 분야다. 그런데 어떻게 중화권으로부터 관광시설을 투자받을 수 있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중화권 관광객이 지속적으로 제주도에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발리나 푸켓 등 휴양 여행지가 있겠지만, 안전이나 비용 면에서 제주도는 좋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와 성산읍 지역의 지난 5월 28일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으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신양리 해안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와 성산읍 지역의 지난 5월 28일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넘으면서 역대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신양리 해안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은 제주도 스스로 약점을 알고 그것을 고쳐나가는 과정에 있다. 중국 지인들에게 들었던 제주도에 관한 가장 큰 불만은 이용할 말한 카지노가 없다는 것이다. 카지노 시설과 승률 때문이다. 시설이 열악하고, 승률이 낮아서 제주도에 있는 카지노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제주도 관계자들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문제를 스스로 고치지 않는다면 운영 노하우를 가진 해외 업체들의 적극적인 투자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고치겠다는 의지도 갖고 있었다. 여행객 유치에서 가장 큰 난점은 바로 항공이나 선박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섬 특유의 입지적 여건이다. 섬이라는 상황이 강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점이 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항공기 운항시간이나 2공항 신설에도 공을 쏟고 있었다.

한중 간 가교 넓히는 일, 앞으로의 과업 될 것

필자 역시 투자유치 공무원으로 일한 지 4년여가 되어간다. 이 일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스토리텔링과 투자유치 논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일하는 지역이 가진 중국과의 인연을 정리해 알기 쉬운 만화로도 만들었다. 또 관광시설 투자유치의 선행과제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했다. 그런 노력 속에 성과가 있는 부분도 있고, 아직 미비한 부분도 많다. 늘 투자유치를 넘어서 한중 간 거대한 다리를 놓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이전 칼럼에서도 필자는 '한중 문화 하이웨이'를 말하곤 했다. 이는 곧 한중간의 문화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고속도로를 말한다. 한중간 양적, 질적 교류는 엄청나게 늘고 있는데 모두 처지에 따라 크고 작은 배를 타고 다닌다. 당연히 비효율적 수밖에 없다. 문화의 고속도로를 만들어서 그 위에서 누구나 편하게 오갈 수 있게 하고 싶다. 개념적인 다리만이 아니다. 사실 막연한 개념의 프로젝트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한중 간을 잇는 다리를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최북단 섬인 백령도에서 중국 웨이하이까지는 184 킬로미터 정도다. 남한 육지에선 서산 만리포가 웨이하이 스다오까지 320 킬로미터로 가장 가깝다. 실제로 한중간 해저터널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내가 '한중 문화 하이웨이'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을 접하는 중국인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 더 큰 이유다. 언어연수생을 포함해 5000명 넘는 중국 유학생이 있는 경희대를 비롯, 한국에는 이미 8만 명 이상의 중국 유학생이 있다. 중국 관련 일을 하다 보니 한국서 공부하는 중국 유학생들을 가끔 만난다. 사실 한국에 오는 중국 유학생이 많다는 것은 한글을 볼 수 있는 중국인이 늘어난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들이 양국을 오해 없이 오갈 수 있게 해야 한다. '한중 문화 하이웨이'가 건설된다면 그 위에서 두 나라가 오해하지 않고 상대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문은 수원시와 지난시가 우호관계를 맺은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 지자체 교류도 위상이 달라지면서 쉽지 않은 상태다
▲ 산동성 지난에 있는 한중 우정의 문 이 문은 수원시와 지난시가 우호관계를 맺은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 지자체 교류도 위상이 달라지면서 쉽지 않은 상태다
ⓒ 조창완

관련사진보기


개와 고양이는 꼬리를 흔드는 이유가 다르다. 개는 반가울 때 꼬리를 흔드는 반면에 고양이는 적의가 있을 때 꼬리를 흔든다. 둘이 만나면 항상 티격태격할 수밖에 없다. 이따금 한중간에도 개와 고양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많은 갈등이 반복돼 왔다. '한중 문화 하이웨이'가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 일은 내가 평생 해나가야 할 과업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간 관심을 가져주신 독자분들에게 깊은 감사드립니다. 참신한 기획으로 다시 만나겠습니다.



태그:#중국, #장보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