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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21일 오후 6시 51분]

태양의 포화가 뜨겁게 이글거리는 8월에는 연꽃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꽃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연꽃은 뜨거운 뙤약볕을 양분 삼아 아름답게 피어나는 대표적인 여름꽃이다. 서울에도 12년 전부터 그런 연꽃축제를 하는 곳이 바로 봉원사(奉元寺)다.

언제부턴가 '서울연꽃문화대축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내겐 봉원사 연꽃축제가 익숙하다. 오는 8월 23일(토)까지라고 기간이 정해져 있지만, 그 이후에 가도 상관은 없다. 봉원사는 서울 도심과 무척 가까운 산사로 사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이채로운 고찰이지만, 절을 둘러싼 숲이 무성한 청정지대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어 도심에 사는 불자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 곳이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295m, 옛 이름 무악) 자락의 언덕배기 꼭대기에 자리한 봉원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답게 경사진 도로를 올라갈수록 시골스러운 풍경이 펼쳐져 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신라 진성여왕 3년(899년)에 도선 국사가 연희궁 터(현 연세대)에 사찰을 지은 것이 봉원사의 출발이다.

원래 위치는 연세대학교 터였지만, 조선 영조 24년(1784년)에 현재의 위치인 서대문구 봉원동으로 이전하였다. 이때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라고 현판 글씨를 써서 걸게 했지만, 이 친필 현판은 6.25 전쟁 당시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천 년이 넘은 역사를 간직한 고찰 봉원사는 1592년 임진왜란, 1950년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전각이 소진되는 등 이 땅의 사람들처럼 많은 수난을 겪은 곳이다.

일주문 대신 고목나무들이 맞이해 주는 고찰

봉원사 입구에서 일주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고목 느티나무, 승려들의 집도 절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봉원사 입구에서 일주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고목 느티나무, 승려들의 집도 절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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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노애락의 생생한 표정을 한 16나한상도 봉원사만의 특징이다.
 희노애락의 생생한 표정을 한 16나한상도 봉원사만의 특징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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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도착한 봉원사 주차장 주변으론 소박하고 단출한 민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정겹다. 이런 마을을 사하촌(절 寺, 아래 下, 마을 村)이라 한다. 보통 사하촌의 경우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주라는 마을인데 봉원사의 사하촌은 특이하게도 절의 승려들이 가족들과 함께 산단다. 이는 봉원사가 승려의 혼인을 허용하는 태고종의 중심지라 가능한 풍경이다. 봉원사에 와서 우리나라 불교종파에 조계종과는 다른 태고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조계종파를 제외하고는 승려에게 혼인(혼인 후 출가 포함)을 당연시 해 왔다. 이들은 왜란, 호란 등 난리마다 승군으로 전장에 뛰어들었고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요사와 선방 등 승려의 숙식공간은 적고 대신 경내 밑까지 승려들의 집이 들어와 있어 절과 마을의 경계가 모호하고 확실히 다른 절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니 봉원사 승려는 대부분이 출퇴근을 한단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일몰 직후에 퇴근하는데 퇴근 이후엔 모든 건물은 잠가두며 서너 명의 경비 아저씨가 절을 지킨다고. 이렇게 대처제가 있어서 그런지 누구나 편한 이웃처럼 드나든 기복 신앙터로, 공원처럼 중생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절로 다가온다.

진흙탕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 불교 혹은 부처님의 상징이 된 연꽃.
 진흙탕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 불교 혹은 부처님의 상징이 된 연꽃.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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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 주변은 개발제한구역이다 보니 집들 사이로 나무가 많고 산골 마을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덕분에 봉원사 안팎엔 오래된 회화나무, 느티나무 등 서울시 지정 보호수 나무가 5그루나 된다. 도시에선 보기 드문 회화나무, 느티나무 등이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는 그늘을 드리워주며 제일 먼저 중생을 맞이해준다. 학자수(樹), 영어로도 'Scolar Tree'라는 별명이 있는 회화나무는 정말 뻗어 나간 가지들이 자유분방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볼 적마다 눈길을 머물게 한다. 

보통 절 입구에 있는 일주문이 없는 봉원사는 수 백 년 묵은 노거수 느티나무가 일주문을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무더운 날씨에 우선 시원한 약수를 한 모금 마시러 가다 보니 절 한편에서 연꽃의 씨로 끓였다는 배아차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한낮의 뜨거운 날씨였지만, 절에서 마시는 따끈한 배아차의 은은한 향기 덕분에 후끈해진 몸의 열기를 진정시키는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절 입구 양쪽에 도열한 16나한상도 눈길을 끌었다. 부처님의 16명 열성제자들로 흡사 희로애락을 담은 중생의 생생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 괴상하고 익살스러운 다양한 얼굴 표정이 일반 불상들과 달리 무척 생동감이 넘치고 방문객을 웃음 짓게 했다. 16나한상은 석가의 가르침을 받았던 16인의 뛰어난 제자로 '수행을 완성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보통은 탱화로 그려지거나 별도의 법당에 모셔지지만 봉원사에서는 대웅전 마당 앞에 세워져 사찰을 찾는 이들을 먼저 반긴다.

진흙,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는 특별한 꽃

샤워기, 마이크를 닮은 해학적인 모양의 연밥.
 샤워기, 마이크를 닮은 해학적인 모양의 연밥.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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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흙탕물에서도 피어난 순백의 아름다운 연꽃, 불교와 부처님의 상징이 되었다.
 진흙, 흙탕물에서도 피어난 순백의 아름다운 연꽃, 불교와 부처님의 상징이 되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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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밑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작은 연못과 함께 대웅전 뜨락을 비롯한 절 전체가 연꽃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신촌이 코앞인 서울 도심에서 보는 연꽃축제는 새롭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붉은색과 흰색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 연분홍 연꽃부터 한참 물이 오른 화려한 붉은 홍련, 희디흰 순백의 백련까지 연꽃의 향연이 황홀하다. 보는 사람들을 얼굴에 절로 화색(花色)이 돈다. 마치 샤워기 꼭지 같은 연밥은 해학적인 모양으로 볼 적마다 웃음이 나게 한다. 

다른 유명한 연꽃축제의 연꽃들은 대부분 연못이나 늪에서 키워진 연꽃 군락지에서 개최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봉원사의 연꽃축제는 놀랍게도 커다란 돌확이나 물통에 키워진 것들이다. 저 통 안에 하나하나 여름 동안 땀 흘리며 심었을 누군가의 수고로움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다양한 연꽃들이 서로 아름다움과 우아한 자태를 견주며 물결을 이룬 풍경이 보기만 해도 한 폭의 그림이다. 인도에서 빛과 생명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던 연꽃, 불교에서는 부처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게 된 이유도 의미심장하다. 거의 구정물에 가까운 더러운 물이나 흙탕물, 진흙 속에서도 붉은 홍련과 희디흰 백련 꽃을 피울 수 있는 속성이 있는 수련. 그래서 아름답게 피어난 연꽃은 오랜 수련 끝에 번뇌의 바다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의 모습 (혹은 부처님)에 비유되고 있다.    

또한 사찰에서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미륵전이다. 흰색의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이곳은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가 창립된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말과 글의 연구와 교육을 위해 1908년 세워진 국어연구학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기념하는 표지석이 건물 앞에 서 있다. 내부에는 미륵불 입상이 봉안돼 있다. 이 외에도 극락전, 칠성각이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만월전 등은 색이 많이 바래 오랜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스님의 독경소리에 여름 더위가 덜 덥게 느껴졌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스님의 독경소리에 여름 더위가 덜 덥게 느껴졌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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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는 매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영산재(靈山齋)를 시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산재는 석가모니께서 여러 중생을 모인 가운데 법화경을 설하던 모습을 재현한 장엄한 불교의식이다. 얼마 전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영산재를 지내기도 했다.

연꽃축제는 오는 23일(토)까지 열리며 이 기간 동안 연꽃사진전, 연(蓮)음식 체험, 사진전과 묵화전, 연꽃으로 만든 도자기 전시, 연꽃차 시음회 등이 상설행사로 마련돼 시민들과 함께 한다. 특히 23일 오후 6시 30분부터 열리는 산사 음악회엔 국립무용단, 국립국악단도 나와 경기민요, 승무, 판소리 외에 불교의 성악인 범패(梵唄)를 들려준다고 한다.

범패는 절에서 재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로 영산재 의식에서도 작법과 함께 연행되는 매우 중요한 예술적 행위이다. 범패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염불이라고 부르는 안채비소리(혹은 홋소리)와 전문범패승들만이 부를 수 있는 바깥채비소리(혹은 짓소리), 그리고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쉽게 만들어진 화청이나 회심곡이 있다.

절 뒤로 안산 자락길이 이어져 있어 가벼운 산행을 어어서 하기 좋다. 안산 자락길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걷기 좋은 숲길이다. 봉원사에서 안산 정상까지는 20여 분 거리다. 사찰 뒤편으로 안산으로 오르는 솔향 그윽한 등산로가 나 있다.

덧붙이는 글 | ㅇ 위치 ;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산1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7024번 버스 종점,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7024번 종점)
ㅇ 문의 ; 392-3007~8
ㅇ 누리집 ; www.bongwonsa.or.kr
ㅇ 서울시 온라인 뉴스 '서울톡톡'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봉원사, #연꽃축제, #태고종, #영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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